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국민은 거짓말이 거의 일상화되어 ‘거짓말’이 ‘한국의 문화’라고 한다.

2014년을 기준으로 위증죄로 기소된 사람이 1,400명이며,

이는 일본의 172배, 인구수로 환산하면 430배나 된다.

또한 허위 사실을 기초로 한 고소, 곧 무고(誣告) 건수는 500배이며

인구수로 환산하면 1,250배나 된다고 실증한다

강호논객 윤일원

 

인간은 이기적 존재다. 리처드 도킨스의 말을 구태여 인용하지 않아도 경험적으로 안다. 왜냐고? 가끔 이타적 행위를 하는 엉뚱한 인간을 영웅으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남을 위해 내가 죽는다. 인간 본성에 위배되기에 우리는 그를 존중한다. 모든 인간이 이타성을 가져 남을 위해 죽는다면, 이 또한 스스로 죽은 종족이 되어 어느 순간 소멸된다. 하지만 모두 이기적 존재만으로 가득하다면, 이 또한 살벌한 죽고 죽이는 종족이 되어 소멸한다.

영화 '패션오브 크라이스트'에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는 장면 / YOUTUBE
영화 '패션오브 크라이스트'에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하는 장면 / YOUTUBE

그래서 인간은 좋든 싫든 서로를 믿어야 한다. 그래야 사회가 성장하고 성숙해진다. 모든 사회체제가 믿음을 바탕으로 설계되었고, 그렇게 작동되도록 이루어졌다. 종교도 늘 믿어라, 믿음이 종교의 시작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베드로가 첫닭이 울기도 전에 세 번이나 예수를 배신 한 것을 보면 믿음이 그렇게 쉽지만 않다.

경제는 믿음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복잡한 이론이나 모델이 아니라 근본은 믿음, 신뢰다. 신뢰가 무너지면 하루아침에 붕괴한다. 신뢰의 상징은 돈이다.

돈, 인류가 처음으로 돈이라고 사용한 조개껍데기에서부터 중국의 청동, 조선의 엽전, 스페인의 레알, 영국의 파운드, 미국의 달러, 전자화폐인 비트코인에 이르기까지 돈은 모두 신뢰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인간이 한낱 종이쪽지에 지나지 않은 ‘100달러’의 가치를 신뢰하지 않고, 중앙정부가 이를 보증하지 않는다면, 경제는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덧없지만 잠깐만에 우리는 극도로 가난하게 된다. 왜냐고, 이 수많은 물건을 물물교환하려면 거래비용이 물건값보다 더 들어가기 때문이다.

세계은행 수석 연구원인 스티븐 낵은 “조건이 동일한 상태에서 국가 신뢰지수가 10% 높아지면 경제 성장률이 0.8% 상승한다”고 말하였다. 개인 간 신뢰의 합이 사회적 자본이 된다. 신뢰가 곧 돈이다. 사람의 가치도 이를 벗어나지 못한다.

‘미생지신(尾生之信)’이라는 고사가 있다. 어느 날 미생(尾生)은 개울가 다리 아래에서 여자와 만나기로 약속을 하였는데, 약속 시간 보다 일찍 나와 여인을 손꼽아 기다렸지만, 때마침 큰 비가 내려 개울물이 삽시간에 불어나게 되었다. 여자는 비가 너무 많이 내려 그곳에 나타나지 않았지만, 미생은 여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불어나는 물을 바라보면서 다리 교각을 꼭 붙들고 있다가 결국 물에 빠져 죽었다. 미생은 약속을 지키는 바람에 사랑하는 여인도 잃고 자신의 목숨마저 잃었다.

이영훈 교수는 <반일 종족주의>에서 우리 국민은 거짓말이 거의 일상화되어 ‘거짓말’이 ‘한국의 문화’라고 한다. 2014년을 기준으로 위증죄로 기소된 사람이 1,400명이며, 이는 일본의 172배, 인구수로 환산하면 430배나 된다. 또한 허위 사실을 기초로 한 고소, 곧 무고(誣告) 건수는 500배이며 인구수로 환산하면 1,250배나 된다고 실증한다.

이런 거창한 통계 지표나 거시적 담론도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너를 어떻게 믿지? 너는 나를 어떻게 믿어? 하는 딜레마에 봉착한다. 남녀 간 사랑도 마찬가지다. 내 느낌 100% 아는데, 난 너를 못 믿어! 하는 순간 둘 사이는 끝이다. 서로 믿지 않으면서도 사랑할 수 있을까? 글쎄, 내 아직 그런 종류의 인간을 발견하지 못했다.

자~ 사랑하는 사람 간 신뢰의 그 미묘한 감정선, 진실은 두 사람만이 아는 가히 신의 영역이라 그만두고, 매일 같이 물건을 사고파는 가게 할머니와 내 사이 신뢰는 무엇으로 증명될까? 즉 내가 언제 단골이 되었는지 알게 되고, 할머니 또한 나를 언제 단골로 인식할까?

우선 사고파는 물건의 품질이 좋아 속이는 것이 없는 것은 당연하고, 그것만으로 단골이 되지 않는다. 친절한 서비스. 그것도 도움이 된다. 반품. 물건에 하자가 있는 경우 즉시 반품이 이루어지면 단골로 성큼 다가간다. 하지만, 믿음의 끝판왕은 외상이다. 할머니가 외상으로 거래를 튼다면 이건 100% 단골이 된 것이다. 이제 단단한 믿음이 형성되었다.

나는 평생 자식놈한테 100% 외상으로 주었는데, 자식놈은 평생 100% 공짜라고 생각하는 인식을 빼고, 외상에는 공짜라는 심리, 즉 선물이라는 심리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왜, 은행처럼 이자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이자를 꼬박꼬박 받는 은행이 고객을 보고 단골손님이라고, 언빌리버블! 그것이 마케팅 용어일 뿐 단골은 아니다. 단골은 그런 것이 아니다.

이기적 인간 대 이타적 인간, 얼마의 비율이 섞여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지 잘 모른다. 가장 보편적 경험법칙이 80:20. 아닌 것 같다. 내 경험으로 비추어 봐서 대략 5% 언저리 머무르지 않을까 한다. 그럼에도, 선진국이 우리보다 더 신뢰의 사회가 된 것은 서양인이 우리보다 더 도덕적으로 우월한 종족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서로 신뢰하도록 촘촘히 문화와 제도를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본래 이기적 DNA, 이타적 DNA에 종속되어 살기보다는 상황에 따라 전략적으로 행동하기를 더 좋아한다. 좋은 제도, 좋은 문화 이것을 잘 가꾼 나라가 선진국이다.

노자의 마지막 81장의 첫 구절이 “신언불미(信言不美), 미언불신(美言不信)”이다. 믿음이 가는 말은 아름답지 않고, 아름다운 말은 미덥지 않다. 좋은 말이라 하여 다 좋지 않고, 좋지 않은 말이라 하여 다 좋은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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