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 강렬한 꽃에 '명자'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최보식의언론=이병철 논설위원]

안마당의 명자꽃이 피고 지고 있다.
피기 시작한 지 제법 되었는데도 꽃은 오래도록 머문다. 이 꽃 하나로 겨우내 가난했던 내 정원이 단숨에 화려해졌다. 검붉은 꽃잎에 대비되는 노란 꽃술이 무척이나 강렬하다.
‘명자꽃’, 누가 이 강렬한 꽃에 '명자'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명자꽃 앞에서 문득 떠오른 생각이다. 순자, 숙자, 옥자처럼 ‘명자’라는 이름은 내가 어릴 적에는 흔한 여자아이의 이름이었다. 고향 마을에도 명자라는 이름을 가진 내 또래 아이가 있었다.
시골에서는 이른 봄 유난히 붉게 피어나는 이 꽃을 ‘각시꽃’이라 부르기도 했다. 그리고 이 각시꽃은 집안에 심지 못하게 했다. 꽃을 안마당에 심으면 집안 여자들이 바람이 난다는 속설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각시꽃은 주로 사당 같은 곳에서나 외롭게 피어 있곤 했다.
흔히 요염한 여성을 두고 도화살(桃花煞)이 끼었다고 말하는 것이 봄날 진분홍빛으로 피어나는 복사꽃에서 짙게 화장한 여인을 연상했기 때문이라면, 이른 봄 선홍빛으로 붉게 터지는 이 꽃은 마치 바람난(?) 각시처럼 여겨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봄바람. 겨우내 움츠리고 있다가 봄물 터지듯 온 산천에 꽃들이 다투어 눈부시게 피어날 때, 빈 가지에 물이 오르고 새 잎새가 돋아나듯 온몸에 스멀스멀 일어나는 기운. 그 기운을, 옛사람들은 봄바람이라 일컬었으리라.
오래전 썼던 시 한 편이다.
'봄바람'
봄이 와서 바람이 불어 봄바람이 난다. 저 나무도 벌거벗은 제 몸 수줍어 서둘러 가리느라 새움 틔우기 바쁘고, 저 매화는 아예 눈 속에 꽃을 피워 오지도 않는 벌나비를 유혹하느라 애가 탄다. 들풀들은 들풀대로, 산새들은 산새대로 모두 저마다 단장을 하고 제 짝을 찾아 부르고 응답하며 분주하다. 옹달샘에 도롱뇽 벌써 알을 낳았는데 젊은이들은 젊은이대로, 노인네들은 노인네대로 봄이라 씽쑹생쑹 봄바람 난다. 온 천지에 봄이 와서, 온 천지에 바람이 불어 온 세상에 봄바람 난다. 시방 이 봄바람 앞에서 바람나지 않는다면 그건 살아 있는 게 아닌 게지. 봐라, 저 오랜 나무에서 남 먼저 꽃이 핀다. 거울 앞에서 아침나절 화장하던 저 아줌마, 바구니 하나 들고 물오른 엉덩이 흔들며 봄나물 캐러 간다며 집을 나선다. 온종일 들녘을 다니다 햇쑥 너무 어려 못 캐고 빈 나물바구니 두근두근 설렘만 가득 채운다. 큰애기 마냥 두 볼이 발그레하다. 봄이 익어 가는 까닭을 알겠다. 내게도 봄이 오르는가. 온몸이 근질근질하니 들로 나서야겠다. 씨 뿌릴 계절이 왔다. - '여류의 노래 5', '신령한 짐승을 위하여'
명자꽃은 산에서 피는 해당화 같다고 하여 ‘산당화’라고도 불린다는데, 꽃말은 의외로 ‘겸손, 신뢰, 숙녀, 오직 하나의 사랑’이라고 한다. 모두 ‘바람난 각시’와는 거리가 먼 이미지들이다. 아마도 현대의 꽃말은 옛사람들이 느꼈던 정취와는 많이 다른 모양이다.
나도 옛사람인 걸까. 내 눈에는 여전히 이 꽃이 뜨거운 열정을 품은 새색시처럼 보인다.
이 꽃에 명자라는 이름을 붙인 그 사람의 사연이 궁금해진다. 부디 아름답고 뜨거운 사연이었기를, 간절했을 그 사랑을 성원해 본다. (명자라는 나무 이름은 ‘명사(榠樝)’였다고 보는 설이 있다. 중국에서는 모과 계열 식물로 인식하고, 일본에서는 보케(木瓜, boke)라고 부른다. 서양에서는 flowering quince(꽃 모과)라고 불린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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