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로병사의 이치를 끝까지 따라갈 수 있는 사람은 상당히 운이 좋은 편

[최보식의언론=서명원 신부(경기도 여주 도전돌밭공동체 운영)]

서명원 신부
서명원 신부

인생 과정을 사자성어로 이야기한다면 태어나서 늙고 병에 걸려서 죽는 것을 뜻하는 생로병사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 구절은 해피 스토리, 행복한 이야기다. 왜냐하면 늙을 시간조차 없이 시간에 쫒기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생로병사의 이치를 끝까지 따라갈 수 있는 사람은 상당히 운이 좋은 편이다.

내가 퀘백주 몬트리올에 있는 성모병원 지하실의 해부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안 얼마나 많은 죽음과 부딪혔는지를 앞에서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 죽음은 모르는 사람들의 시신을 해부한 것이었기에 나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사실 나는 비교적 인생의 이른 시기부터 주위에서 '죽음'을 많이 겪었다. 그중에서 아주 가까운 죽음을 이야기한다면, 첫 번째는 남동생이 청산가리를 먹고 자살한 사건이다. 첫사랑 여자친구였던 사람도 나와 헤어지고 5년이 지난 후인 1979년에 자살했다. 1988년에는 누나가 눈 안구에 생긴 흑색종 때문에 마흔 살도 되지 않은 나이에 아이를 하나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장수한 편이었던 부모님은 2009년에 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셨고, 이어서 어머니가 타계했다.

최근 나는 난간을 설치하는 공사를 진행했다. 처음 이집을 지을 때 돌을 쌓아 3m 높이의 석축면을 쌓았는데, 혹시 사람이 그 위로 왔다갔다 지나가다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하지는 않을지 늘 염려되었다. 사람이 떨어지면 골절상을 입거나 불구가 될 수다. 그래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사태가 발생하기 전에 난간을 만들게 되었다.

사람의 인생에서 부모님은 이 난간과 같다. 양친 중에 한 분만이라도 살아 있다면 죽음이라는 벼랑으로부터 자식을 안전하게 지키는 난간 역할을 한다. 그런데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비로소 죽음과 가까워진 것을 느끼게 된다.

이제 나의 차례구나.’

부모님 세대가 세상에 안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부모님이 살아 있을 때는 부모님이 우리를 죽음으로부터 보호해주고 있다는 걸 느끼지는 못한다. 그분들이 세상을 떠난 다음부터 죽음과의 거리가 굉장히 가까워진 것을 비로소 느낀다.

인생 선배로서 이야기한다면, 부모님이 살아 계시는 동안 잘 모셔야 한다. 부모님이 없는 세계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언젠가 이 이야기를 듣고, 그 뜻을 곰곰이 생각했다. 한동안 화두였다. 그런데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신 다음, ‘! 이 뜻이구나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나이듦, 또는 늙어감을 죽음과 서서히 사귈 수 있게 하는 매개라고 생각한다. 앞에서 행복에 대해 이야기할 때, 죽음을 두려워하면서 살기보다는 오히려 죽음을 각오하고 더 본질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40대부터 몸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을 많이 느꼈다. 주름이 생겼고 새치도 많아졌다. 골다공증 진단도 받았다. 누나가 흑색종에 걸려 세상을 떠났을 때 의사 선생님은 나에게 햇빛을 완전히 피하라고 권유하였는데, 바보 같은 조언이었다. 왜냐하면 햇빛을 피하며 사는 동안 비타민D가 생기지 않았으나 비타민D를 따로 섭취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결국 골다공증에 걸렸고 지금은 이것과 함께 살고 있다.

나이가 들면서 몸이 달라지기 시작하더라도, 그리하여 신체의 힘이 중년기보다는 못해진다 하더라도 살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가 아파오고 저기도 쑤시더라도 괜찮다, 이렇게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늘 그렇게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나는 한국에서 살면서 지금까지 4번의 수술을 받았다. 왼쪽과 오른쪽의 탈장을 수술했고, 어깨가 뻣뻣해지기 시작해서 어깨 수술도 받았다. 남자들이 소변 문제가 있을 때 받아야 하는 수술도 받았다. 병의 단계로 와 있는 것이다. 병이 있다고 해서 생활의 질이나 삶의 질이 떨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수술을 통해서, 고통을 통해서 많이 배운다. 역시 겸손이 중요하다. 병의 단계는 인생을 마감해야 하는 시기는 아니다.

시골 생활에서 사용하는 차량 가운데 하나는 누군가가 오래 전에 선물한 베르나 라는 소형차다. 1998년도에 현대자동차에서 나온 이 차량을 그 주인은 폐차하기보다는 수명을 더 늘리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고, 나에게로 와서 25년간 문제 없이 굴러갔다. 지금도 그 차가 그런대로 굴러간다. 물론 여기저기 수리해야 했지만 전자제품이 전혀 안 들어간 제품이고 수동 기어라서 연비가 좋다. 가족처럼 여길 만큼 애정이 많이 들었다. 자동차정비소 사장님이 몇 번이나 폐차해야 한다고 이야기했지만 아직 폐차할 때는 아니다. 다만 차체의 아랫부분이 부식되기 시작했기 때문에 몇 년 후에는 폐차해야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몸도 이 자동차처럼 망가지기 시작했다고 해서 죽음의 단계로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여기저기가 마모되고 퇴행성 현상이 생긴다고 해도 인생의 끝이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병이 있는 몸으로도 더불어 함께 살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마음으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밝아지고 더 너그러워지는 것이다. 몸이란 생로병사의 길을 따라갈 수밖에 없지만, 영적·정신적·심적으로는 오히려 젊어질 수 있음이 너무나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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