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 소설 ‘봄봄’ 다시 읽기

[최보식의언론=조수진 전 국민의힘 의원(전 동아일보 기자)]

산수유꽃. 사진 조수진.
산수유꽃. 사진 조수진.

봄의 전령사, 산수유꽃과 생강나무꽃은 꽃 피는 시기나 색감이 비슷하다. 같은 듯 다른 꽃이다. 

생강나무는 꽃이 가지에 바짝 붙어 피고, 산수유는 꽃에 비해 꽃자루가 길어 작은 꽃들이 여유롭다지만 구별이 쉽지 않다. 

산, 비탈에서 만나는 노란 꽃은 생강나무꽃, 평지에서 만나는 것은 산수유꽃라고 정리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내 경우 집에서 가까운 서울 양천향교 뒤 궁산(宮山)에서 생강나무를 만난다. 

생강나무는 가지를 꺾거나 비비면 생강 냄새가 난다.  그래서 생강나무다. 아주 오래 전부터 잎과 껍질 등을 약으로 썼다. 꽃이나 나뭇가지를 우려내 차로도 마시는데 매운맛이 난다. 

흥미로운 것은 강원도에서는 생강나무를 남쪽에서 자라는 '동백나무'라고 부른다는 점이다. 이것을 알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에 나오는 동백나무가 사실은 생강나무라는 것을 나이 들고서야 알게 됐다. 어릴 때부터 의아하게 생각했던 미스터리를 얼마 전에서야 풀게 된 것이다. 

"산기슭에 널려 있는 굵은 바윗돌 틈에 노란 동백꽃이 소보록하니 깔리었다…(중략)…그리고 뭣에 떠다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동백꽃’(1936년)의 말미에 나오는 내용이다. 

다소 조숙한 점순이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던 '나'가 자기네 닭을 거의 빈사지경(瀕死地境)에 빠뜨린 것에 분개한 나머지 점순이네 수탉을 단매로 후려쳐 죽이고, 이를 무마시켜주는 조건으로 점순이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한창 흐드러지게 핀 동백꽃 속으로 쓰러져 파묻히는 장면이다. 

점순이를 부르는, 어머니의 역정 난 소리에 일단락되지만, 그 여운은 오래 남아 있다. 

동백은 우리나라에선 남쪽 해안가에서 많이 자란다. 내 고향 근처 전북 고창의 선운사 동백꽃은 4월 중순에서야 피는데, 동백나무 자생지의 북방한계선에 있어서다. 

다시 말해 김유정의 고향인 강원도의 내륙에서는 동백꽃을 볼 수 없다. 

동백꽃은 노랗지 않고(붉고), 알싸한 냄새가 나지 않는다. 

강원도에서 생강나무를 동백이라 부른 건 동백과 생강나무의 용도가 같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동백나무 씨앗에서 짠 동백기름은 식용은 물론 여성들이 머리카락에 바르는 용도로 썼는데, 동백이 자라지 않는 강원도에서는 생강나무 열매로 기름을 짜서 사용했다는 것이다. 동백기름 대신 사용하기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그 이름까지도 동백으로 부르게 됐다고 한다. 

아이는 춘천을 좋아한다. 아이와 춘천에 갈 때면 김유정역에 들르곤 했다. 춘천역에서 두 정거장 정도다. 

이곳 실레마을은 김유정의 소설 상당수의 무대다. 인근에는 김유정의 삶과 그의 문학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김유정 문학촌이 있다. 입구(口)자 형 초가집과 정원, 연못 그리고 김유정 기념관이 있다.

김유정의 작품엔 '나'와 '점순이'가 자주 등장한다.  ‘봄봄’에도 나오고 ‘동백꽃’에도 나온다. 

문학촌에는 주요 명장면을 조각으로 만들어놓았다. 

동백꽃나무도 있다. 

생강나무를 동백이라 부르는 것을 여기서 알았다.

산수유꽃도, 생강나무꽃도, 동백꽃도 피고 있다. 

봄이 오고 이들 꽃이 피면 김유정의 ‘봄봄’과 ‘동백꽃’이 생각난다. 

새봄을 맞을 때마다 떠오른다. 

가난과 병마에 시달리다 ‘닭 한 마리 고아 먹으면 나을 것 같다’던 김유정의 30년 요절 생애가 처연했듯 지금의 봄은 화창하지 않다. 

장충단공원의 산수유꽃, 궁산의 생강나무꽃을 보면서 김유정의 짧은 생애를 아쉬워한다. 

조수진 SNS 캡처, 생강나무(위). 동백(아래 왼쪽)과 김유정문학촌(아래 오른쪽).
조수진 SNS 캡처, 생강나무(위). 동백(아래 왼쪽)과 김유정문학촌(아래 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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