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한꺼풀 벗겨보면 의외로 서로에게 가장 많은 상처를 남기는 관계

[최보식의언론=박선영 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장]

영화 다잉
영화 다잉

아침 9시 반부터, 82분 동안 꼼짝하지 않고 봤다.

영화 다잉(Dying), 원제는 Sterben. 독일영화다.

아마 한국말로 제목 붙이기가 쉽지 않아서 영어제목을 그냥 갖다 썼을 게다.

언제부터인가 원제를 그대로 한글로 쓰는 영화제목도 많지만, 이번 경우는 좀 다르게 보인다.

독일어 Sterben은 동사로 죽다.

영어 Dying은 죽음 death와는 다른 뉘앙스의 동사형이다. 

영화내용을 떠올리며 번역하면 명사가 아니라 동사로 죽어 가기? 죽기? 뭐 그런 뜻으로 새겨야 하지 않을까 싶다.

영화는 3시간 내내 어둡고 칙칙하다. 극장은 텅 비었고.

태어나서 죽는다는 것은 모든 생물이 다 겪는 과정이지만, 감정을 표출하고, 삭이며 사는 인간은 '죽음' 앞에서, 그리고 죽음의 과정이 그 어떤 경우보다 다이내믹하다.

"가족"이라는 단어를 흔히 우리는 '따뜻하다'고 하지만, 정말 그럴까?

가족을 한꺼풀 벗겨보면 의외로 서로에게 가장 많은 상처를 남기는 관계이기도 하다. 누구나. 너나 없이 다.

자녀가 성장해서 다 떠난 후, 노부부가 죽음 앞에서 마주하는 현실은 혹독하다. 지치고, 힘들고, 돈도 없고.

자녀들도 마찬가지. '죽어가야 하는' dying 부모와 비교해도 절대 부족하지 않을 만큼, 삶 앞에서 하루하루를 '살아내야 하는' 자녀들도 복잡하고 치열하기는 마찬가지다.

게다가 젊으니까 훨씬 더 복잡하다. 지휘자든, 술에 찌든 치과 보조사든. 교향곡에 파묻혀 사는 작곡자든.

남편을 앞세운 엄마는 아들한테 자신의 건강상태와 5천 유로가 든 통장의 위치를 말해주지만, 아들은 어렸을 때 엄마한테 당했던 사건의 이유를 늙은 엄마한테 묻는다.

엄마는 기억이 안 나는 사건. 그리고 엄마는 고백한다. 아들에게 죄스러웠던 순간을. 아들은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너무 어렸을 때여서.

다행히 엄마의 절대음감을 물려받은 자녀. 아들은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되었고, 딸은 방황하는 삶 속에서도 언뜻언뜻 행복과 기쁨을 누리는 순간엔 노래를 흥얼거린다. 오빠와 달리 대중음악을 아주 예쁘고 귀엽게 흥얼거린다.

그래서 이 영화는 뮤직 시네마다. 질병과 죽음, 가족과의 갈등을 클레식이든 대중음악이든 음악을 통해 표현해 내는 깊이 있는 뮤직 시네마.

영화 내내 죽음과 탄생이 음악으로 교차하며 날카롭게 부딪힌다. 우리, 아니 나의 가치관과는 많이 다르지만, 40여 년 전에 독일 사람들과 함께 살아본 결과, 그런 극중인물들의 캐릭터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어쨌든 삶과 죽음 앞에 서 있는 인간의 감정과 운명을 표현해내는 음악은 이 영화에서 압권이다. 

베를린필 콘서트장이 그대로 영화 속에 녹아 들고, 생음악처럼 극장을 휘감는 장엄함은 또 다른 주연처럼 빛난다. 

곡 해석을 두고 작곡자와 지휘자가 부딪히는 장면 또한 각자가 받아들이는 삶과 죽음에 대한 자세가 빚어내는 치열한 갈등의 결과여서 독일영화 특유의 컬트성과 철학성을 담아낸다.

마지막엔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제시한다. 오랫만에 묵직한 영화를 봤다. 이제는 같이 토론할 사람들도 없는데....

Dying은 상도 많이 받았다. 평점도 아주 좋다. 그래도 ....친지들한테 한 번 보시라, 이 말은 못 하겠다. 

너무 무거워서. 가슴이 너무 아파서. 3시간 내내. 아니 지금까지도 ㅠ

참고로, Dying 영화에는 한국 뮤지션도 나온다. 제법 비중 있는 배역인 '죽을 권리'를 선택해 죽어가는 작곡자의 애인으로.

첼리스트 박새롬. 극중 이름은 미도.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는  환상적인 첼로 연주가 아주 일품이다.

작곡자가 연주에 불만을 이야기하다가 박새롬의 뺨을 때리자, 지휘자가 “왜 맞고 가만 있느냐”라고 말하면서 “그런 게 한국식 순종이냐?”라고 힐난하는 장면은 좀 생뚱맞았다.

혹시 일본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이 한국여성에게 투영된 건 아니었을까? 

주인공 톰으로 나오는 라르스 아이딩어(Lars Eidinger)는 올해 쉰 살. 이마도 벗겨졌지만, 뒤통수에 원형탈모가 상당히 커서 필자 눈에 계속 뜨이더라.

아이딩어는 전혀 신경 안 쓰고 연기를 상당히 잘 하더구만. 보기에 따라서는 배우한테 커다란 원형탈모는 생존과 직결될 수도 있으련만, 당당하더라.

같은 관점에서 3시간이 넘는 이 영화에 인형 같은 쭉쭉빵빵 여성은 단 한 명도 안 나오더라. 얼굴엔 뾰루지도 있고. 주근깨도 있고. 

우리나라는 정부가 나서서 탈모 등 '외모'를 '생존의 문제'로 키우고 자극하는 건 아닌지...


 

 

#뮤직시네마 #삶과죽음 #영화다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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