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공간 3년 속에 우리가 교과서를 통해 아는 역사적 사건들이란 전체 사건들의 10%도 지나지 않는다

[최보식의언론=한정석 강호논객]

행동하는양심실천운동본부 캡처

남한의 해방 공간에서 일어난 소위 '반공 테러'라는 것들의 기원은 이미 북에서 공산주의자들 간에 투쟁의 양태로 벌어졌던 것이었고, 소련이 개입하면서 패배한 세력이 남으로 내려와 그 활동을 지속한 것이 진실이지만 우리는 배워본 적이 없다.

우리는 그저 '서북청년단'은 백색 테러 조직이고 극우 반공 파쇼 단체로만 이해하고 있다. 역사 교과서가 그렇게 가르쳤고, 근대사 학계의 주류가 민족 민중 사관이 장악한 좌파 진보이기 때문이다.

'서북청년단'의 기원이 개성을 중심으로 한 크리스천 상인 세력들이고 이들이 북한의 공산주의에 대항해 자신들의 재산과 소유권을 지켜내려 했던 저항과 투쟁의 기억은 깡그리 말살되어 있다.

해방직후 평양에서는 초기 정치적 주도권을 장악한 평남 건국준비위원회와 소련 진주 이후 권력 역전을 시도하는 평남 조선공산당조직준비위원회 간의 대결이 벌어졌다. 사회주의자들 간에 벌어진 권력 투쟁이었다.

특히 건준 치안대와 조공 적위대 간의 대립에서 패배해 남하한 건준 치안대 세력은 남한에서 남북 좌우합작 세력에 대해 극단적인 테러 활동을 펼쳤고 그것이 '백의사'의 본질이었지만, 이 모든 반공 테러는 사회주의 평남 건준 치안대를 기독교 보수이자 자유민주주의 그룹이었던 '서북청년단'으로 둔갑시켜 이해되어 왔던 것이다.

해방 공간 3년 속에 우리가 교과서를 통해 아는 역사적 사건들이란 전체 사건들의 10%도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그런 사건의 바다에서 의미있다고 생각되는 것을 취사선택하는 것뿐이다. 

역사는 실험할 수도 없고 재현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보편주의적 인과론에 입각해 예측 가능한 구성주의 모델로 파악할 수도 없다. 

그래서 역사에는 오직 '설명'만이 존재한다. 설명이란 근본적으로 '내러티브'다. 내러티브, 즉 서사는 이야기라는 것이고 이야기에는 반드시 신화소들이 원용된다. 신화적 속성이 없는 내러티브에 사람은 반응하지 않는다. 

역사 해석은 그렇기에 우리의 믿음과 비전에 좌우된다. 그러면 어떤 믿음과 비전을 갖느냐가 역사 해석의 본질이다. 민중 민족 사관이 우리에게 무슨 비전을 줄까.

과거란 우리의 주관과는 상관없는 '사건의 바다'다. 칸트가 말한 '물 자체(Ding an sich, 인식을 초월한 실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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