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이 잠들어 괴물들이 등장한 현실이 지금 보수의 현 주소

[최보식의언론=한정석 강호논객]

정말로 보수 진영 사람들에게 권고드린다.

절대로 정치를 혼자 '독고다이 원맨쑈'로 하는 이들을 추종하면 안 된다.

전한길이 돈이 없겠나. 그동안 벌어 놓은 것만 해도 수십 억은 있다. 전한길이 정말 보수의 운명과 미래가 걱정되어 정치판에 뛰어들었다면 이런 식으로는 하지 않는다.

정치는 세력이고, 세력은 조직의 파워로부터 나온다. 조직이 없는 세력은 군중이다. 군중은 정치적 주체가 될 수 없다.

전한길이 옳게 하려 했다면 정치 조직을 꾸리고 정치철학과 사상을 정립할 인텔리겐차들부터 모아야 했다. 이로부터 노선의 정치 철학과 투쟁 방향이 나온다.

2002년 고(故0 김상철 변호사가 그렇게 했다. '고시계' 발행인이었던 김상철 변호사는 당시 황금알이었던 고시계를 팔고 자신의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받은 60억을 가지고 보수 운동에 뛰어 들었다.

김상철 변호사는 그 자금으로 '미래한국'과 '탈북난민 구조 운동 본부'를 만들었다. 국내외 시사 정치 정론 운동과 함께 북한인권 운동을 최초로 전개한 주인공이다.

당시는 노무현 정권이었다.

김상철 변호사는 최초로 이승만 연구 세미나 조직을 만들었다. '이승만 콜로키움'이 그것이고 이로부터 이승만 연구원들이 분화되어 등장했다. 보수의 지적 운동을 토대로 독일 보수혁명과 같은 노선을 만들었다. 한국 보수로서는 처음으로 자유주의와 결합한 보수주의 노선을 정립했다.

그 전의 보수 세력이라고 해 봐야 관변단체들이었고, 이도형의 '한국논단'은 보수의 중심 저널이었으나 국가주의 성향이 강했다.

김상철 변호사의 이러한 신보수주의 운동은 교회들과 연계되어 많은 크리스찬들이 합류했다. 특히 북한인권 운동의 출범은 여기에 정치적 정당성을 부여해서 보수 운동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이러한 힘들이 모여 2003년 87체제 이후 최초로 보수가 광화문에 집결하는 '반핵반김 3.1 집회'가 이뤄질 수 있었다.

김대중에 이어 등장한 노무현 정권은 보수에게는 절망이었다. 이때 등장한 반핵반김 국민 운동은 보수에게 이전과는 다른 성찰과 비전을 제시했다. 진보는 광화문에 넘쳐나는 보수 시민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당시 보수 운동은 광화문 집회가 전부가 아니었다. 이미 보수의 정체성을 찾는 성찰적 깊이가 더해가고 있었고 건국과 이승만에 대한 재인식의 토대들을 형성해 가고 있었다.

그러한 저력이 국민과 보수 대중들 사이에 스며들고 짜이면서 2007년 이명박 정부로 교체가 이뤄졌다. 이명박은 당시 김상철 변호사의 보수주의 운동에 크게 공감해 왔고 기독교 보수의 소명과 사명으로부터 지도되고 인도되고 있었다.

이명박에게는 '뉴라이트'라는 신진 그룹들이 있었고, 이들은 보수주의 성찰의 동력으로부터 형성된 현장형 인텔리겐차 운동 그룹들이었다. 그 힘으로 이명박 정권은 박근혜 정권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김상철 변호사가 과로로 쓰러졌고 미래한국과 북한구원 운동은 뉴라이트에 자리를 내어 주었다.

뉴라이트는 정파성이 강했다. 김진홍 목사가 주도했는데, 김진홍 목사는 김상철 그룹의 보수 인텔리겐차들과 결합하지 않았고, 권력 기반을 이명박 정권과 공유하려 들었다. 당연히 현실 정치의 한계 속에서 적과 동지의 질서 분화가 발생했고 뉴라이트는 내파되는 상황이 왔다.

그 결과 보수는 내적으로 분열하고 있었다. 김상철의 신보수주의 운동으로부터 소외된 구 보수 인사들의 불만은 박근혜로 결집되었다. 그들의 이념은 '반공 보수'였지만 경제적 자유주의나 이승만의 기독교 정치 신학에는 거부감이 있었다. 그들은 '박정희주의자'들이었다.

김상철 변호사가 쓰러지지 않았다면 보수는 이승만, 박정희를 결합하고 이로부터 산업화와 근대화의 경로, 그리고 87체제의 민주화를 보수의 대승적 결단으로 수용하는 '네이션 빌딩'의 정치사 인식 구조를 완성할 수 있었다. 여기에는 김상철과 함께 서울대 3인방이었던 박세일, 서경석 등이 있었고, 이들은 YS 문민화를 수용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보수의 운동력은 MB 정권의 신보수 세력과 박근혜의 구보수 세력 간에 알력이 생기면서 힘을 잃어갔다. 박근혜 세력은 이명박 세력을 보수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 결과 친박 인사들은 자신들의 정권을 재창출이 아닌 '교체'로 선언했다. 박근혜 주변에는 정치철학을 가진 인텔리겐차들이 없었다.

대개 MB때 합류했던 이들이 일부 박근혜 진영에 승계되기는 했지만 핵심부는 엉터리 구닥다리들과 군장성 출신들, 골동품 고위 관료 출신들이었다.

박근혜는 이승만에 관심도 없었고 박정희를 사실상 부정해놓고는 '박정희 재평가'에 올인하려 들었다. 보수의 네이션 빌딩이 추진되어 온 히스토리와 경로를 이해할 만한 지력이 없었다.

더구나 박근혜 세력들은 노무현 정권을 교체해낸 보수 크리스찬들에게는 오히려 내면적 적대감을 가졌다. 자유주의 경제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었고, '창조경제'라는 무개념으로 나아가다가 세월호에 이어 탄핵에 접어들었다.

박근혜 정권에서 황교안이 크리스찬 보수로서 뭘 했던가. 황교안은 최순실의 '딸랑이'에 지나지 않았다. 이후 보수는 정치적 자산을 지속적으로 잃는 파산 경로에 접어들었다.

믿음이 흔들리면 우상이 등장하는 법. 광장의 우상은 전광훈이라는 이의 점유로 넘어갔고, 이에 전한길이 등장했다. 성찰적 보수가 몰락한 자리를 맹신과 사이비들이 장악하게 된 것이다.

이성이 잠들어 괴물들이 등장한 현실이 지금 보수의 현 주소다.

김상철, 박세일이 살아 있었다면 황교안 같은 껍데기의 부정선거 음모론 같은 건 자리잡을 수 없었거니와 통일교, 신천지가 보수에 발호할 수는 더욱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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