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의 동맹 네트워크는 겉으로 보기만큼 단단하지 않다
[최보식의언론=신태환 강호논객]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지금의 국제정세는 서두를 이유가 거의 없는 구도에 가깝다. 굳이 모험을 감수하며 판을 뒤엎을 필요가 없다. 인내심을 갖고 사태를 관망하면서, 미국과 그 동맹들이 서로 다투고 스스로를 소모하는 과정을 지켜보기만 해도 되는 구조가 점점 짜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경제력과 공급망 우위는 이미 상당 부분 기정사실이 되었고, 지정학적 환경 역시 당장 뒤집어야 할 만큼 불리하지 않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자연스럽게 중국 쪽으로 기울어지는 저울처럼 보이는 지점이 여러 군데 존재한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경제 구조의 비대칭성이다. 소련 시절과 달리, 오늘날 중국은 세계 제조업의 중심에 깊이 박혀 있다.
2024년 기준으로 중국 제조업 부가가치는 약 4.6조 달러, 전 세계 제조업의 27~28% 정도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여러 분석은 2030년쯤 중국이 세계 공업 생산의 40% 안팎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전망한다.
희토류 분야를 보면 구조가 더 분명해진다. 2024년 기준 중국은 전 세계 희토류 광물 생산의 약 70%를 담당하고, 정·재련·자석 가공 단계에서는 9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태양광 패널, 배터리, 희토류 자석, 통신 장비 같은 전략 품목의 상당수가 중국 공장을 거쳐 나온다.
이 말은 곧, 세계는 점점 더 중국을 필요로 하는 방향으로 구조가 고정되고 있다는 뜻이다. 미국과 유럽, 일본, 한국, 동남아 어느 나라를 보더라도, 산업 현장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중국산 중간재와 장비, 소재에 대한 의존이 쌓여 있다.
반대로 중국 입장에서 보면, 수출시장을 다변화해가며 내수 비중을 키워온 지난 20년의 궤적을 감안할 때, 예전만큼 “서방이 없으면 곤란한” 구조는 아니다. 세계는 갈수록 중국에 묶이는데, 중국은 서방에 대한 의존을 조금씩 줄여가는 비대칭이 만들어지고 있다.
물론 중국이 여전히 약한 고리를 갖고 있는 분야가 있다. 바로 최첨단 반도체다. 설계·장비·소프트웨어·EUV 리소그래피 같은 영역에서는 미국·일본·네덜란드, 그리고 대만·한국이 여전히 우위에 서 있다. 미국이 대중 수출 통제의 초점을 반도체와 장비, 설계툴에 맞추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중국의 시각에서 보면 이마저도 결국은 시간 문제라고 보는 경향이 강하다. 중국 정부는 반도체를 포함한 첨단 제조업에 막대한 보조금과 정책적 지원을 쏟아붓고 있고, 이미 중저가 범용 칩과 패키징, 전력·통신용 반도체 영역에서는 자급 능력을 빠르게 끌어올리고 있다. 대규모 내수 시장과 공업기반, 기술 인력 풀을 감안하면 “언젠가는 따라잡는다”는 믿음을 갖기 충분한 조건이다.
경제와 공급망에서 유리한 구조를 어느 정도 확보한 상황에서, 중국이 당장 모험을 감수하며 판을 흔들 이유는 크지 않다. 상대가 스스로 틈을 만들기를 기다리면서, 그 틈을 천천히 넓혀가는 편이 훨씬 저비용 전략이다. 지정학적 환경을 보면 이런 계산이 왜 설득력을 갖는지 더 분명해진다.
중국은 핵보유국 러시아와 북한이라는 두 축을 우방으로 두고 있다. 물론 러시아와의 관계는 완전한 동맹이라기보다 이해관계가 일치할 때 손을 잡는 파트너에 가깝고, 북한 역시 다루기 까다로운 변수지만, 최소한 중국 입장에서는 “자기 편 핵보유국”이 두 개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전략적 깊이(Strategic Depth)를 형성한다.
반면 미국 동아시아 동맹의 주요 축인 일본·한국·대만은 모두 비핵국가이고, 미국의 확장억제에 의존하는 구조다. 미국 내부에서 고립주의·국내 우선주의가 강해지고, 동맹 방위 공약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이 비핵 동맹국들의 전략적 불안은 커질 수밖에 없다. 중국 입장에서는 상대 진영의 구조적 약점이기도 하다.
더구나 동아시아의 동맹 네트워크는 겉으로 보기만큼 단단하지 않다. 중국의 팽창을 견제해야 한다는 대전제에는 한국과 일본, 대만이 대체로 동의한다.
