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씨는 이 작품으로 베니스영화제 최우수여자배우상을 받았다.
국내 배우로서는 처음 월드 스타급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20대 초반이었던 강수연 개인에게 이런 갑작스러운 위상 변화는
일종의 ‘독이 든 성배’ 같았다.
뒷날 강수연은 TV에 나와 “‘씨받이’ 출연 당시 노출에만 집중된 시선에 상처받았다”고 말했다.

한 시절 가장 매력적인 여배우였던 '원조 월드스타' 강수연(55)씨가 7일 오후 3시쯤 별세했다.
지난 5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자택에서 뇌출혈 증세로 쓰러져 병원에 이송된 뒤 사흘만에, 여배우는 이제 ‘하늘의 별’이 됐다.
강수연씨는 4세 나이에 아역 배우로 데뷔해 영화 ‘비둘기의 합창’과 ‘슬픔은 이제 그만’(1978) 등에 출연했다. 청소년기에는 KBS 드라마 ‘고교생 일기’(1983) 등으로 전성기를 이어갔다.
‘청춘물의 예쁜 주인공’이었던 강수연씨에게 영화배우로서의 변곡점이 된 작품은 임권택 감독 의 ‘씨받이’(1987)였다. 명문가에 ‘씨받이’로 들어간 여자 ‘옥녀’ 역을 맡아 심한 노출과 파격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당시 국내 여배우로서의 전형적인 이미지를 깬 것이다.
강씨는 이 작품으로 베니스영화제 최우수여자배우상을 받았다. 국내 배우로서는 처음 월드 스타급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20대 초반이었던 강수연 개인에게 이런 갑작스러운 위상 변화는 일종의 ‘독이 든 성배’ 같았다.
뒷날 강수연은 TV에 나와 “‘씨받이’ 출연 당시 노출에만 집중된 시선에 상처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뒤에는 ‘연기를 어쩜 그렇게 잘하느냐’고 칭찬 일색일 정도로 반응이 달라졌다”고 덧붙였다.
베니스영화제 최우수여배우상 수상으로 ‘별’처럼 빛났지만, 이는 자신을 묶는 족쇄가 됐다. 편하게 영화나 드라마에 출연할 수 없게 됐다. ‘국제영화제 수상 배우’가 아무 작품 아무 배역에나 얼굴을 내밀 수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뒤로 강수연의 작품 출연 횟수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2년 뒤 강씨는 ‘아제 아제 바라아제’(1989)로 모스크바영화제에서 다시 최우수여자배우상을 수상했다. 여승 역에 맞추기 위해 젊은 여배우로서는 결코 쉽지 않은 ‘삭발’을 감행했다.
그 뒤로 강씨는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1989), ‘경마장 가는 길’(1991), ‘그대 안의 블루’(1992) 등 흥행작을 연이어 내놓았다. '송어'(2000년)로는 도쿄 국제 영화제 특별상, 백상예술대상 최우수연기상 등을 수상했다.
2001년엔 당시 최고 출연료를 받고 SBS 드라마 ‘여인천하’에 출연해 30%대 시청률을 기록했다. 강씨는 ‘달빛 길어올리기’(2011) 이후로 연기 활동이 뜸했다.
박근혜 정부 당시 부산국제영화제가 세월호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다이빙 벨’ 상영을 둘러싸고 좌편향 논란과 이에 따른 예산삭감 논란에 휩싸이며 큰 위기를 맞자, 강씨가 ‘구원투수’로 소환돼 2015년부터 2017년까지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강씨는 기자회견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제가 망가지는 걸 가만히 보고 있을 수 없었고, 게다가 앞으로 나서 달라는 후배들의 간절한 요청이 있었다”고 언급했다.
그 무렵 강수연씨가 후배 영화인들과의 술자리에서 했던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라는 말을, 류승완 감독이 영화 ‘베테랑’ 대사로 집어넣기도 했다.
하지만 강씨는 내홍을 겪던 부산영화제 사무국 직원들의 퇴진 요구 성명 발표로 2017년 위원장을 자진 사퇴한 뒤 한동안 잠적했다.
지난해 10월 제3회 강릉영화제 개막식에 등장하며 4년 만에 공식석상에 모습을 보였다.
강씨는 지난해 7월 연상호 감독의 넷플릭스 SF 영화 ‘정이’ 출연 소식을 알리며 연기 활동을 다시 시작했다. 올해 공개되는 ‘정이’는 그녀의 유작이 됐다.
장례는 영화인장(위원장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으로 치른다. 영화인 김지미, 박정자, 박중훈, 손숙, 신영균, 안성기, 이우석, 임권택, 정지영, 정진우, 황기성(가나다 순)씨가 고문을 맡는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11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