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와 나는 정확히 8개월 차이가 난다.

아마 걸음마도 비슷한 시기에 시작했고 한글을 뗀 시기도 엇비슷하지 않을까?

그녀는 미인이고 나도 미인이다.

그녀는 예뻐서 미인(美人)이었고 나는 밥을 잘 먹어서 미인(米人)이다.

낮에 삼성병원에 잠깐 다녀왔다. 2015년 이라크 장군의 막내아들 뇌전증 수술을 위해 오갔던 곳이다. 당시 18세의 젊은이가 뇌를 여는 대수술을 받았다. 수술실과 중환자실 앞에서 혹시라도 외국인 청년이 잘못되면 어쩌나 나는 며칠간 가슴을 졸였다. 다행히 소설 같은 기적이 일어났고 그 청년은 완치되어 인생도 바뀌었다. 그러나 한 인간의 죽음 앞에 기적은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만 기적이 된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출연한 배우 강수연 씨
아제아제 바라아제 출연한 배우 강수연 씨

 

나의 어머니처럼 뇌출혈로 쓰러진 강수연 씨, 어머니는 우리들과 작별 인사나 유언도 남길 겨를도 없이 가셨다. 저녁 9시 뉴스를 시청하다가 머리에 손을 댄 채 소파에서 옆으로 갑자기 쓰러지셨다고 들었다. 그때 어머니는 만 65세였다. 맏딸인 내가 황급히 병원에 달려가 보니 산소 호흡기가 끼워져 있었고 체온은 따뜻했다. 나는 어머니의 발바닥에 빨간 펜으로 × 표시가 되어 있는 걸 보고 눈치챘다. 가망이 없다는 뜻이었는데 눈썰미 있는 내 눈에 띈 것이다. 어머니는 그날 즉시 장례식장에 모셔졌다.

강수연 씨가 쓰러져 병원에 이송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어머니 생각이 났다. 그런 상태라면 소생할 수 없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다. 100세 장수를 운운하는 시대에 너무도 안타깝다. 그녀는 이제 겨우 만 55세이다. 이렇게 일찍 세상을 떠나 한 줌의 재가 되어야 하다니 정녕 ‘미인박명’이란 말인가? 세상에는 차라리 죽음이 축복 같은 사람들도 수두룩하다. 지구촌에서 마귀 노릇을 하는 이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저승사자가 번지수를 헛짚은 것이다. 인간의 형상만 하고 있는 마귀들도 많건만 더 살아도 좋을 아까운 이를 왜 데려갈까?

그녀와 나는 정확히 8개월 차이가 난다. 아마 걸음마도 비슷한 시기에 시작했고 한글을 뗀 시기도 엇비슷하지 않을까? 가슴에 손수건 달고 국민학교 입학식을 했던 해가 같았을 강수연 씨! 그녀는 어려서부터 방송을 했고 깜찍했다. 1987년인가 ‘아제아제 바라아제’ 작품으로 모스크바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탔을 때 나는 비구니 역할을 한 그녀에게 주목했다. 그녀가 유명한 상을 탄 것보다 삭발을 하고서도 나보다 훨씬 예쁘다는 것에 더 놀랐다.

그녀는 미인이고 나도 미인이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예쁘고 귀엽고 깜찍했으리라. 나는 질문이 너무 많은 약간 골치아픈 꼬마였다고 들었다. 그녀는 예뻐서 미인(美人)이었고 나는 밥을 잘 먹어서 미인(米人)이다. 나도 간혹 마음이나 뇌가 예쁘다는 말을 들었다.

가톨릭 여학교 졸업후 나도 수녀나 여승이 될까 잠시 고민을 한 적 있었다. 그때 비구니가 되었으면 머리 깎은 나의 지금 모습은 어떨까? 그녀가 두상도 나보다 훨씬 낫다. 우리는 비슷한 시기에 지구별에 와서 660개월쯤 같은 하늘 아래 한국에서 살았다. 그러나 삶의 길이 달라도 너무도 달랐던 강수연 씨와 나. 이 시간 그녀는 저승, 나는 이승에 있다. 그녀 혼자서 떠난 낯선 길이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동안 반 세기 넘게 살아오면서 나는 어머니뿐 아니라 많은 이들을 잃었다. 가족, 친구, 지인들, 이웃들, 동료들.....대부분 예고없이 떠났다. 돌연사도 있고 자살도 있고 사고사도 있었다. 나이가 들어 자연사 하는 이들까지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이별과 작별을 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사람이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죽음의 종착역으로 달리는 기차를 타고 있는 것과 같다. 누구에게나 종착역이 있다. 내일도 오프라인이든 온라인이든 누군가의 부고가 뜰지 모른다.

