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전, 국산약 개발 성공 '비하인드 스토리'
[최보식의언론=채종일 메디피스 이사장(서울대 의대 명예교수)]

* 디스토마 치료제인 '프라지콴텔'의 국산화에 필자를 지도하며 산파 역할을 한 필자의 은사 이순형 전 인제대병원 이사장이 지난 21일 별세했다. (편집자)
요즘 K-Pop, K-Drama 등등 K-Culture가 온 세계를 휩쓸고 있다. 반도체, 자동차, 조선업, 그리도 최근에는 방산업(군사 방위를 위해 소요되는 물자 생산업)까지도 세계를 선도하는 위치에 놓이게 되었다고 한다.
필자가 세계기생충학자연맹(World Federation of Parasitologists; WFP) 회장으로 4년간(2018-2022년) 봉사할 수 있었던 것도 높아진 우리나라 위상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오늘은 'K-제약'이라 불러도 좋을 만한 예로서 흡충(디스토마)과 조충(촌충) 치료제인 프라지콴텔(praziquantel) 개발의 역사와 그에 얽힌 일화 한두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인체 기생 흡충에는 주혈흡충, 간흡충(간디스토마), 폐흡충, 장흡충 등이 있으나 1970년대까지도 마땅한 치료약제가 없어 전 세계의 무수히 많은 흡충류 감염 환자들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거나 독성이 강한 약제 투여로 인한 심한 부작용 때문에 고생하며 치료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시절이었다.
프라지콴텔은 이런 상황에서 독일 바이엘과 메르크 사가 공동으로 3년여에 걸친 연구 끝에 1975년에 처음 개발하였다. 유럽 국가 입장에서 보면 우리나라와 중국에 많은 간흡충, 폐흡충, 장흡충 치료보다는 아프리카와 중동지역에 많은 주혈흡충증 치료가 급선무였기 때문에 빌하르쯔주혈흡충을 죽이는 약제라 하여 빌트리시드(Biltricide)라는 이름으로 시판하기 시작했다.
프라지콴텔이 조충류(촌충류) 치료에도 좋은 효과를 보이는 것이 확인되어 드론싯(Droncit)이라는 이름으로도 생산을 시작하였다. Merck사에서는 조충류 성충 및 유충(낭미충) 치료 목적으로 쎄졸, 쎄스톡스 또는 씨스티시드라는 이름으로 프라지콴텔 생산을 시작하였다.
간흡충, 폐흡충, 장흡충 환자가 많아 어려움을 겪고 있었던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독일의 프라지콴텔을 비싼 값에 수입해 사용하기보다는 자체 개발을 하는 편이 국가적으로 훨씬 유리한 상황이었다.
프라지콴텔의 최종 구조식은 논문에 나와 있으나 원료와 제조과정에 대해서는 철저히 비밀에 붙여져 있어 전혀 알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고려대 의대 故 임한종 명예교수와 새로 도약하고 있던 국내 제약회사인 “SP제약사”의 故 장00 회장은 프라지콴텔의 국내 개발 필요성에 동의하고 자체 개발을 과감히 시도하게 되었다.
전적으로 국내 기술진에 의해 개발했는데 “SP제약사”의 기술진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김충섭 박사 연구팀의 공동연구로 1982년에 결실을 맺게 되었다. 최종 구조식만 알고 있는 상황에서 반대 방향으로 추적에 추적을 거듭한 결과 전혀 다른 원료에서부터 시작하여 전혀 다른 제조과정(바이엘/Merck사에서 사용하는 값비싼 장비를 쓰지 않는 새로운 방법)을 거쳐 동일한 구조식을 가진 새로운 약제 국산 프라지콴텔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필자는 국산 프라지콴텔 개발 후 간흡충 감염 환자에 대한 임상시험을 담당하게 되었다(서울대 의대 故 서병설 교수와 故 이순형 명예교수 지도하에). 최종 구조식이 동일하다고는 하지만, 프라지콴텔의 순도는 99.9% 정도였고 0.1% 정도에는 불순물이 남아 있었다. 여기에 만일 독성 성분이 들어있다면 난감한 상황인 것이다.
