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마르크는 "무지하고 부지런한 자가 가장 위험하다"고 했다

[최보식의언론=주은식 한국전략문제연구소장(예비역 육군준장)] 

YTN 화면 캡처
YTN 화면 캡처

필자가 연구소에 처음 몸담았을 때 정책토론회를 자주 개최했다. 어느 날 토론 도중, 전문가의 발언 가운데 사실과 다른 주장이 있어 반박하려 하자 고(故) 홍성태 소장께서 조용히 만류하셨다. 

"바로 반박하지 말고 끝까지 들어라. 토론은 말하는 훈련이 아니라 듣는 훈련부터다."

그러면서 '들을 청(聽)' 자를 풀이해 주셨다. 귀를 왕처럼 세우고, 열 개의 감각을 모두 모아, 하나의 마음으로 듣는 것이 진정한 경청이라고 했다.

정책토론회에서 최고 전문가들의 토론을 제대로 따라가려면 대학원 수업 한 과목을 요약해 듣는 정도의 집중력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끝까지 듣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다. 듣는 훈련이 안 된 사람은 자신이 다 이해한 것처럼 착각하지만, 녹취록을 다시 들어보면 대화의 70%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동의하지 않는 말이 나오면 무의식적으로 방어벽을 세우고 귀를 닫아버리기 때문이다.

군 시절, 상관들이 수없이 반복되는 업무보고를 묵묵히 들어주던 모습이 새삼 고맙게 느껴지는 이유다. 보고자는 한 번이지만, 결심권자는 같은 내용을 여러 번 들어야 한다.

문제는 오늘날 군사·안보·첨단기술의 영역에서 이 '듣지 않는 문화'가 더욱 심각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멀티 도메인', '크로스 도메인', 'AI 기반 전장', '통합억제' 같은 용어들이 유행처럼 난무하지만, 그것이 어떤 전제를 갖고 있으며 어떤 한계와 위험을 동반하는지 정확히 이해하고 사용하는 경우는 드물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러한 개념의 피상적 사용이 주변인의 실수가 아니라, 국가 의사결정을 좌지우지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 의해 정책과 지침의 형태로 하달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모르면서 잘 아는 체하는 것도 문제지만, 윗자리에 앉아 있다는 이유 하나로 불완전한 인식을 '결론'으로 포장하는 경솔함은 훨씬 위험하다. 모를 경우에는 "의견이 분분하니 추가 검토 후 다시 논의하자"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무능이 아니라 책임이다.

군사와 안보, 첨단기술은 정치적 수사나 이미지 관리의 대상이 아니다. 이 영역은 정확한 개념, 엄격한 구분, 냉정한 계산 위에서만 작동한다. 전술과 작전, 전략과 전쟁의 차원을 구분하지 않은 채 전략을 말하고, 능력과 의지를 혼동한 채 억제를 논하며, 기술적 가능성과 정치적 희망을 뒤섞어 미래전을 설파하는 모습은 국방에 혼란만 초래할 뿐이다. 

비스마르크는 "무지하고 부지런한 자가 가장 위험하다"고 했다. 국방은 무지한 자들이 자신감으로 지휘할 때 가장 곤혹스러워진다. 해야 할 결심은 미뤄지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전광석화처럼 진행된다.

이 장면은 낯설지 않다. 6·25 전쟁 당시, 하루 아침에 완장을 찬 이들이 그 완장을 권력으로 착각해 질서를 무너뜨리던 모습과 닮아 있다. 오늘날의 완장은 계급장이 아니라 직함, 카메라, 마이크, 브리핑 자료로 바뀌었을 뿐이다. 일부 정치인과 방송인의 언설은 상황과 격을 가리지 못한 채 인기에 영합하는 천박함을 드러낸다.

이런 환경에서 진짜 전문가들은 침묵한다. 비겁해서가 아니다. 정확한 말을 하면 '분위기를 흐린다'는 이유로 배제되고, 위험을 경고하면 '센스 없다'는 낙인이 찍히기 때문이다. 반면 근거 없는 낙관과 구호는 환호를 받는다. 이 구조에서 전문성은 사라지고 얼치기만 남는다.

지도자의 최소 자격은 전지전능함이 아니라 수오지심, 즉 부끄러움을 아는 분별심이다. "이 사안은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 "전문가 의견을 더 들어야 한다"고 말할 수 없는 권력은 이미 권위의 자격을 상실한 것이다. 군사와 안보의 세계에서 경박한 말 한마디는 언젠가 피로 환산된다.

최근 논란이 되는 '허위조작정보 근절법' 역시 마찬가지다. 표현의 자유는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이지만, 개념이 모호한 규제는 언제든 권력 비판을 차단하는 도구로 변질될 수 있다. 허위정보를 단속하겠다며 자가당착에 빠져 다른 왜곡에는 침묵하는 모습, 예를 들어 노동신문을 허용하는 조치를 보면 이 사회가 무엇을 지향하는지 드러나고 침묵하는 주류 언론의 자포자기마저 보인다.

국가는 말로 지켜지지 않는다. 국가는 지식, 책임, 부끄러움이라는 보이지 않는 규율로 유지된다. 이제 최소한의 기준을 분명히 해야 한다.

첫째, 이해하지 못한 사안에 대해 결론을 내리지 않을 절제.

둘째, 결정 전에 전문가에게 묻고 끝까지 들을 겸손.

셋째, 틀렸을 때 물러나거나 사과하고 진퇴를 분명히하는 책임.

이 세 가지가 무너진 국방과 안보는 어떤 첨단 무기와 전략으로도 지탱될 수 없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위기의 본질은 외부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경박함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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