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公人)의 죽음은 역사적 평가의 대상이지, 신성불가침의 성역이 아니다
[최보식의언론=박주현 재담 엔터테인먼트 대표]

당초 행정안전부에서 이해찬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의 국가장(國家葬)을 검토한다는 소식에 반대한다는 글을 썼더니, 누군가 이렇게 꾸짖었다.
“그분들의 희생 위에 당신 같은 인간도 글 쓸 자유가 생긴 거다. 부끄러운 줄 알라.”
섬뜩하다. 이것은 토론이 아니라 ‘설교’이자 ‘협박’이다.
나는 고인의 죽음 자체를 조롱한 적이 없다. 인간으로서 명복을 빌었다.
다만, 그가 남긴 정치적 유산이 국민 모두의 존경을 받아 마땅한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을 뿐이다.
국무총리 시절 3.1절 골프 파동으로 물러났고, 진영 논리를 앞세워 정치를 전쟁터로 만든 장본인에게 세금으로 치르는 국가장은 과하다는 것이 내 주장의 요지였다.
그런데 지지자들은 이 이성적인 구분을 ‘패륜’으로 몰아간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우리 편 지도자는 무조건 선(善)이고 그를 비판하는 건 악(惡)”이라는 이분법밖에 없다.
공인(公人)의 죽음은 역사적 평가의 대상이지, 신성불가침의 성역이 아니다. 하물며 일반인의 장례에서조차 고인에 대한 애증이 교차하는 게 인간사거늘, 한 시대를 풍미한 정치인에게 칭송만 바치라는 건 억지다.
더 기막힌 건 그가 운운한 ‘자유’다. “그분 덕분에 글 쓸 자유가 생겼다”고? 번지수가 틀렸다.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는 특정 정치인의 시혜(施惠)가 아니다. 국민이 피로 쟁취한 권리다.
게다가 지금 그 ‘자유’를 가장 앞장서서 파괴하는 세력이 누구인가. 바로 이해찬을 추앙하는 민주당이다. 광우병, 천안함, 사드, 후쿠시마 오염수 괴담을 퍼뜨려 사회를 혼란에 빠뜨릴 때는 ‘표현의 자유’를 방패 삼더니, 정권을 잡으니 ‘가짜 뉴스 처벌법’을 만들어 비판 언론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 한다. 자신들은 마음껏 거짓을 떠들 권리를 누리고, 남에게는 침묵할 의무를 강요한다.
그런 집단이 나에게 “자유를 누리니 고마워하라”고 훈계한다. 이것은 블랙 코미디다. 내가 누리는 자유는 그들이 준 게 아니라, 그들과 싸워서 지켜내야 할 대상이 되었다.
애도는 강요될 수 없다. 슬픔은 전염될 수 있어도, 존경은 주입될 수 없다. 전 국민이 똑같은 표정으로 울고, 똑같은 찬사를 바치길 바란다면, 그건 민주공화국이 아니라 저기 북쪽의 ‘수령님 나라’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나는 고인의 명복을 빈다. 하지만 국가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에게 “입 닥치고 추모하라”고 강요하는 당신들의 그 전체주의적 폭력성에는 더더욱 동의할 수 없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권력자의 관(棺) 앞에서도 “그는 공도 있었지만 과도 컸다”고 말할 수 있는 사회다. 당신들이 믿는 ‘민주’는 도대체 무엇인가.
그 뒤 국가장(國家葬)은 여론의 역풍이 두려워 포기하고, '사회장(社會葬)'으로 타협한 모양새다. 하한가를 맞은 주식을 상장 폐지 직전에 겨우 방어한 셈인데, 냉정하게 계산기를 두드려봐도 이건 여전히 ‘자산 가치의 뻥튀기’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사회장'이란 그 단어 그대로 사회 구성원 다수가 슬퍼하고 기릴 만한 공통의 기억이 있을 때 성립된다.
이해찬 전 총리의 이력이 과연 그 '보편적 존경'의 기준값을 충족하는가? 그는 평생을 통합보다는 ‘갈라치기’와 ‘진영의 승리’에 복무했던 ‘정파의 대부’였다. 한쪽 진영에겐 거목일지 몰라도, 반대편에겐 그저 '독선적인 승부사'였을 뿐이다.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죽음은 깃털보다 가볍다”고 했지만, 정파의 수장을 사회의 어른으로 포장하려는 이 시도는 깃털을 태산으로 둔갑시키려는 억지스러운 연금술이다.
전국 분향소 설치? 이건 추모가 아니라, 지방 자치단체들에게 강요하는 ‘슬픔의 할당량’이다. 그의 업적을 기리는 게 아니라, 현재 집권 세력의 위세를 과시하기 위한 ‘장례의 정치화’일 뿐이다. 그의 장례식은 '민주당장(葬)'이 딱 맞다. 그러면 아무 소음이 생길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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