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외의존도인가, 대외활용도인가

[최보식의언론=조전혁 광운대 특임교수]

2018년 기준, GDP 1800조 원. jtbc '차이 나는 클라스' 캡처
2018년 기준, GDP 1800조 원. jtbc '차이 나는 클라스' 캡처

우리는 흔히 정책과 제도의 실패를 숫자나 설계의 문제로 돌린다. 그러나 경제학자의 눈으로 보면, 그보다 앞서는 더 근본적인 원인이 있는 경우도 있다. 이름의 실패, 곧 잘못된 네이밍이다. 

이름은 단순한 표지가 아니라 사고의 틀을 만든다. 무엇을 어떻게 부르느냐에 따라 현상은 능력이 되기도 하고 결함이 되기도 한다. 문제는 우리 사회 곳곳에 능력을 결함으로 바꾸어 버리는 잘못된 네이밍이 적지 않다는 데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확립된 경제용어인 것처럼 반복적으로 사용되어 온 '대외의존도'라는 표현이다. 이 용어는 어떤 정통적인 경제학 교과서에서 소개되는 개념이 아니며, 무역이나 국제 교류의 실태를 설명하는 중립적 지표도 아니다.

'의존'이라는 단어는 비자발성, 취약성, 종속성을 전제한다. 그러나 국제 분업과 교역은 대부분의 경우 선택과 전략의 결과다. 외부 시장과 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생산성을 높이고 소득을 증대시키는 행위를 '의존'이라는 단어로 규정하는 순간 그 능력은 '결함'으로 둔갑한다. 이것은 분석이라기보다 능력을 결함으로 만드는 언어폭력에 가깝다.

현실 경제는 이 왜곡을 분명히 반박한다. 네덜란드, 스위스, 싱가포르처럼 국민소득 대비 무역액 비중이 높은 국가들은 공통적으로 높은 생활수준과 안정적인 경제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이들이 잘사는 이유는 외부에 취약하게 매달려 있기 때문이 아니라, 외부를 능동적으로 활용해 부가가치를 창출했기 때문이다. 무역 비중이 높다는 사실은 의존의 증거가 아니라 활용 능력의 결과다. 

이런 현실을 설명하는 데 필요한 언어는 '대외의존도'가 아니라 '대외활용도'다. 활용이라는 표현은 능동성, 선택 가능성, 전략성을 담아내며 가치 판단을 사전에 주입하지 않는다. 이는 정명, 즉 바른 이름에 더 가깝다.

문제는 이러한 잘못된 네이밍이 우연히 굳어진 관행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많은 경우 그것은 정치적 인식을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한 용어 혼란 전술로 기능해 왔다.

개방을 의존으로, 경쟁을 착취로, 선택을 강요로 바꾸는 언어는 정책 실패의 책임을 구조나 체제 탓으로 전가하는 데 유용하다. 이름을 바꾸면 현실이 바뀐 것처럼 보이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언어가 반복될수록 시민은 분석 이전에 감정적 판단을 내리게 되고, 정책 논의는 사실과 데이터가 아니라 프레임의 싸움으로 전락한다.

이 현상은 경제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교육, 산업, 기술, 노동 담론에서도 유사한 네이밍의 오류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문제 해결 능력은 불평등으로, 경쟁력은 특권으로, 선택의 자유는 방임으로 번역된다. 이렇게 능력을 결함으로 바꾸는 언어가 축적될수록 사회는 스스로의 강점을 의심하게 되고, 미래를 향한 전략 대신 과거를 향한 분노에 머물게 된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새로운 정책 구호 이전에 대대적인 '정명운동'이다. 용어를 다시 정의하고, 개념을 분리하고, 사실과 가치 판단을 언어 차원에서부터 구분해야 한다. 이것은 특정 이념을 옹호하기 위한 작업이 아니라, 공론장의 질을 회복하기 위한 최소한의 지적 위생이다. 

이름이 바르면 사고가 바로 서고, 사고가 바로 서야 정책도 바로 설 수 있다. 경제를 포함한 사회 전반의 논의를 왜곡해 온 잘못된 네이밍을 바로잡는 일, 그것이 지금 우리가 시작해야 할 가장 근본적인 개혁이다.


 

 

#정책언어 #네이밍의정치학 #정명의힘

 

 

저작권자 © 최보식의언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