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견해가 존재하는 사안인데 어떻게 한쪽 견해를 ‘허위’라고 확정할 수 있는가
[최보식의언론=태영호 전 국민의힘 의원]
김대중 대통령은 1998년 미국 CNN과의 대화에서 “제주 4.3사건은 공산주의자들의 폭동으로 일어난 사건이지만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 많으니 진실을 밝혀 누명을 밝혀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발언, 문제 됐습니까?
처벌받았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균형 잡힌 역사 인식으로 평가받았습니다.
그런데 지난 12월 10일 제주지방법원은 "제주 4.3사건이 김일성 지시 때문에 일어났다"는 제 발언이 제주 4.3사건 피해자 유족회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된다며 1천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럼 오늘은 왜 이 판결이 부당한지 다섯가지로 밝히려 합니다.
첫째로, 1심 판결의 부당함은 역사적 사건에 대한 어떤 역사적·정치적 평가를 ‘허위사실’로 법원이 단정해 버린 것이다.
제 발언인 ‘김일성의 지시로 4·3이 촉발됐다’는 말은 분명 역사적 사실 주장의 형식을 갖고 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그 다음 단계이다.
법원은 “이 사실은 허위다” 라고 단정했다.
여기서부터 판결의 실질적 문제가 시작된다.
왜냐하면, ‘허위’라고 판단하려면 전제가 정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판결문을 보면 이상한 점이 있다
제주지방법원 판결문은 한편으로 “제주 4·3사건의 성격과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제 발언은 ‘허위사실’이라고 단정한다.
여기서 상식적으로 질문 하나 드리겠다. 여러 견해가 존재하는 사안인데 어떻게 한쪽 견해를 ‘허위’라고 확정할 수 있는가? 이게 바로 논리적 모순이다.
핵심은 ‘허위 판단의 전제’이다.
법원이 “허위”라고 판단하려면 객관적으로 확인된 사실과 명백히 배치되어야 한다.
그런데 4·3 사건의 원인, 특히 북한·김일성의 개입 여부는 70년 넘게 학계·사회에서 논쟁 중인 사안이다.
즉, 전제가 다툼 중이고 사료 해석이 갈리며 정치·이념적 평가가 엇갈리는 사안을 두고 법원이 단일한 역사적 진실을 확정해버린 것 자체가 문제이다.
둘째로, 1심의 “‘김일성의 직접 지시문이 없으면 허위’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역사 왜곡이다.
법원은 “김일성 지시설은 증명이 가능한 역사적 사실이다.”고 말했다. 겉으로 보면 맞는 말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기엔 함정이 있다.
‘증명 가능’과 ‘허위’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법원이 사실상 요구한 것은 “김일성이 직접 서명한 4·3 지시문이 나오지 않았으니 지령은 없었다"는 것이다.
여러분, 이런 역사 판단의 기준이 합리적인가?
공산당 체계를 조금만 아는 사람이라면 알 수 있다 1948년 당시 상황을 보면 5·10 단독선거 반대, 무장투쟁, 남한 단독정부 수립 저지, 이건 우발적 사건이 아니다.
스탈린의 소련 공산당, 김일성의 북한 노동당, 박헌영의 남로당, 이 세 조직이 공유한 당의 노선이었다. 노선이 있었고, 그 노선에 따라 각 지역에서 행동이 벌어진 것이다.
그런데 법원의 논리를 그대로 적용하면 어떻게 되는가? 김일성의 직접 지시문이 없으면 → 책임 없음, 스탈린의 직접 명령문이 없으면 → 책임 없음.
그렇다면, 6·25 전쟁도 스탈린·김일성·박헌영은 책임이 없다는 결론으로 간다. 이게 말이 되는가 ?
더 심각한 사실은 4·3의 주동 세력들은 이후 북한으로 넘어갔고 김일성으로부터 영웅 대접을 받았다. 이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그런데도 “김일성은 책임이 없다”고 판단한 법원, 이건 사실 판단의 왜곡이다. 역사를 판단하는 기준을 법원이 임의로 정할 수는 없다. 특히 그 기준이 상식과 역사 인식에 어긋난다면 말이다.
