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라면 거기에는 '레종 데타'라는 것이 작동한다는 것

[최보식의언론=한정석 전 KBS PD]

남태평양의 어느 섬. EBS 다큐멘터리 캡처
남태평양의 어느 섬. EBS 다큐멘터리 캡처

KBS TV ‘세계는 지금’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많은 나라들을 다녀봤다.

놀러가거나 비즈니스 하러 간 것이 아니고, 그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취재한 르포 다큐를 만드는 일이었다. 한 10년간 했다.

내가 깨달은 것은 아무리 허접해 보이는 나라라도 그것이 '국가'라면 거기에는 '레종 데타(존재의 이유)'라는 것이 작동한다는 것이다. 하다못해 남태평양의 작은 섬 국가들에게도 레종 데타가 있었다.

안 될 것처럼 보이는데 되는 데는 나름의 내적 원리가 있었다. 이는 지배 질서를 수용하는 민(民)의 의지였다. 그런 것은 형식적인 법률과 상관이 없었다.

이 국가 지배의 정당성 원리는 고대나 중세라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지배 통치 세력도 피지배 대중과 민중에게 자신들의 지배 질서가 '선(善)'임을 증명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후에 나는 일제 36년이라는 체제를 다시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만일 일본이 우리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듯이 '나까무라 순사'와 같은 식으로, 또는 '헌병대 오장'과 같은 식으로 조선 민중을 대했다면 36년 지배질서가 가능했을까.

자신들의 지배가 선(善)임을 보이고 그것에 대한 공감과 동의 없이 총과 칼과 군화로만 지배 통치가 가능했을까. 내가 주변의 시니어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들은 다른 것이었다.

이 문제를 고민해 봤지만 적어도 2000년 전에는 답을 얻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식민지근대론'을 접하게 됐고, 경제학을 이해하고 실제로 그 원리로 일해 봤던 나는 단박에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한 국가는 그것에 지배 질서가 통용되는 한 악의 무리들이 통치하지 못한다. 그것은 북한도 마찬가지다. 북한 주민들이 모두 세뇌되거나 억압과 공포에 질려서 북한 지배세력의 통치 질서를 수용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들의 형편에서 '레종 데타'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는 먹고사는 문제, 즉 교환적 질서가 과거에 비해 악화되거나 파괴되지 않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과거에 비해 나아지고 있음에 공감한다는 것이고 고난의 행군 때와 비교하면 지금의 질서가 더 낫다는 의미다.

국가는 신의 보이지 않는 다른 손이다. 오른손이 시장 경제라면 왼손이 바로 국가다.

시장은 교환 질서로서 어느 나라에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존재했다. 고대 중국도, 일본도, 신라, 백제, 고구려도 시장이라는 교환 경제 질서 하에서 국가를 운영했다.

다만 생산력이 낮아서 교환의 양이 적었을 뿐이었고, 그 본질적 성격은 지금 우리와 다르지 않았다. 그 시대의 교환적 수준만큼 그들은 후생을 누렸을 뿐이다. 국가는 그것을 보장하는 실력자들로 인해 들어서게 된 것이지, 그것을 파괴하는 이들이 만든 것이 아니다.

일제 36년을 수탈의 역사라고 하는 이들에게는 하나도 이해되지 않는 주장이다. 다른 이들이 어떻게 삶을 사는지, 그런 문제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세계는지금, #일제시대, #일제강점기, #레종데타,

저작권자 © 최보식의언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