할리우드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여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여주인공 비비안 리도 50대에 암으로 죽었다. 인도에서 태어난 그녀는 화장돼 영국의 호수에 뿌려진 걸로 기억한다. 인도 ‘발리우드’ 영화의 전설이 된 여인, 최고의 인기 여배우였고 아름다웠던 스리데비도 두바이 호텔의 욕조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었다. 그녀의 죽음에 인도 총리가 조문을 오고 인도 전역에서 팬들이 통곡했다. 스리데비는 높게 쌓은 장작더미 화장터에서 힌두교식으로 화장돼 한 줌의 재로 변했다. 강수연 씨도 화장될 거라고 한다. 비비안 리도 스리데비도 강수연 씨도 세상에 와서 채 700개월도 살지 못했다.

나는 지난주 부산의 해운대 어느 호텔에서 팔을 크게 다쳤다. 그때 정신을 잃었더라면 나도 혼자 죽은 채 발견됐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벌써 발인을 마치고 한 줌의 재가 되어 아마도 부산 태종대쯤 바다에 뿌려졌을 것이다. 삶과 죽음이 의외로 가까이에 있다. 작년 이맘 때 페친이 네팔 안나푸르나봉 관련 나의 글에 댓글을 달고 금방 돌연사 하셨다. 살아생전 마지막 남기신 댓글이 영어였다. ‘Over the rainbow......’. 그분은 전문 산악인이었다.

인간은 모두가 떠나간다. 알 수 없는 어느 순간 나도 지상을 떠날 것이다. 기왕이면 나 역시 한순간에 지구별을 떠나고 싶다. 병석에 오래 누워 서서히 죽어가는 고통을 느끼거나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작별로 괴로워하고 싶지 않다. 모든 어른들의 마지막 소원처럼 찰나에 가고 싶다. 그것도 날씨가 화창하고 아름다운 봄날에 말이다. 오늘 일원동 삼성병원 장례식장으로 가는 길가에 아카시아꽃이 만발해 있었다. 코끝을 스쳐오는 향기가 좋았다. 시선을 두는 곳마다 눈부신 봄날, 꽃같이 아름다운 생애가 그토록 허무하게 툭 졌다.

우리가 지금 살아있다고 교만할 일이 아니다. 누구도 내일을 예측하지 못한다. 천하의 미인도 지고 마니 화무십일홍이다. 절대 권력을 쥐었던 왕도 때가 되면 권좌에서 물러나고 죽는다. 권불십년이다. 한 시대도 쓸쓸히 막을 내린다. 그러니 인간에게 영원한 것이 무엇이랴? 언젠가는 다 놓아야 하고 잃어야 하건만 우리는 정녕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을까? 사람이 1,200개월도 살지 못하면서 왜 그리도 천 년 만 년 살 것처럼 아귀다툼을 하며 살아가고 있단 말인가? 국내외 정치판 소식마다 동물농장과 같다.

가끔 나의 생을 돌아본다. 이 세상에 와서 내가 남긴 게 무엇일까? 딸이나 아들이 있으나 독립된 인격체이다. 이런 저런 글을 써서 저장돼 있는 내 삶의 기록과 지구촌 이야기일까? 멋진 추억과 생명에 베푼 사랑만 남을 듯하다. 내가 아끼는 것들이나 지금 소유한 것들 중 어느 한 가지 죽어서 가져갈 수 있겠는가? 결국은 무소유이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

강수연 씨는 여러 영화 작품을 남겼다. 그녀는 우리에게 늘 젊은 날의 모습으로 멋지게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숱한 미담으로 남으리라. "강수연 씨, 평소 애주가라고 들었는데 당신이 먼저 간 곳에서 어느 날 우리가 만나거든, 같이 술 한 잔 나눌까요? 내가 혹시 늙어 있어도 기억할 거지요?"라며 묵념을 하고 돌아왔다. 또래를 그리 안타깝게 보내려니 가슴이 미어진다. 사람 사는 게 결국은 크고 작은 가슴앓이가 아니던가?

'지구별 가슴에 품다' 작가, 국적ㆍ인종ㆍ종교 모든 것을 초월해 사람들과 만나 소통하는 지구촌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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