셋째로, 1심 법원은 노무현 정부 때인 2003년에 나온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를 4.3사건의 ‘유일한 진실 기준’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1심은 제주4·3 진상조사보고서를 근거로 제가 말한 ‘김일성 지시설을 허위’라고 판결했다.
문제는 그 진상보고서는 입법·행정적 성격의 '조사 결과'이지 학문적 최종 결론이나 사법적 확정판결 아니라는 점을 1심은 인정하지 않았다.
제주 4.3진상보고서 작성시 거기에 참가했던 보수측 전문가들은 다 사퇴하여 발표될 때부터 '좌편향 보고서'라고 평가 받았다.
그런 제주4.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도 “다양한 해석 존재”를 인정했다.
국가 진상보고서는 존중 대상일 수 있으나 반대 의견을 ‘허위사실’로 단정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
넷째는 단체 명예훼손 성립 요건을 과도하게 확장한 것이다. 1심 판결은 제 발언이 유족회를 직접 언급하지 않았음에도 제주4.3 유족회의 “목적사업 수행에 영향”을 주었음으로 명예훼손으로 인정했다.
문제는 발언 대상은 역사적 사건의 성격이고 제주 4.3피해자유족회라는 단체의 인격·신용·사회적 평가에 대한 직접 공격이 없었음에도 공적 사안 비판을 곧바로 단체 명예훼손으로 연결시켰다.
공적 역사 인식에 대한 비판을 단체 명예훼손으로 확장하는 것은 시민사회와 학문·정치 토론을 위축시킨다.
사실 적시에 해당하지만 진실인 사실이고 공익에 해당하면 위법성이 조각되어 명예훼손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이번에 1심 법원도 유족 개인들에 대한 명예훼손이나 모욕은 인정되지 않는다고 했다.
다만 유족회의 목적사업 수행에 영향을 주어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이라 판시했으나, 저는 역사적 사실을 알려 유족회의 목적사업인 진상규명에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도움을 주었으면 주었지 그들의 명예를 훼손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4.3사건 피해자들과 관련하여 여러 유족회가 존재한다.
남로당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의 유족회도 있고 국가공권력에 의해 희생된 유족회도 있다.
제 발언이 어느 편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의 명예훼손이 되는지, 그럼 남로당에 의해 희생된 유족들의 입장은 어떤지 법원은 고려하지 않았다.
북한이 4·3은 김일성의 5.10 단독선거 반대 투쟁의 결과라고 떠들고 있는데, 가해자는 때렸다는데 피해자는 맞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격이다.
다섯째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비례성·최소침해 심사 누락이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정치적 표현은 민주주의의 생명선이므로 가장 강력하게 보호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법원이 정치적 표현을 제한하려면 훨씬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공적 사안에 대한 정치적 표현에 대해 가장 엄격한 비례성 심사가 요구됨에도 원심은 이를 전혀 수행하지 않았다.
본 사안은 명예훼손 사건이 아니라 '역사 인식에 대한 표현의 자유' 사건이다.
본 사안은 우리 헌법 헌법 제21조의 보호 범위에 속하는 정치적 표현의 최우선적 보호 영역이고 역사 해석,국가 폭력,이념 갈등 등 민주사회 핵심 토론 영역인 것이다.
다시 말하여 의견·논평은 다소 과격하더라도 보호의 영역이고 허위성 판단은 극히 제한적이여야 한다.
원심의 헌법 위반성은 사법부가 역사적 진실을 확정하여 표현 위축 효과를 발생시켰다.
본 판결이 유지될 경우 향후 대한민국에서 역사적 사건에 대한 비판적 발언은 언제든 민사책임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원심 판결은 다툼이 지속되는 역사적 사건에 대하여, 사법부가 단일한 역사적 진실을 확정하고, 그와 다른 정치적·역사적 평가를 허위사실로 단정함으로써 헌법 제21조가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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