그러나 역사 문제, 영토 분쟁, 국내 여론 구조까지 고려하면, 이들이 “하나의 전략 공동체”로 움직이기는 매우 어렵다. 한일 관계는 지소미아·강제징용·위안부·독도 문제 등으로 몇 번이고 파열음을 냈고, 미국이 중재에 나서 억지로 봉합한 상태에 가깝다. 중국이 보기에는 바로 이 지점이 파고들 틈이다. 한국 사회의 반일 감정과 민족주의, 일본 내부의 우익 담론은 작은 자극만 주어도 쉽게 들끓을 수 있는 불씨다.
베이징이 굳이 노골적인 분열 공작을 하지 않더라도, 역사·영토 문제에 관한 발언 하나, 특정 사건에 대한 선전·여론 조작 몇 번이면, 한국 내부 여론이 동맹 공조보다 감정적 반발로 기울게 만드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중국 입장에서 한국은 미국의 전진기지이면서 동시에, 동맹 네트워크에서 이탈시킬 수 있는 “취약 고리”로도 보일 수 있다.
필리핀도 비슷한 맥락에서 읽힌다. 두테르테 전 정권 시기 필리핀은 노골적인 친중 노선과 대미 거리두기를 시도했다. 남중국해 판결에도 불구하고 중국과의 경제협력·원조를 앞세워 “중국 쪽으로 기울어진 균형”을 만들려 했던 움직임이다.
현재 마르코스 정권이 다시 미국 쪽으로 기울며 군사협력을 확대하고 있지만, 두테르테 가문과 그 지지층은 여전히 강한 정치 세력이다. 중국 입장에서 보면, 필리핀 정치는 언제든 친중 노선으로 다시 흔들 수 있는 유동적인 판으로 보일 것이다. 한 번 권력을 잡아본 친중 세력이 존재하고, 그 세력을 매개로 남중국해 전선을 완화하거나 필리핀을 다시 ‘중립화’시키는 시나리오는 충분히 상상 가능한 카드다.
대만 역시 순수한 군사 균형만으로 보기는 어렵다. 중국은 대만을 군사적으로 압박하면서도, 동시에 정치·경제·사회 각 방면에서 장기적인 통일 전략을 추진해 왔다. 국민당(KMT)은 공개적으로 “통일 즉시”를 주장하지는 않지만, 중국과의 대화를 중시하고, 미국·일본과 각을 세우는 것을 꺼리는 정당이다.
아니. 사실 요즘 국민당이 하는 거 보면 거의 중국 대변인에 가깝다. 베이징은 이들을 “무력 없이도 대만을 자기 영향권 안으로 끌어들이는 통로”로 본다. 무력 침공은 비용과 리스크가 너무 크지만, 장기적으로 친중 성향 세력이 선거를 통해 집권하고, 경제·정치적으로 점진적 통합을 추진한다면 훨씬 싸게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발상이다. 이미 중국은 대만 기업·자본·청년층을 본토로 끌어들이는 각종 유인책을 활용하며, “강압과 유화”를 병행하고 있다.
이 모든 요소를 종합하면, 중국 주변의 지정학적 환경은 생각만큼 절망적이지 않다. 핵보유 우방국과 비핵 동맹국 간의 비대칭, 동아시아 동맹 내부의 불신과 분열 가능성, 필리핀·대만처럼 정치적 진자 운동이 가능한 국가들의 존재는, 중국 입장에서 “시간이 우리 편”이라는 판단을 하게 만든다.
미국이 최근 국가안보전략에서 서반구와 자국 방위, 그리고 ‘첫 번째 도련선’ 방어에 집중하겠다고 선언하고, 동맹국들에게 더 많은 부담과 역할을 떠넘기는 모습은, 어쩌면 이런 현실을 반영한 고백에 가깝다고 해석할 여지도 있다. 미국 혼자 모든 전선을 커버하기에는 역량과 의지가 부족해졌고, 그 공백을 동맹국들이 메우라는 구조다. 그런데 동맹국들이 그 빈틈을 메울 역량과 의지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중국의 시선에서 보면 이 구도는 굳이 서둘러 깨야 할 판이 아니다. 경제·공급망에서의 우위는 이미 상당수 영역에서 현실이 되었고, 반도체라는 약점도 장기투자와 내수 시장, 국가 동원을 통해 서서히 메울 수 있다고 믿는다.
특히 트럼프 정부가 동맹국과의 관계를 모두 파탄내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이 할 일은 거칠게 판을 뒤집는 것이 아니라, 인내심을 갖고 사태를 관망하며, 상대가 스스로 무너지는 순간을 기다리는 것에 더 가깝다.
바로 그 점이 오늘날 중국을 둘러싼 국제정치를 더 까다롭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노골적인 팽창과 군사 모험이 아니라, 구조적 우위와 지정학적 사실 몹시 두렵다. 중국이 설계할 미래는 우리 입장에서 결코 달갑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만침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