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꽃길'은 내내 못 걸어도, '꽃자리'를 받아들이고 내 곁에 있었거나 현재 있는 사람들에게 뒤늦게 감사

[최보식의언론=최보식 편집인]

천봉근 작
천봉근 작

새해 편지가 신문에 게재되고 읽히고 있을 때는 런던발 서울행 비행기에 저는 앉아있을 겁니다.

세상을 많이 돌아다녔지만 비행기 안에서 공중에 떠있는 상태로 한해가 가고 오는 걸 겪어보기는 65세가 되도록 처음입니다.

그렇다고 대단하게 의미 부여를 할 게 별로 없습니다. 14시간 가까운 이코노미석 비행에 허리는 아프고 지쳐서 머릿속도 마비가 될 겁니다. 

새해를 맞는다는 것 자체가 사실 새롭지 않습니다. 어제의 해와 오늘의 해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달력의 인위적인 나눔일 뿐입니다. 더욱이 제 개인적으로는 이미 65번이나 맞아본 '너무 흔한' 새해입니다.   

그럼에도 새해가 없다면, 뭔가 달라지겠지라는 기대나 환각, 혹은 스스로 달라지려고 하는 핑계는 어디서 찾겠습니까. 지나온 시간이 힘겹고 구차하고 허탈할수록 우리는 더 새해에 의미를 두게 됩니다.  

늙어가는 제게도 작년 한해는 상념이 많고 어느 때보다 지치고 가끔 무력감에 빠졌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스무날 남짓 개인적인 일로 영국 런던 등에 와서 지냈습니다. 

여행 일정이 끝날 때쯤 서예작가 천봉근 선생이 위의 새해 그림을 집으로 부쳤다고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병오신년 내내 꽃길되소서!'

내년에는 지금보다 덜 나빠지는 것만으로 감지덕지할 내 처지를 직시하며 '내내 꽃길되소서' 라는 표현에 혼자 웃었습니다.

그런데 연상작용으로  구상(具常, 1919~2004) 선생의 '꽃자리'라는 시가 떠올랐습니다.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중략)

나는 내가 지은 감옥 속에 갇혀 있다/  너는 네가 만든 쇠사슬에 매여 있다/  그는 그가 엮은 동아줄에 엮여 있다

​우리는 저마다 스스로의/ 굴레에서 벗어났을 때/ 그제사 세상이 바로 보이고/ 삶의 보람과 기쁨을 맛본다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나는 런던의 하이드 공원을 걸으면서, 별로 타고난 것도 없고 결점 많은 내가 이 정도까지 살아올 수 있었다는 게 어쩌면 기적 같았고 갑자기 고맙게 느껴졌습니다.

조선일보 재직 시절 사내 정치는 못 했지만 기자 능력 하나로 평가받았다고 나름 자부했습니다. 주위에서도 그렇게 인정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되돌아보니 그건 내 개인 실력의 결과물이 아니라, 내가 만났고 만나고 있는 사람들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그 자리에 그 사람들이 나를 성장시켜줬습니다. 그때 그들이 내 곁에 없었고 지금 이 자리에 이들이 내 곁에 없다면 내가 그나마 '사람 구실' 하면서 살아올 수 없었다는 걸 깨닫습니다.

인생의 길에서 숱하게 만나고 헤어졌던 내 곁의 사람들이 나를 이런 모습으로 만들어주었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는 겁니다. 만약 이들이 그 자리에 없었으면 정말 형편없게 살아갔을 나를 떠올리면서 지금의 나를 축복처럼 다행스럽게 받아들입니다.    

저는 5년 전 좋은 신문, 언론다운 언론을 만들어보겠다며 인터넷신문 <최보식의언론>을 창간했습니다. 열정과 노력, 노동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는데 해가 갈수록 신문 제작과 경영은 더 어려웠습니다. 시장 논리로만  보면 벌써 문을 닫았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오늘 신문을 또 만들고 쉬지 않고 만들어오고 독자들이 볼 수 있는 것은 순전히 내 곁의 몇몇 사람들 도움 덕분입니다. 

그래서 나는 '꽃길'은 내내 못 걸어도 '가시방석 같은 꽃자리'를 받아들이고, 내 곁에 있었거나 현재 있는 사람들에게 새해를 핑계삼아 뒤늦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독자 여러분들에게 중늙은이의 이런 글이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기를 빕니다. 새해에는 좋은 날들이 더 많기를 바랍니다. 

영국 런던 숙소 근처의 나목
영국 런던 숙소 근처의 나목

 

 

 

 


#구상, #병오년, #꽃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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