케니 G를 들으며 떠올린 질문 하나

[최보식의언론=엄상익 논설위원]

IBGroup Việt Nam  캡처
IBGroup Việt Nam 캡처

2025년도 저물어 가는 12월 중순이다. 바다의 노을이 사그라지고 서서히 어둠이 덮일 무렵에 산책을 나왔다. 바닷가 군데군데 서 있는 수은등이 산책로를 파랗게 비추고 있었다.

멀리서 색소폰 소리가 바람에 실려 은은하게 들려왔다. 나도 모르게 소리가 나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둥글게 계단으로 조성된 바닷가의 작은 공연장이었다. 공연장 무대 앞에 특이하게 개조된 소형 트럭이 보였다. 트럭의 적재함을 나홀로 무대로 만든 것이다. 나이 든 남자가 색소폰을 불고 있었다.

잔잔한 감동이 물결처럼 마음의 기슭으로 다가왔다. 영혼이 담긴 깊은 울림이었다. 평생을 색소폰을 불어 온 명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무대 앞에는 연주비를 받는 모자나 통도 없었다. 관객도 없었다. 그는 그냥 음악이 좋아서, 색소폰이 좋아서 그렇게 바닷가를 떠돌며 연주를 하는 것 같았다.

한 곡이 끝나고 그의 연주가 잠시 정지될 무렵 몰래 보고 있던 내가 박수를 쳤다. 그가 나를 알아차렸다. 그리고 싱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단 한 명의 박수 소리도 기쁜 모양이었다.

손때가 묻고 은은하게 녹슨 오래된 색소폰에서 그의 경륜이 느껴졌다. 나는 그의 소리에서 영혼을 느꼈다.

오래전 캐나다 토론토의 늦은 저녁 지하철역에서였다. 사람이 없는 구석에서 한 남자가 색소폰을 불고 있었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어떻게 금속에서 그토록 아름다운 소리가 흘러나올 수 있을까 감탄했다. 관객이 한 명도 없을 때 음악은 더욱 깊이 울려 퍼지는 것일까?

나는 세계적인 색소폰 연주자 '케니 G(Kenny G)'의 색소폰 연주를 담은 CD들을 사서 들었다. 흐느끼듯 흘러가는 멜로디를 들으면서 눈에 물기가 맺혔었다. 감동이었다. 

그의 내한 공연 소식을 듣자 비싼 티켓을 사서 그의 연주를 들으러 갔다. 길게 늘어진 곱슬머리를 휘날리면서 부는 그의 색소폰 연주는 최고의 경지에 오른 기술이었다. 애드리브 부분은 마치 하늘과 대화를 하는 방언 소리 같기도 했다.

그런데도 뭔가 이상했다. 그의 연주에서 깊은 영혼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어떤 막이 그의 영혼을 가려버린 것 같았다. 그는 관객과 자신의 인기, 그리고 돈을 의식하는 것 같았다. 그것이 그의 영혼이 드러나지 못하게 막았던 것일까?

내가 30대 말쯤이었을 때다. 서점의 구석에서 먼지가 묻은 수필집 한 권을 발견했다. 팔리지 않고 오랫동안 그 자리에 꽂혀 있었던 것 같다.

그 수필집을 사서 읽었다. 고등학교까지만 졸업한 작가가 일평생 수필에만 전념한 것 같았다. 수필을 가르치며 받은 돈으로 밥을 먹고 살았다고 글에서 고백했다. 그의 글은 정직했다. 그리고 영혼이 담겨 있었다.

그 서점의 중앙 매대에는 미녀 탤런트의 수필집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남성 편력을 적나라하게 폭로한 베스트셀러였다. 정말 그녀가 그 글들을 썼을까? 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일생을 들꽃처럼 살다 간 수필가와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나는 글을 쓰고 싶었다. 글이 꽃이라면 변호사라는 직업은 그 글을 받쳐 주는 잎과 같았다. 내가 맡은 사건은 수필의 소재였다. 오랜 시간 그 의미를 곱씹은 후 한 조각의 잘 구워진 스테이크 같은 수필로 만들려고 노력했다. 나만 가질 수 있는 재료였다. 나의 서정과 심리를 섞어 소스로 만들었다.

나의 글쓰기는 30년이 넘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나의 좁은 사무실이 나의 세계였다. 벽에 가득하던 문학책이 나의 동반자였다. 책상은 나만의 득음바위였다. 가슴 속에서 뭔가 넘쳐날 때 썼다. 마른 수건을 짜 내는 작가의 고통을 겪지 않았다.

지금 어두운 바닷가에서 혼자 색소폰을 부는 남자의 모습을 본 감정을 억누를 수 없어 이 글을 쓰고 있다. 그에게서 나의 모습을 보았다.

화려한 인생의 무대에 올라 본 적이 없다. 높은 자리에 오른 적도 없고, 돈을 많이 벌지 못했다. 그냥 글을 썼다.

칠십이 넘은 지금도 바닷가 나의 방에서 글을 쓴다. 닭이 알을 낳듯이.

바닷가에서 모래성을 쌓는 아이들에게는 목적이 없다. 그냥 좋아서 몰입한다. 아이들이 떠난 후 파도가 모래성을 원래로 되돌려놓아도 개의치 않는다. 나도 일생 혼자 그런 놀이를 해 온 것은 아닐까.

그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속에 섞인 불순물을 안다. 수많은 관객 앞에서 박수받는 케니 지를 보면서, 부러움과 경멸이 동시에 일었다. 경멸이라는 단어가 맞는지 모르겠다. 나는 앞서 그의 연주에 영혼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정직하게 고백하면, 그것은 판단이 아니라 위안이 아닐까.

'나는 저렇게 되지 못했지만, 저것은 영혼이 없는 것이니까 괜찮아.'

그건 자기방어다. 70년이 넘어서야 보이는 내 안의 비겁함이다.

어두운 바닷가에서 색소폰 부는 남자는 나 하나의 박수에 슬며시 기뻐했다. 보이지 않는 한 명의 독자가 공감해 주면 나도 슬며시 좋아할 것 같다. '안 읽어도 괜찮아' 하는 나의 위선에 얼굴이 붉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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