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것은 세상의 누군가를 향해 말을 걸고 마음을 보내는 행위
[최보식의언론=엄상익 논설위원]

아직 어둠이 묻어있는 수평선에서 붉은빛이 안개같이 피어오른다. 손톱 같은 얇은 주황색 해가 수줍게 머리를 내밀기 시작했다. 검은색이 옅어지면서 상대적으로 하늘이 파래진다. 회색 구름의 끝자락이 점점이 붉은 빛에 물든다. 나는 내 방 창을 통해 동해에 떠오르는 태양을 보면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린다.
2025년 정월 초하루의 아침이 밝아왔다. 지난해 1년 동안 내 블로그로 들어와 변변치 않은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먼저 고개를 숙여 감사의 인사를 들인다.
내가 글을 쓰는 것은 세상의 누군가를 향해 말을 걸고 마음을 보내는 행위다. 댓글에 자신의 마음을 담아 보내는 많은 친구들이 생겼다. 마음과 마음이 수채화 물감처럼 경계를 넘어 서로 스며들고 섞이는 느낌이다. 마음과 마음이 통하면 친구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굳이 늙은 껍데기를 보이며 만나 밥을 먹고 차를 마셔야만 하는 건 아닐 것 같다.
거울 속의 나를 보면 저게 나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내가 아닌 굼뜬 노인이 나를 보고 있다. 그 노인의 얼굴에 늙은 아버지가 보이고 어머니가 들어있다. 과학적으로도 젊은시절의 내 피와 살이 아닌 게 분명하다. 영혼만이 변하지 않는 나의 본질이 아닐까. 댓글로 나를 찾아오는 한분 한분이 영혼의 친구이며 동지라는 생각이다. 마음이 흐르는 관계가 참된 친구가 아닐까.
나도 그런 영혼의 친구를 여러 명 사귀었다. 다석 류영모 선생의 책을 읽고 그를 마음의 친구로 삼았다. 적막이 감도는 그의 묘지를 찾아가 노란 프리지어가 한 송이 심겨 있는 화분을 그의 비석 앞에 놓고 왔었다.
법정 스님의 책들을 읽고 해가 설핏할 무렵 그의 다비식이 진행중인 조계산 중턱을 찾아가 보랏빛 연기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그에게 조용히 인사를 했다.
'월든'이란 에세이집을 읽고 저자인 데이빗 소로우가 살았었다는 호수 근처로 찾아가 그를 생각하면서 영혼의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 글을 통해 얻은 수많은 마음의 친구들이 있다.
바닷가 언덕 위 외딴집에 살면서 나는 내 혼을 담은 글을 만들어 블러그에 올려놓는다. 그러면 나의 글들은 민들레씨처럼 세상 어딘가로 날아간다. 나의 소소한 즐거움이다.
나는 내 삶의 우선 순위를 '즐거움'으로 잡았다. 삶은 순간순간 즐거움으로 꽉 차 있어야 할 것 같다. 돌이켜보면 어려서부터 많은 즐거움이 있었다. 하얀 김이 피어오르는 무쇠솥 안의 찐빵 하나를 사 먹을 때 나는 순수하게 즐거웠다. 윤기 흐르는 달콤한 팥의 향기가 입안에 퍼질 때 어린 나는 행복했다. 어두침침한 만화방의 목의자에 앉아 읽던 박기당 씨나 추동성 씨의 만화는 나만의 비밀세계로 들어가는 은밀한 문이었다.
삼등 열차를 타고 고래 잡으러 동해로 가자는 가수 송창식의 노래를 들으며 밤을 달려 바다로 가던 이십대의 나는 즐거웠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따뜻한 방바닥에 배를 깔로 엎드려 소설가 김성종의 추리소설에 흠뻑 빠졌었다. 그러다 배가 출출하면 석유난로에 불을 붙여 하이면을 끓여 먹을 때 나는 즐거웠다. 돈이 없어도 나는 즐거웠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가난에 젖어 있던 나는 솔직히 가난이 뭔지 몰랐다. 주위가 모두 가난하니까 가난을 보지 못했고 느끼지 못했다.
세월이 흐르고 사회 속으로 들어가게 되자 세상은 나의 뇌리에 비교 의식을 심어주었다. 야망이 생기고 나는 미혹에 끌려다녔다. 야망은 고통이고 마음속에 지옥을 스스로 만드는 일이었다.
삼십대 후반의 어느 날 우연히 성경을 만났고 나는 그 속에서 수많은 친구를 만났다. 그들은 내게 어떻게 사는 것이 즐거운지를 알려주었다. 나는 성경 속의 텅빈 광야 한가운데 외롭고 쓸쓸하게 서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 분은 내게 즐겁게 살다가 오라고 하는 것 같았다.
세상이 주는 돈이나 지위가 주는 즐거움과는 평면을 달리하는 즐거움이 존재하는 걸 발견했다. 돈이나 자리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누구나 가질 수 없다. 가질수록 더 가지고 싶은 욕망의 갈증이 나게 되어 있다. 나는 문학과 정신세계, 그리고 음악 쪽에서 즐거움을 찾기로 했다. 마음의 눈을 일찍 그 쪽으로 돌리니까 세상이 달라지고 인생이 편했던 것 같다. 어느새 인생의 저녁이 왔다.
생각보다 시간의 속도가 빠른 것 같다. 나는 바닷가에서 글을 쓰는 노인이 됐다. 글쓰기는 즐거움이다. 보석을 세공하는 장인처럼 과거의 기억들을 원석으로 갈고 또 갈고 정교하게 만들어 본다.
멀리서 친구들이 더러 찾아온다. 댓글로 찾아오는 친구들이 이제는 더 많다. 즐거움이다. 친구들에게 시간을 내어주는 게 사랑이라는 걸 깨닫는다. 정신세계에 관한 책들을 읽으며 매일 조금씩 공부한다. 옛날에 정리해 놓았던 공책에 있는 내용들을 다시 복습한다.
공자님 말씀이 맞다. 공부가 즐거움이라는 걸 깨닫는다. 참 공자님은 음악도 좋아했지. 나는 강한 비트의 편곡된 찬송가를 틀어 놓고 드럼을 친다. ‘나 홀로’ 하는 부흥회가 즐겁다. 새해 들어 솜씨 없는 나의 글 빵을 받는 친구들에게 인사를 하고 싶어 한마디했다.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모두들 행복하시기를 기도한다.

#2025년을맞아댓글친구들께, #엄상익류영모, #다석류영모, #엄상익법정스님, #엄상익소로우, #엄상익송창식,#엄상익김성종, #엄상익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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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도 건강하시고 좋은 글들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