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투가 꼭 나쁜 건 아니다. 레버리지의 일종이다"
[최보식의언론=박주현 객원논설위원]

정부 부처에서 나오는 브리핑을 읽다 보면, 이 사람들이 단체로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린 건지 아니면 국민을 붕어로 아는 건지 진심으로 헷갈릴 때가 있다.
금감원이 '빚투(B2)' 단속에 나섰단다. 증권사 신용융자는 물론이고 마이너스 통장, 스탁론, 카드론, 보험사 약관 대출까지 탈탈 털어서 빚내서 주식하는 걸 막겠단다. 젊은 애들이 변동성 큰 테마주에 몰빵하다가 깡통 차고, 은퇴한 어르신들까지 노후 자금 들고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꼴을 보니 나라 시스템이 흔들릴까 봐 쫄린 모양이다.
상황이 심각한 건 맞다. 20대 소액 투자자들의 손실률이 일반 투자자보다 3.2배나 높다는 통계는, 지금 주식 시장이 투자의 장이 아니라 '합법적 홀짝 도박장'으로 변질됐다는 걸 증명한다. 평생 뼈 빠지게 월급 모아봐야 서울에 집 한 채 못 산다는 절망감. 그 거대한 공포가 청년들을 두 배, 세 배짜리 레버리지 ETF와 잡주 몰빵이라는 불나방의 삶으로 내몰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진짜 짚고 넘어가야 할 뼈 때리는 질문이 하나 있다. 지금 이 미쳐 돌아가는 투기판의 '삐끼' 노릇을 한 게 도대체 누구냐고.
기억 안 나나? 불과 얼마 전이다. 부동산 정책 말아먹고 민심이 흉흉해지니까, 현 정권이 분위기 반전용으로 꺼내 든 카드가 바로 '주식 시장 활성화'였다.
금융위 부위원장이라는 양반이 마이크 앞에 서서 "빚투가 꼭 나쁜 건 아니다. 레버리지의 일종이다"라며 국민들 귀에 대고 달콤한 악마의 속삭임을 시전했다. 국가 기관이 빚내서 주식하라고 펌프질을 한 거다.
어디 그뿐인가. 이재명 대통령은 본인 ETF 수익률이 150%가 넘는다며 자랑을 늘어놓고, 문재인까지 등판해 펀드 수익률 440%를 떠벌렸다. 나라의 전·현직 VIP들이 나란히 서서 "나 주식으로 돈 이만큼 벌었어, 부럽지?"라며 전 국민의 벼락거지 콤플렉스와 FOMO(소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를 극대화시켰다.
대통령이 앞장서서 수익률 자랑을 하는데, 쥐꼬리만 한 월급 받으며 성실하게 적금 붓던 청년들이 무슨 생각을 했겠나. "아, 땀 흘려 일하는 놈만 호구구나. 나도 마통 뚫어서 텐배거(10배 수익 종목) 하나 잡아야겠다"며 눈이 뒤집히는 게 당연한 수순 아니었을까.
그래 놓고 이제 와서 증시가 고점 징후를 보이고 개미들 계좌에서 피눈물이 날 것 같으니까, 갑자기 점잖은 척 완장을 차고 "빚투는 위험합니다. 단속하겠습니다"라며 호루라기를 분다.
어제까진 도박장 문 활짝 열고 "드루와, 드루와" 삐끼 짓을 하던 놈들이, 오늘 갑자기 도덕 선생님 안경을 쓰고 나타나 "도박은 나쁜 겁니다"라며 훈계를 두는 꼴이다. 이 정도면 내로남불을 넘어 정신분열 수준이다.
물론 투자는 본인 책임이다. 마우스 클릭한 손가락의 업보는 본인이 짊어지는 게 맞다. 하지만 국가의 리더십이라는 건, 국민이 이성을 잃고 벼랑 끝으로 달려갈 때 찬물을 끼얹어 진정시키는 '냉각수' 역할을 해야 하는 거다. 지지율 좀 올려보겠다고, 부동산 실패 덮어보겠다고 전 국민을 상대로 도파민 장사를 해놓고 이제 와서 꼬리를 자른다?
처음 주식 시장에 들어온 청년들이 빚내서 잡주 타는 법부터 배웠다. 이 무서운 도박 중독의 후유증은 앞으로 10년, 20년 동안 이 나라 청년들의 척수를 갉아먹을 거다.
국민의 영혼을 담보로 도박판을 벌인 자들이 단속반 행세를 하는 이 기막힌 사기극 앞에서, 깡통 찬 계좌를 들여다보는 개미들의 한숨만 짙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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