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부모 역할이 손주의 삶 가른다

[최보식의언론=박정원 객원논설위원(더시그넘하우스 연구소장)]

EBS 뉴스 캡처
EBS 뉴스 캡처

나이 들수록 인생의 가장 큰 즐거움 중에 하나가 손주를 보는 것이다. 돌보면 힘들고, 단순히 노는 모습을 그냥 보고만 있어도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손주를 돌보는 조부모, 특히 조모에게는 손주를 보는 순간 기쁨을 느끼지만 마치고 나오는 순간 더 큰 기쁨을 느낀다는 농담도 있다. 손주를 돌보는 게 기쁨을 주지만 동시에 그만큼 힘들다는 뜻이다. 

전통적 삶의 방식과 가치가 거의 붕괴된 현대사회에서 조부모의 역할이 새롭게 조명되고, 그 역할의 중요성에 대해 점차 강조되고 있다. 부모는 사랑과 안전 외에도 훈육이나 학업 성취 등 자녀 인생의 여러 분야에 책임을 져야 하지만 조부모는 이러한 부담에서 벗어나 손주들과 깊은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맞벌이 부부에게 조부모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단순히 귀엽다고 해서 무조건 받아들여서는 안 되고, 또한 무조건 조부모의 가치와 방식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 이와 같은 행동은 손주들의 버릇이 나빠지는 원인을 제공하고, 조부모와의 소통이 단절되는 단초를 제공한다. 

따라서 손주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조부모의 존재가 손주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 아는 것이 손주들과 소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흔히 손주 육아에 있어 조부모의 역할은 한마디로 ‘가족 돌봄의 완충장치’ 기능을 한다고 본다. 현재까지 행해지는 조부모의 손주 육아 형태는 어린이집 및 유치원 등‧하원, 부모의 퇴근 전의 도우미와 같이 부모의 틈을 메우는 ‘보조 돌봄’ 역할이 있다. 2021년 보육 실태 조사에서 보조 돌봄에 있어 조부모의 역할이 48.8%로 나타났다. 거의 절대적이다. 

이어 부모와 공동양육 형태도 있다. 조부모가 하루의 상당 시간을 맡아 식사 및 수면, 훈육까지 책임지는 형태이다. 부부가 맞벌이일수록 조부모의 육아 부담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부모도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것보다 가족에게 맡기는 것이 심리적으로 안정적일 뿐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안전을 더욱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혼이 많아지는 현실을 반영해서 일부 조부모는 손주들의 법적‧실질적 보호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조사에 따르면 2024년 현재, 4.4% 정도 이른다고 한다. 

이렇게 조부모 돌봄이 많아지는 현실에서 어떻게 하면 조부모와 손주와의 관계를 원활히 소통할 수 있을까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다. 가족 및 아동 전문가들은 “손주와의 소통의 핵심은 손주가 어떤 아이인지 알고, 진심으로 사랑하며, 손주의 이야기를 기꺼이 들어주는 데 있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토대가 마련되면 굳이 직접 만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또 다른 전문가는 “아이들이 장벽 없는 관계를 맺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 판단, 분노, 실망 등은 모두 관계 형성에 걸림돌이 된다”고 말한다. 조부모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아이들의 흐름에 맞춰주고, 먼저 다가가되 곁에 그냥 있어 주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아이들이 가장 필요로 할 때 부모나 조부모를 먼저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손주들이 자라면서 연락이 끊기질 않도록 하라고 권한다. 10대 자녀들은 더 바빠질 수 있지만 그들의 삶에 조부모와 함께 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다. 성장 과정에서 10대들은 부모로부터 멀어지도록 진화해 왔지만 조부모는 그렇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10대들의 삶에 관여하고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여러 명의 어른들이 필요하다. 

일상적인 가벼운 대화, 특히 학교생활이 어떤지에 대한 대화는 금방 시시해지기 쉽다. 손주들이 대화를 이끌어가도록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먼저 물어보는 게 중요하다. 아동‧청소년 전문가들은 “예, 아니오로 답할 수 있는 질문은 피하는 것이 요령”이라고 강조한다. 대신,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에 대한 개방적인 질문을 하라고 권한다. 그러면 자연스레 깊이 있는 답변을 이끌어낼 수 있다. 또한 좋아하는 공연이나 친구 그룹과 같이 대화에 도움이 될 만한 정보를 미리 파악해 두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이와 함께 함께 즐길 수 있는 공통 관심사를 찾아 이야기하는 것도 좋다. 예를 들면, 요즘 뜨는 온라인 게임이나 TV 프로그램 등에 대해서 얘기하면 더욱 유대감을 쌓을 수 있다. 조심해야 할 것은 손주들이 먼저 묻지 않는 한 조언은 하지 말고, 판단하거나 꾸짖지도 말라고 한다. 

나이에 따라 일대일 대화는 어색하거나 부자연스러울 수 있다. 서로 부담을 덜고 싶다면 채팅방을 만들어서 대화를 나눠보라. 어떤 가족들은 구성원들이 모여 근황, 사진, 계획 등을 공유하는 단체 채팅방을 운영한다. 이렇게 하면 아이는 정해진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대화를 참여할 수 있으며, 예의에 어긋나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전문가들은 어린이나 청소년기의 특징은 “소속감을 느끼고 싶어하고, 자신을 표현하고 싶어하고, 함께 어울린다고 느끼고 싶어하고, 단순히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어하는 등의 감정과 동기를 가지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아이들에게 최신 트렌드에 대해 가르쳐 달라고 하는 것은 좋은 대화 소재가 된다. 아이들이 대화를 주도하고 자신이 가치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해준다. 어떤 아이는 어른들이 문자 메시지에 이모티콘만 보내는 것을 싫어한다고 한다. 마치 상대방이 자신에게 관심이 없고, 대화를 끝내고 싶어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문자 메시지는 단순히 글자를 주고받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소셜 미디어 게시물 링크를 주고받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음성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도 가능하다. 전화 통화처럼 시간을 맞춰야 하는 부담 없이 즉흥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서로의 일상을 담은 영상이나 사진을 공유하는 것도 좋은 대화 소재가 되거나 간단한 인사를 전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자녀나 청소년을 부모의 문제에 끌어들이지 말라고 조언한다. 자녀는 부모의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정보를 얻거나 부모의 연장선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자녀와는 별도의 관계를 유지하고, 그 관계가 자녀에게 안전한 공간이 되도록 노력하라고 적극 권장한다. 

어른으로서 역할은 아이들과 청소년의 삶 속에서 함께 감정을 조절하는, 차분하고 안정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다. 어른이 화를 내거나 무시당했다고 느끼게 하거나 실망감을 표현하는 것은 아이들이 어른에게 다가올 수 없도록 만든다. 매사 용서하고, 유연하게 대처하고, 아이들의 속도에 맞춰 곁에 있어주고 언제든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조부모나 부모의 역할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크리스마스에 메시지를 보내지 못했다면 연말이 다가오고 있으니 지금 당장 손주들에게 메시지를 보내라. 손주와 소통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메시지를 보낼 정도로 아직 크지 않았다면 지금 당장 영상 통화를 시도하라. 얼굴을 보며 통화하고 표정을 보는 것이 서로에게 마음과 사랑을 전하는 좋은 수단이다. 단순히 통화가 아니라 서로의 유대감을 쌓고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훨씬 더 많은 것을 전달할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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