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에 앉아 불안이 가득한 사람에게 위로를 주는 일

[최보식의언론=엄상익 논설위원]

14F 캡처
14F 캡처

탑골공원의 담을 끼고 수많은 파라솔이 놓여 있었다. 점쟁이들이 그 아래서 영업을 하고 있었다. 

문득 나도 거기서 변호사 일을 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길거리에 앉아 불안이 가득한 사람에게 위로를 주는 일은 점쟁이나 변호사가 다를 바가 없을 것 같았다. 

대학 시절 공장에 가서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운동권이 있었다. 빈민촌으로 가서 야학교사를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이기주의적인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뒤늦었지만 노숙자들의 변호사가 되고 싶은 마음이었다. 

의사 출신 영국의 소설가 서머싯 모옴은 의사가 되어 런던의 빈민가를 몇 년 드나들었다. 거기서 보고 깨달은 것을 글로 썼다. 노숙자를 상대하는 거리의 변호사가 되어보기로 했다. 허름한 옷을 입고 그들에게 다가가는 것이다. 혼자 하는 것 보다 몇 명이 함께 하는 게 서로 힘이 되고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젊은 변호사들이 나서면 신선한 감동이 될 것 같기도 했다. 

나와 친한 선배 변호사에게 나의 계획을 얘기했다. 그가 호쾌하게 찬성을 하고 그 일을 지망하는 젊은 변호사를 위해 돈을 내놓겠다고 했다. 젊은 변호사들은 먹고사는 문제가 먼저이기 때문이다.

선배 변호사는 법조계의 '기부왕'이라는 별명을 가진 분이었다. 상속받은 재산을 종교단체와 대학에 기부했다. 변호사를 해서 번 돈도 기부했다. 그러면서도 점심 시간이면 사무실 직원을 겸하는 아내와 함께 빌딩 지하 식당에서 몇 천 원짜리 값싼 음식을 먹는 소박한 인물이었다. 그가 노숙자를 위해 일할 젊은 변호사가 있다면 그 기간만큼 급료를 지급하겠다고 했다. 

우리는 노숙자들을 위한 거리의 변호사를 구한다는 공고를 냈다. 남성과 여성 두 명의 젊은 변호사가 지망했다. 우리는 먼저 그들의 얘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젊은 여성을 노숙자 사이로 보내는 건 문제가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보호자의 입장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일단 얘기를 들어보고 만류하기로 했다. 그녀가 이런 말을 했다.

"로펌에 있었는데 기쁨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일을 하면서 내가 지금 살아있는 것인지 회의를 하기도 했죠."

선배 변호사가 물었다.

"지하도의 지린내나 노숙인의 냄새를 느낀 적이 있습니까? 그들의 탐욕적인 눈길에 대해서는요? 그곳은 무자비할 정도로 적나라한 곳인데..."

"가장 고통받는 곳에 예수님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내 속에도 계신다고 믿습니다."

아무래도 그녀는 감당하기 힘든 십자가를 질 것 같았다.

그 다음은 30대 초의 남자 변호사였다. 그가 말했다.

"변호사의 시작 자체를 탑골공원의 노인 노숙인부터 시작하고 싶습니다. 영원히 하는 건 자신 없습니다. 주님과 일년 동안 해 보기로 약속했습니다."

"왜 변호사가 됐습니까?"

내가 물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수십 번의 입사지원 끝에 대형 유통업체에 취직을 했습니다. 거기에 있어 보니까 나의 인생관이나 가치관 자체가 쓰레기 같이 되겠구나 하는 회의가 들었습니다. 납품 업체에 갑질을 해서 무리하게 목표를 달성해야 했습니다. 하는 일이 전부 공정거래에 위반되는 거였죠. 그게 싫었어요. 갑질을 하기 싫어서 제 월급을 불입한 적도 있습니다. 그러다 고시촌에 들어가 공부했습니다."

나는 그의 다음 말을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가 하루에 2만 원을 벌기 위해 새벽에 나가 밤까지 일했죠. 그런데 대통령이 가난한 사람은 게으르다는 말을 하는 걸 보고 분노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가난이 노숙인들이나 노인에게 다가갈 수 있는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그와 함께 탑골공원 뒤의 노숙인들을 찾아가 상담을 하는 '거리의 변호사' 일을 해봤다. 거기서 많은 게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실질적으로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투명 인간 같은 존재였다.

거리에 버려진 강아지를 보면 동정해도 노숙자에게는 말조차 걸어주는 사람이 없었다. 성경 속 부자는 문 앞의 거지 나사로(나자로)에게 동정 한번 베풀지 않았다. 세상은 지금도 그렇다.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지를 조금은 느꼈다. 얼마쯤은 나 자신이 썼던 정신적 허영의 굴레를 벗어난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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