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라는 역병은 기세가 수그러들 줄 모르고, 최악의 무더위까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다음 대통령을 뽑는 경쟁의 장은 점점 달궈지고 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답답하고 뜨겁게 보내야 하는 2021년 여름이 무척이나 버겁군요.

 

최근에 처해 있는 어지러운 나라 상황을 보면서 가장 생각나는 선현(先賢)이 이율곡(李栗谷) 선생입니다. 요순(堯舜)임금처럼 성군(聖君)이 되기를 바랐지만 턱없이 기대에 못 미치는 임금 선조, 무너져 내리는 나라 기강, 심해지는 붕당 파벌정치, 피폐해져 가는 민생이 안타까워 율곡은 온몸을 던져 개혁을 부르짖었습니다.

벼슬에 나가 있을 때는 목숨을 걸고 임금에게 직언하여 나라를 바로 세우고자 했으며, 물러나 있을 때는 후학을 가르치고 저술과 학문에 전념하면서 나라의 근본 이념인 성리학을 최고 수준으로 격상시켰습니다. 율곡의 위대성은 당시의 문제점을 큰 시야로 판단하고 정확한 시대정신을 제시한 선각자였다는 점에 있지요. 

율곡 선생은 또한 냉철한 시대정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항상 인간과 사회에 대한 따뜻함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러하기에 현상을 판단할 때 대립과 갈등으로 보지 않고, 통합과 절충을 존중하는 세계관을 펼쳤으며, 현실 정책에 있어서도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신분 차별 혁파, 서얼 허통(정실 부인의 자손이 아니더라도 과거 응시기회 부여), 노비의 속량(신분해방) 등을 주장하였지요.

실제 율곡 본인은 이를 실행에 옮겼는데, 측실(側室) 소생의 아들로 하여금 대(代)를 잇게 한 것입니다. 율곡 선생은 정실(正室) 부인에게서 자손을 얻지 못했으므로 당시 풍습대로 양자(養子)를 들였어야 했습니다. 서얼 출신들은 양반이 될 수 없었기에 이러한 율곡의 선택은 후손들의 양반 포기를 받아들인 당시로서는 엄청난 결단이었던 셈입니다. 

목숨을 건 그의 상소문에도 잘 나타나 있지만 율곡 선생은 말과 행동이 일치한 최고의 엘리트였습니다. 내로남불이 판치는 요즘 세상과는 판이했다는 얘기입니다. 

율곡 이이는 정치가로서, 학자로서, 교육자로서 역사에 큰 울림과 흔적을 남겼습니다. 48년의 짧은 생애 동안 성리학을 집대성하고 완성한 성학집요, 격몽요결, 동호문답 등 위대한 저술을 편찬했으며, 수많은 상소문과 문학 작품, 글을 남겼습니다. 그가 생전에 내세웠던 여러 개혁 정책은 당대에는 실현되지 못했지만 후대에 이르러 대부분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조선 후기에 대두된 실학(實學)도 율곡 선생의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학자들은 분석하고 있지요.

이렇게 세상이 암울하고 어지러울 때 율곡처럼 정확한 판단력과 도덕에 기반한 강직한 성품을 가진 정치인이 지금 대한민국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져 보았습니다. 430여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율곡 정신이 오늘에 되살아 날 때 대한민국은 이 어려움을 딛고 다시한번 비상하는 국운 융성의 계기를 맞이하리라고 믿습니다.  

전(前)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18대)을 역임했으며, 사단법인 한국만화가협회 정회원으로 활동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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