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때 지푸라기라도 잡으려고 해봤자 전혀 소용이 없는 것

죽음을 생각하면 일단 불안감을 느낀다. 왜냐하면 죽음이 무엇인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돌아갈 것인지 모르는 데다 죽고 난 후 어디로 갈 것인지를 전혀 모르기 때문이다. 죽을 때 자기가 함께 살던 사람과 생활도 소지품도 모두 다 두고 가야 하기 때문에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통틀어 말하자면 죽을 때 지푸라기라도 잡으려고 해봤자 전혀 소용이 없는 것이다.

물론 자살하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 것인지 알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디로갈 것인지 알 수 없다. 또한 자살하려다가 결국엔 실패하는 경우들이 매우 많다. 자살 실패 후의 마음 상태는 더욱더 복잡해진다.

그러니까 결국은 죽음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기 위해서는 죽어야만 한다. 물론 한 사람의 죽음을 최전선에서 얼마든지 목격할 수 있지만 맨마지막에 가서 돌아가는 분은 내가 아니다. 죽음을 맞이한 친구나 친지, 또는 내가 임종을 지켜보는 그분이다. 내가 아닌 것이다.

바꿔 말하면 죽음 앞에서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신비 앞에 있다. 수수께끼 앞에 있다. 그런 현실 앞에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언젠가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망각하거나, 아니면 부정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한들 죽지 않고 영원토록 살 수 있게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현실을 부정한다고 해서 현실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의대생이었을 때 캐나다 퀘백주 몬트리올에 있는 성모병원 지하실에 있는 부검실에서 1년 동안 아르바이트 일을 했다. 하루에 평균적으로 시신 한 구씩 해부하거나 부검했다. 5년 동안 아르바이트하며 다 합쳐서 시신 350여 구를 부검했다. 그때 사람의 속이 병으로 말미암아 얼마나 망가질 수 있는지 계속 보면서 살았다.

예를 들면 술 중독자들의 간장이 경화증 때문에 아주 단단해진 경우, 뇌출혈에 걸린 사람, 풍을 맞은 사람들의 뇌가 스펀지같이 되어버린 것, 고혈압 환자들의 동맥이 완전히 굳어버린 것이나 동맥경화증 때문에 굳어버린 것도 볼 수 있었다. 담배를 많이 피운 골초들의 허파가 얼마나 시커매졌는지를 계속 보았다.

굉장히 끔찍했다. 그때 나는 계속 그 죽음을 보면서 언젠가 나도 죽어야 하리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하지만 그 죽음이 아주 먼 미래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죽음에 대해서 신경을 안 써도 된다고 생각했다. 바꿔 말하면 죽음과 매일 부딪혔음에도 불구하고 나와 죽음은 상관없다고 여겼다.

그러나 사실 죽음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나 조만간 겪어야 할 일이다.

 

캐나다 출신의 예수회 신부. 본명은 베르나르 스네칼. 캐나다 퀘벡주(州)의 의사 집안 출생. 프랑스 보르도 의대 재학 중 예수회에 입문. 1984년 한국에 파견된 뒤 불교 공부에 심취. 서강대 종교학과 교수로 불교 강의. 현재 '도전돌밭공동체'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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