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에게 동의하면 '건전한 공론화'이고, 반대하면 '정치적 이득을 노린 왜곡'이나 '조작'으로 규정

[최보식의언론=박주현 재담 엔터테인먼트 대표]

"어려운 문제일수록 토론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서두는 언제나 그럴싸하게 들린다. 하지만 그 문장의 행간을 읽어보면 번역기는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내 말에 토 달지 말고 돈 낼 준비나 하라"는 통보를 '토론'이라는 민주적 단어로 포장했을 뿐이다.

자신에게 동의하면 '건전한 공론화'이고, 반대하면 '정치적 이득을 노린 왜곡'이나 '조작'으로 규정하는 태도에서, 이분법적 사고가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리는 수준보다 단순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하라는 식의 '답정너' 훈시다.

'설탕 세금 혹은 부담금' 정책이 위선적인지 확인하는 데는 복잡한 경제학 이론도 필요 없다. 동네 마트 영수증 한 장이면 충분하다. 현재 시중에서 설탕 1kg은 약 2,500원이다.

반면 알룰로스나 스테비아 같은 대체당은 같은 용량으로 환산하면 가격이 훌쩍 뛴다. 작게는 5배에서 10배에 달하는 가격 차이다. 이 거대한 가격 장벽은 단순한 물가 차이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식탁을 가르는 잔인한 '계급장'이다.

부자들에게 '당류 저감'은 그저 알룰로스를 장바구니에 담는 가벼운 취향의 선택이다. 하지만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저소득층이나 식비 1,000원에 벌벌 떠는 자취생에게, 설탕보다 10배 비싼 감미료는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사치재다. 그들에게 설탕은 단순히 맛을 내는 조미료가 아니라,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열량을 채워주는 생존 연료다.

결국 '설탕부담금'의 총구는 정확히 빈곤층을 향해 조준되어 있는 '역진세'다. 이미 비싼 유기농 주스를 마시는 부유층은 영향권 밖이지만, 믹스커피 한 잔과 편의점 빵으로 끼니를 때워야 하는 노동자와 서민들에게만 이 부담금은 '징벌적 과태료'가 된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세금'과 '부담금'을 구분하며 현학적인 말장난을 하고 있다. 용도가 정해져 있든 아니든, 국민 주머니에서 강제로 돈이 빠져나가는 건 매한가지다.

1,500원짜리 콜라 한 캔 마시는데 200원이 더 붙으면, 소비자는 그걸 물가 인상이나 세금으로 느끼지, "아, 이건 나의 췌장을 위한 목적성 예치금이구나"라고 감격하지 않는다. 징수하는 사람 입장에서나 장부 정리가 다를 뿐, 뜯기는 사람 입장에선 똑같은 갈취다.

정부가 진정으로 '달콤한 중독'을 해결하고 싶었다면, 회초리를 들기 전에 사다리부터 놓았어야 했다. 복잡한 공정 탓에 10배나 비싼 대체당의 생산 단가를 낮추도록 지원하거나, 저소득층에게 건강한 식자재를 보급하는 것이 순서다. 그런 노력은 쏙 빼놓고 "돈 없으면 설탕도 먹지 마라"는 식으로 세금을 매기는 건 '건강 불평등'을 해소하는 게 아니라 '식단의 양극화'를 국가가 공인하는 꼴이다.

걷힌 돈이 건보료 인하에 쓰일 것이라는 주장도 순진하기 짝이 없다. 정부 예산은 결국 한 주머니나 다름없다. 설탕부담금으로 의료비를 메우면, 원래 그곳에 투입되어야 할 국고는 슬그머니 선심성 현금 살포에 쓰일 게 뻔하다.

나라 곳간이 비어서 푼돈이라도 긁어모아야겠다면 차라리 솔직해져라. 가난해서 설탕을 먹을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주머니를 털며 "다 너희 건강을 위해서야"라는 건 위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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