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논객 신광조

나무를 자주 생각하면 인생이란 것을 좀 배울 수가 있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는 시도 있지만, 사람을 나무로 놓고 보면, 사람과 나무를 성장시키는 것은 보이지 않는 비바람이요, 그 흔적은 태와 매듭입니다.
베트남에도 대나무가 많습니다만, 우리 한국의 대나무처럼 쓸모가 있지를 않습니다.
한국인은 대나무를 잘게 벗기고 쪼개 딸이 시집을 갈 때, 이바지를 담아 보내는 ‘채상(彩箱)’을 만듭니다.
어려운 사돈댁에게 경건한 예의를 표하는 것입니다.
한국에서 대나무의 고장은 전남 담양입니다.
고현정이라는 탤런트가 있습니다. 삼성가의 아들(정용진 신세계부회장)과 연애를 하다 결혼을 앞두게 되었는데, 당시 고현정 네 부모의 걱정이 태산 같았습니다.
‘삼성가’는 인물도 보고 관상도 보고 집안도 따지는 편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권력과 돈의 힘이 비등비등합니다.
삼성가 사돈댁은 고현정이 못마땅했습니다. 고현정의 인물이야 다할 나위 없이 최고였지만, 명문대도 안 나왔고, 집안이 명문세가도 아니었고 돈이 많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고현정의 아버지는 금이야 옥이야 키운 딸이, 삼성가로 시집간다는 이유만으로 기가 눌리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담양의 채상장(匠)에게 “돈은 얼마든지 줄 테니 우리 딸의 이바지 선물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지게 해달라”고 특별부탁을 했습니다.

‘채상(彩箱)’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얇게 가른 대오리를 황색, 청색, 홍색 등으로 물들인 다음 아름다운 무늬가 배치되도록 씨와 날의 색깔을 배합하여 결어내어 만든 상자를 말합니다.
고현정 시가(媤家)에서도 이바지가 담긴 채상을 보고 놀래버렸습니다. 전라도 사람들 깔보다가 기가 죽은 것입니다.
“그쪽 사람들 손재주가 있다더니, 그 말이 맞긴 한가 보네. 여기 담긴 창평 엿도 참 맛있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더니..."
채상에 대한 옛 기록을 보면 이규경의 ≪林園十六志≫ ‘彩箱條’에 ‘호남사람들은 대를 종이같이 다듬어서 청색과 홍색 등 여러 가지 물을 들여 옷상자 등으로 썼다.’는 말이 나옵니다.
담양의 채상은 예로부터 유명했습니다. 채상의 기능보유자인 서한규씨는 김동연 옹으로부터 담양지방의 전통적인 기법을 배워 익혀 오늘 날까지 꾸준히 가업으로 이어오고 있습니다.
얇고 가늘게 쪼갠 대나무에 빨강, 파랑, 노랑의 색깔을 채색하여 만든 상자는 처녀들이 시집갈 때 혼숫감을 담거나 여인들의 반지그릇, 보석함, 임금이 승하할 때 서울에 봉물을 담아 보내는 용도 등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대자, 기스름, 보통, 피자, 태옹 등의 종류가 있고 또한 삼합, 오합, 칠합 등이 있는데 옛 선비들이 궁중 야근을 할 때 입을 옷을 담아가는데 이용되었다고 합니다. 담양의 채상을 단연 최상으로 쳤습니다.
광주에서 공무원하던 시절 저는 ‘채상’을 결혼 준비물로 유행시키고 싶었습니다. TV 드라마 작가에게도 소재로 써줄 것을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기획했던 마케팅 일 중의 하나는 사람들이 돈을 비교적 잘 쓰는 ‘결혼 때 팔아먹자’ 였습니다.
그때 했던 캠페인 중 하나가 ‘TV, 냉장고만 장만해서 시집 보내지 말고 그림도 한 점 마련해 신혼 집 거실에 걸어놓자’ 였습니다. 가난한 지역 화가들의 시름 좀 덜어주고 싶어서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