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수자는 1992년에 지어져 30년이 넘은 이 낡은 아파트를 직접 들어가 보지도 않고 선계약
[최보식의언론=박주현 재담 엔터테인먼트 대표]

청와대가 대통령의 분당아파트 매도 소식을 알린 바로 그날, 거짓말처럼 29억 원짜리 계약서에 도장이 찍혔다. (1992년에 3억 6천만 원에 구입해 부부 공동명의로 10년 이상 거주했고 부부만 사는 집이라면, 대략 세금은 전체적으로 1억 원이 좀 넘는다).
대출이 막혀 온 국민이 집 한 채 사고팔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이 빙하기에, 내놓자마자 1시간만에 팔리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이 완벽하고도 눈부신 타이밍을 보며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 물론 우연이겠죠. 세상엔 우리가 모르는 신비로운 일들이 참 많으니까요.
언론 보도를 보니 상황은 더욱 경이롭다. 매수자는 1992년에 지어져 30년이 넘은 이 낡은 아파트를 직접 들어가 보지도 않고 선계약을 맺었다고 한다. 동네 당근마켓에서 3만 원짜리 중고 전자레인지를 살 때도 전원은 들어오는지 꼼꼼히 따져보는 게 인간의 본성이다.
그런데 주머니에 29억 원의 현금을 찔러넣고 동네를 산책하던 어느 대범한 자산가께서, 그 집에서 '대통령이 배출되었다'는 가치에 혹해, 누수나 곰팡이 따위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저 우주의 기운에 이끌려 덜컥 랜덤박스를 구매하신 모양이다. 아, 물론 현금이 너무 많아 처치 곤란인 분들에겐 흔한 일상이겠죠.
더 놀라운 건 세입자 문제다. 지금 그 집에는 세입자가 살고 있고, 토지거래허가구역이라 매수자는 당장 실거주를 해야 하는 깐깐한 조건이 붙어 있다. 보통 이런 꼬인 매물은 변호사를 끼고 몇 달을 싸워도 해결하기 힘든 지뢰밭이다.
그런데 매수자가 나타나자마자 세입자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퇴거 시점을 4월로 앞당겨 주기로 쿨하게 합의했단다. 아, 물론 세입자분께서도 대통령의 부동산 정상화 의지에 깊이 감명받아 기꺼이 짐을 싸주신 거겠죠. 암요, 그렇고말고요. 매수자 세입자 모두 이 대통령의 열렬 팬일 수는 있다.
1998년에 3억 6천만 원에 산 아파트가 재건축 선도지구라는 날개를 달고 29억 원이 되어 돌아왔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하지 않고 단지 액수로 보면 무려 25억 원의 시세차익이다.
평소 불로소득은 국가의 암적 존재라며 다주택자들을 향해 서슬 퍼런 사자후를 토하시던 분이, 1기 신도시 재건축 호재의 가장 달콤한 열매를 맛보게 된 이 훈훈한 결말. 아, 물론 이것은 천박한 투기가 아니라, 1주택자의 숭고하고도 정당한 자산 재배치일 뿐이겠죠.
미리 섭외된 매수자와 짜고 친 각본이 아니냐고 의심하는 불경한 자들이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음모론을 단호히 배격한다. 대통령께서 퇴직 후 돌아가 살겠다며 그토록 애지중지 아끼시던 집을 내놓았는데, 마침 그날 그곳을 지나던 얼굴 없는 독지가가 집도 안 보고 현금 29억을 일시불로 던지며 세입자 문제까지 하이패스로 뚫어버린 이 아름다운 동화.
우리는 그저 이 완벽한 서사 앞에서 박수나 치면 된다. 아, 물론 정말로 다 믿습니다. 대한민국은 원래 이렇게 기적이 일상이 되는 위대한 나라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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