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등학생 시절 크레용을 집에 두고 간 날, 하필이면 그날이 밖에서 그림 그리는 것으로 미술시험을 대체하는 날이었다. 할 수 없이 짝꿍의 크레용을 빌려 쓸 수밖에 없었다. 나름 그림을 잘 그린다는 생각을 가졌던 나는 자신 있게 스케치를 끝냈다.
그런데 짝꿍이 힐끗 쳐다보더니 표정이 일그러졌다. 자기보다 더 잘 그렸기 때문이었을 게다. 다양한 색상의 크레용으로 풍경화를 그려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를 못했다. 짝꿍이 자꾸만 눈치를 주었기 때문이었다. 눈물 나도록 속상한 일이었지만 제대로 색을 입히지 못했다. 미술 과목 점수가 낮게 나온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야! 홍 주사 대단하다. 아직도 흑백 TV를 갖고 있네!”
“검은 것도 색이고 하얀 것도 색이니 흑백TV도 단순해서 그렇지 컬러TV입니다.”
“그렇긴 하지...”
우리나라에서 첫 컬러TV 방송이 시작된 건 1980년 12월이었다. 그 전에 결혼한 제가 흑백TV를 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결혼 2년 후, 광주군청에서 경기도청으로 직장을 옮겨 수원으로 이사를 했다. 지금은 시로 독립한 과천지원사업소에서 2년간 일하고 도 본청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때 함께 일하는 직원들을 집으로 초대했는데 흑백TV를 보고 ‘아직도 흑백TV를 보냐!’고 놀라는 것이었다. 당시엔 컬러 TV 수상기가 고가의 상품이었고 흑백TV도 5년차라 큰 불편이 없었다. 실제로 그때까지만 해도 컬러보다는 흑백TV를 보는 집이 많았으니 그리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정율성 기념공원’ 조성은 5.18 민주화 운동 역사에 먹칠하는 일로 전면 철회해야 한다.” “역사논쟁, 이념논쟁을 하는 건 나쁘지는 않지만 항일 독립전쟁의 영웅까지 공산주의 망령을 뒤집어 씌워 퇴출시키는 건 안 된다.”
광주광역시의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 계획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사업 철회를 강력히 요구하는 측과 사업추진에 전혀 문제가 없다는 상반된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육군사관학교가 문재인 정부 시절 설치했던 홍범도·지청천·이회영·이범석·김좌진 등 독립운동가 5인의 흉상을 철거 또는 교내 다른 장소나 교외로 이전하는 방안을 발표해 논란이 일고 있다.
해당 인물의 전력이 어떠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항일독립 영웅까지 흑백논리에 휩싸인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서로 다른 다양한 생각들이 어우러지는 다양한 삶의 문화가 아니라 내 편 네 편, 두 갈래로 나뉘는 건 불행한 일이다.
세상은 정말 다양하고 치열한 경쟁을 하며 살아야 하는 복잡 미묘하고 글로벌하게 바뀌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새로운 상품이 나오고 자국(自國)의 이익을 위해 ‘영원한 동지도 적도 없는 세상’이 되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글로벌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는 무섭고 두려운 세상이 된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 팔색조처럼 다양한 얼굴과 ‘지킬박사와 하이드’처럼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불쌍할 지경이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야 삶의 질이 윤택해진다. 그런데 오직 내 편 네 편, 흑과 백으로 나누어지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공룡이 멸망한 것은 환경변화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환경에 적응하는 자가 살아남는 게 세상이치다. 세상에 같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세상엔 흑과 백, 옳고 그름만 있는 게 아니다. 맞고 틀림만 있는 게 아니라 '다름'도 있는 것이다.
다양함이 조화롭게 공존해야 밝은 내일을 담보할 수 있다. 흑백은 양 극단을 나누어 놓고, 내편 아니면 저편이라는 이분법적 논리다. 흑백논리는 세상을 황폐화시킨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대화와 타협을 통한 합의가 중요하다. 그게 급변하는 시대환경에 걸 맞는 몸짓이라는 걸 잊지말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