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숨쉬는 동안 오래도록 나를 기쁘게 해줄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정숙은 다행히도 코로나 음성판정을 받았으며, 자가 격리기간도 별탈없이 통과하였다. 남자는 정숙과의 이동경로를 얘기하라고 했을 때, 그 날 러브텔에서 둘이서 뜨겁게 시간을 보낸 과정은 끝내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 남자는 중환자실 음압장치의 산소호흡기에 생명을 의존하고 있다. 정숙은 병원 건너편 카페에서 앉아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미 식어버린 커피잔을 두 손으로 붙들고, 깊은 갈등에 빠져있다. 10분 전에 의사로 부터 전화 연락을 받았다. 남자는 오늘 내일을 넘기기 어렵다고 한다.
깊은 갈등에 빠졌던 정숙은 단호하게, 말 그대로 숨을 꿀꺽 삼키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내가 지금 이러고 있는다고 해서 그가 쾌차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시름에 잠겨있는 것을 그 역시 좋아하지 않을 거야.'
그녀의 발길은 어느새 백화점 명품코너로 향하고 있었다. 고개를 꼿꼿이 하고 명품코너를 들어설 때는 알 수 없는 환희와 설레임으로 온몸의 세포가 격동함을 느꼈다. Chanel Collection 2020 W. 오늘이 샤넬, 프라다 세일 마지막 날이다. 오래전부터 점찍어 둔 핸드백 몇 개가 5분 후면 내 손에 들어 온다.
남자가 두어 달 전에 손에 쥐어 준 남자 명의의 카드가 정숙의 핸드백 안에서 건강한 호흡을 하고 있으니 이제 물건을 받고, 그 카드를 꺼내 최후의 명쾌한 긁음을 시켜주어야 한다. 그 남자가 가고 나면,카드의 생명도 끝나기에, 카드의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해 주고 싶은 것이다.
남자는 죽더라도 샤넬은 죽지도 않으며 내 곁을 떠나지도 않고 내가 숨쉬는 동안 오래도록 나를 기쁘게 해줄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진리는 사랑보다 훨씬 높은 곳에 있구나. 사람은 죽어서 가죽마저 흙으로 돌아가지만, 들판의 소와 양은 샤넬을 남기는구나. 샤넬은 여인을 배반하지 않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