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원수를 만날 때 옷을 입고 만나야 할까요, 아니면 나체로 만나야 할까요?

[최보식의언론=박상현 기자]

처칠. tvn 캡처
처칠. tvn 캡처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묻는다.

“국가 원수를 만날 때 옷을 입고 만나야 할까요, 아니면 나체로 만나야 할까요?”
전 세계 정치인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인물 중 한 사람인 영국의 전 총리 윈스턴 처칠은 종종 미소를 지으며 몸을 드러내는 ‘누드’를 선택했다. 

처칠은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과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재임하는 동안 백악관에서 손님으로 지내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고 한다. 백악관의 수석 집사는 “처칠은 자신의 방에서 대부분의 시간 동안 옷을 전혀 입지 않고 보냈다”고 회고했다. 

처칠은 백악관을 첫 번째 방문했던 1941년 12월, 루즈벨트 대통령이 처칠이 머물고 있던 스위트룸의 문을 두드렸을 때의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처칠은 완전한 나체였고, 한 손에는 술잔을, 다른 손에는 시가를 들고 있었다고 알려졌다.

이를 본 루즈벨트는 당황한 나머지 “나가겠다”고 말했지만, 처칠은 “보시다시피, 대통령님, 저는 감출 것이 없다”라고 답했고, 두 지도자는 그로부터 한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8월 27일 자 기사 ‘Nudity, drinking, smoking: Winston Churchill's unusual diplomacy’에서 신간 ‘Mr Churchill in the White House: The Untold Story of a Prime Minister and Two Presidents’를 소개하며, 본질적으로 정치적 ‘소프트 스킬’을 영리하게 활용한 사례 연구에 손색이 없는 책이라고 평가했다. 

이 책은 처칠이 언제 압박해야 하고, 언제 아첨해야 하는지, 언제 리드하고, 언제 따라가야 하는지, 아니면 적어도 ‘따라가는 듯한 인상’을 줘야 하는지, 사람을 매료시키고 영감을 불어넣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고 소개한다. 

또한 처칠은 ‘좋은 홍보’의 가치를 잘 알았으며, 잘 활용했다. 그가 실제로 루즈벨트와 아이젠하워에 대해 어떻게 느꼈든, 자신이 두 대통령과 절친한 친구라는 인식을 갖게 하는 것이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판단했고, 이를 언론과 대중에게 널리 퍼뜨렸던 것이다.

처칠의 이 전략은 두 대통령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고, 자신이 주요 정보에서 배제되지 않도록 하는 데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언론들이 그를 “통통한 몸에 검은 굵은 시가를 물고 있는 작은 남자”로 묘사하는 것을 통해 미국 전역에서 매우 인기 있는 인물로 만들어질 수 있었다. 

그의 인기는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으며, 미국 역사가들은 처칠의 마지막 백악관 방문 이후 거의 8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에 대한 책을 쓸 정도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처칠에 대해 “미국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났고, 평생 대서양주의 성향을 지녔으며, 루즈벨트가 재임 중이던 세 번의 임기 동안 백악관을 네 차례 방문했다”면서 “아이젠하워 대통령 재임 중에도 한 번 백악관을 방문했다”고 전했다. 처칠은 뉴욕 북부에 있는 루즈벨트의 별장 하이드 파크에도 네 차례나 방문했다.

배를 이용한 장거리 이동 시간과 번거로움 때문이었는지, 처칠의 백악관 방문은 종종 장기 체류로 이어졌다. 첫 방문은 1941년 12월 22일부터 1942년 1월 14일까지 이어졌는데, 이후 그 어느 외국 지도자도 백악관에 이렇게 오랫동안  손님으로 머문 적이 없었을 것으로 평가된다.

처칠은 통상 ‘여왕의 침실’이라고 불리는 방에 머물렀으며, 특이한 시간에 활동하며, 새벽까지 일하고 대화를 이어갔기 때문에 쉬운 손님은 아니었다고 전한다.

엘리너 루즈벨트 여사는 “남편이 처칠이 떠난 후 항상 며칠은 잠을 보충해야 했다”고 말했다. 처칠은 런던 공습 당시 입기 시작한 ‘사이렌 슈트’(일종의 점프수트)를 입고 맨발로 백악관 복도를 돌아다녔으며, 엄청난 식욕을 보인 덕분에 백악관 직원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고 한다. 

비밀경호국의 한 요원은 “처칠이 브랜디와 스카치를 우아하고 열정적으로 마셔 우리 모두를 경탄에 빠뜨렸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루즈벨트와 처칠의 일하는 방식은 달랐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신중하고 절제되며 조심스러웠던 반면, 처칠 총리는 열정적이고 지휘력이 뛰어났다. 나처칠은 군사 문제에서 훨씬 더 많은 경험을 갖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회담은 생산적이었습니다. 

이코노미스트는 “처칠의 첫 번째 방문은 연합군 통합 사령부의 기틀을 마련했고, 두 번째 방문은 토브룩의 참패 이후 유럽에서의 향후 작전을 위한 것”이었으며 “세 번째 방문에서는 노르망디 상륙 작전이 논의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네 번째 백악관 방문은 짧았으며, 단 32시간 동안만 머물지 않았다. 당시 루즈벨트는 요제프 스탈린과 가까워지기 위해 처칠을 배제했고, 최소한 한 번은 처칠을 공개적으로 조롱을 하기도 했었다. 

처칠의 마지막 백악관 방문은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서였으나, 두 정상의 만남은 장례식 같은 분위기였다. 당시 처칠은 나이를 먹기 시작한 상태였고, 영국 제국과 세계에서의 영국 위상도 크게 쇠퇴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처칠은 자신과 아이젠하워, 그리고 스탈린이 함께하는 정상 회담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는데, 아이젠하워의 존경심에도 불구하고 처칠은 과거의 인물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설명했다.

그럼에도 처칠은 여전히 개인적인 매력을 지닌 인물임에 틀림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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