그래서 임상시험 전에 동물시험을 거쳐 안전성을 확인했으나 그래도 사람에 대해 처음 새로운 화합물을 사용한다는 것은 어쨌든 주저되는 일이었다.
이런 상황에 “SP제약사”의 장 회장께서 직접 국산 프라지콴텔 1코스 치료 용량을 다 드셨고 얼마 후 피를 뽑아 간 및 신장 기능검사를 받으셨다. 곧 이어 몇몇 임원들도 신약을 드시고 역시 검사를 받았다.
간 기능, 신장 기능 등이 모두 정상으로 나타나 필자는 매우 기뻤고 이젠 환자에게 사용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이렇게 시작한 임상시험 결과 국산 프라지콴텔이 매우 우수한 구충 효과를 보인다는 사실을 확인하여 커다란 보람을 느꼈다.
한국에서 프라지콴텔 합성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은 독일 바이엘사 회장은 처음에 강력히 의문을 제기했다. 산업 스파이를 통해 자기네들의 원료와 제조 기술을 빼 간 것으로 봤기 때문이었다.
바이엘사와 논쟁을 거듭하던 “SP제약사”는 바이엘사 회장을 한국으로 초청하기로 결정했다. 우리의 독자적인 원료와 제조과정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경기도 안산에 위치한 공장에서 원료와 제조과정을 모두 확인한 바이엘 회장은 무릎을 치며 한국의 기술에 감탄을 했고 모든 것을 인정한 후 한국을 떠났다.
이렇게 되어 국산 프라지콴텔은 전 세계에서 독창적인 신약으로 인정받게 되었고 세계 시장에서 바이엘사/Merck사와 당당하게 경쟁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세계 시장에서 한국 제품이 오히려 우위를 점하는 상황까지 되었다.
국산 프라지콴텔은 흡충류 구충제, 즉 디스토마를 죽이는 약이라 하여 디스토시드(Distocide)라는 이름을 붙였고 또한, 조충(cestode) 치료를 위해 용량을 조금 달리 한 쎄스토시드(Cestocide)라는 이름으로도 시판을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하여 국산 프라지콴텔은 개발 45년의 역사를 갖게 되었고, 중국(천진), 베트남(하노이), 수단(카르툼)에 공장을 지어 생산량을 늘려 갔으며 전 세계에 널리 국산 프라지콴텔을 판매해오고 있다.
그 결과 우리나라 국민들의 간흡충, 폐흡충, 장흡충 감염에 대한 성공적인 치료 성과는 물론, 장기적인 관리효과까지 얻게 되었고, 국민 건강에 크게 이바지하게 되었다. 우리 국민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중동, 중국, 캄보디아, 라오스, 남미 등 전 세계에 널리 분포하는 주혈흡충에 대한 치료 및 관리사업에도 크게 기여하게 되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국산 프라지콴텔이 아프리카의 저개발국가를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 널리 사용됨에 따라 세계보건기구(WHO) 등 국제기구들이 국산 프라지콴텔의 가격을 계속 낮춰 달라고 요청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에 맞춰 계속해서 가격을 내리다 보니 지금은 생산가조차도 보전하기가 어려운 상황에 봉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기업 운영을 위해 적정한 단가가 꼭 필요한데도 너무나 낮은 가격으로 공급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는 점은 매우 안타까운 점이다. 그럼에도 “SP제약사”의 故 장00 회장을 비롯하여 현 임원진인 장00 사장, 유00 사장 등이 인류애의 정신을 이어받아 계속 저가에 국산 프라지콴텔을 만들어 온 세계에 공급하고 있는 점은 매우 훌륭한 일이 아닐 수 없다.

cjy@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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