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나의 속도를 찾는 건 아닐까
[최보식의언론=엄상익 논설위원]

바닷가에 와서 4년이 넘게 지나면서 좋은 친구들이 생겼다. 어제는 옥계 바다마을에 사는 심 선생 부부와 점심을 같이 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에 심 선생의 부인이 이런 말을 했다.
"저는 일흔아홉 살이고 내년에는 팔십이 되요. 이제는 내일이나 미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선물같이 받은 하루하루를 즐기고 삽니다."
이해가 갔다. 그녀는 뇌종양 수술도 했고 커다란 암 덩어리가 생긴 장도 잘라냈다. 수술을 할 때마다 죽음을 결제했다고 했다.
남편인 80대의 심 선생도 얼마 전 서울의 병원에서 큰 수술을 했다. 그리고는 다시 바닷가 마을로 내려왔다. 심 선생이 이런 말을 했다.
"저도 앞으로 남은 시간이 3년 정도라고 생각해요. 남은 시간을 어떻게 즐기고 살지를 매일 생각합니다."
"남은 시간을 지금 어떻게 보내십니까?"
그에게서 배우고 싶었다.
"특별한 건 없어요. 이웃 친구가 찾아오면 함께 차를 마시고 밤바다 위에 달이 뜨면 달을 보죠. 한동안 낚싯대를 들고 금호항 옆의 갯바위에 서서 하얀 물결이 되어 밀려드는 파도를 즐기기도 했고요."
"그게 다입니까?"
나는 놀랐다. 그렇게 살 수도 있구나. 심 선생이 미소를 지었다.
"젊어서는 참 바쁘게 살았는데 내 나이가 되니까 속도가 필요없어졌어요."
그의 말을 들으며 나는 물었다. 나는 지금 시속 얼마의 속도로 살고 있나.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 모르지만 나는 여전히 달리듯 살고 있을 것인가.
몇 달 전 서울에 갔을 때 지하철역에서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밀물이 되어 쏟아져 들어오고 썰물이 되어 빠져 나갔다. 종종걸음으로 달리는 사람들의 물결이 부딪쳐 소용돌이를 쳤다.
지하철은 정거장마다 사람들을 토해 놓고 달려갔다. 그런 속에서 나는 습관처럼 사람들 틈에 섞여 뛰고 있었다.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제는 그런 속도가 필요 없는 나이가 됐다는 것을.
그동안 살아온 삶은 타인의 시계에 맞춰 달린 것은 아닐까. 재판 시간에 맞추느라고 손에 진땀이 났었다. 법률서류나 청탁원고 마감시간을 앞에 놓고 신경이 면도날 같아진 적도 있다. 욕심을 부린 계획을 세워 놓고 그걸 달성하기 위해 내면의 엔진이 과열되기도 했다.
기차가 종착역을 앞두고 속도를 늦추듯 나는 요즈음 삶의 속도를 줄이고 있다. 매일 블로그에 올리던 글을 이틀에 한 번씩 올린다. 올리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암탉이 알을 낳듯 자연스럽게 글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암탉도 알을 낳기 전 둥지에 가만히 앉아 있는 시간이 길다. 그건 게으름이 아니다. 그건 생명을 준비하는 거룩한 정적이다.
그동안은 나의 블로그를 '글빵'집에 비유하고 찾아드는 손님을 기다렸다. 빵이 팔리는 조회수를 보고 빵 맛을 가늠했다. 사람들마다 빵맛에 대한 의견이 달랐다.
삶의 속도를 줄이기로 마음먹자, 조회수와 댓글 같은 반응에서 자유로워지기로 했다. 매일 만보를 걷겠다던 목표도 수정했다. 조금씩 줄여가고 있다. 이런 게 속도를 줄이는 게 아니라 진짜 나의 속도를 찾는 건 아닐까.
마음 한편으로는 "이렇게 느슨하게 살아도 되나?" 하는 불안이 피어 오르기도 한다. 그것은 세상이 내 안에 심어 놓은 목소리가 아닐까. 일하지 않으면 가치가 없다. 쉬면 뒤쳐진다. 노는 건 타락이다.
우리 세대는 그렇게 세뇌되어 있었다. 그걸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그때마다 "이건 내 목소리가 아니다"라고 마음속으로 소리친다.
이제 세상의 시계를 따를 이유가 없다. 영혼의 리듬을 따르며 나만의 속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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