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드릴게요." 간절한 눈빛이었다. 나는 막막했다

[최보식의언론=엄상익 논설위원]

나는 유리로 칸막이를 한 반평 정도 넓이의 작은 공간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40대 초쯤의 남자가 나타났다. 깨끗하게 빨고 다림질로 날을 세운 파란 재소자복을 입고 있었다. 죄수가 아니라 검열을 받는 훈련소의 신병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하얀 얼굴에 짙고 굵은 눈썹 사이로 오똑한 콧날이었다. 맑은 눈빛이었다. 모범수임을 알리는 노란 완장을 차고 있었다. 오랜 감옥생활의 냉기가 그의 주변을 흐르는 것 같았다.

"눈이 내리네요."

내가 쇠창살 너머로 시선을 던지면서 말을 꺼냈다. 그에게 온기를 전하며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들고 싶었다. 그가 씩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변호사님이 사는 세상에선 눈은 낭만이겠지만 이런 날 저희 죄수들은 고역입니다. 감옥 넓은 마당에 쌓인 눈을 재빨리 치워야만 잠시라도 운동을 할 수 있으니까요. 하루 30분간 허용되는 운동시간이 우리들에게는 정말 포기할 수 없는 값진 거예요."

그의 차분한 목소리의 이면에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벽에 걸린 시계가 어느새 오후 네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시간이 많지 않았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누명을 썼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억울한 사정을 말해줄 수 있어요?"

내가 수첩을 꺼내 하얀 첫 장을 펼치면서 물었다. 그의 눈빛이 과거 어느 지점으로 돌아가듯 흔들렸고, 그 안에서 분노가 천천히 피어올랐다. 입술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15 년 4개월을 살았습니다."

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동안 쇠창살만 보면 목을 매달고 싶었어요. 잘못 태어난 인생, 마흔을 넘겼으면 살 만큼 산 거죠. 그런데...."

그가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한이 서려서 그런지 누명이 풀릴 때까지는 죽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런 사정들을 누구에게 털어놓았죠? 듣고 어떻게 하던가요?"

그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누구라도 잡고 늘어졌을 게 분명했다. 분노에 찬 그의 새파란 눈빛에 그들이 질려버렸을지도 모른다. 대개 그랬다.

"저는 종교인이 제일 미워요. 왜 그런지 말해 볼까요? 살인죄가 확정되서 징역을 살러 오니까 제일 먼저 교화위원이라고 해서 종교인들이 오더라구요. 전 닥치는 대로 붙잡고 누명을 썼다면서 살려달라고 매달렸죠. 처음엔 목사 보고 그랬어요. 그랬더니 어땠는지 아세요? 나를 싹 끊어버리는 거예요. 다신 오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이번에는 천주교 신부에게 말했죠. 그랬더니 그 신부란 놈은 고해성사에서 알게 된 비밀은 남에게 얘기할 수 없다면서 뒤로 빼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사형수를 보살피는 것으로 유명한 스님에게 연락했어요. 아무 소식도 없더라구요. 난 종교인이라고 하면 두드러기가 나요. 혹시 전도 같은 거 하러 왔으면 아예 할 생각을 마세요."

그가 고개를 흔들면서 그들에 대한 증오가 피어 올랐다.

그가 참았던 말들이 둑을 넘어 터져 나오고 있었다.

"제가 감옥에서 살아보니까 말이죠. 하나님이라는 사람은 인간 세상에는 정말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누가 억울하거나 말거나 죽거나 상관하지 않아요. 목사들은 죽은 다음에 모두가 공평하게 심판을 받고 천국으로 간다고 하더라구요. 그렇지만 전 필요 없어요. 이 지상의 일에도 관심이 없는 하나님이 거기서는 과연 잘할까 의심이 들어요. 난 저세상에 가서 지옥 불에 떨어져도 좋아요. 그냥 이 세상에서 억울한 누명을 벗었으면 좋겠어요."

그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변호사에게 말해봤어요?"

재심이란 시기가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 증거도 없어지고 사건도 망각 속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다.

"한 번은 여기로 대전 변호사가 찾아왔어요. 내 얘기를 다 듣더니 끄덕이면서 선임계를 작성하자는 거예요. 재심을 신청해 주겠다는 겁니다. 전 정말 하나님을 만난 기분이었어요. 그런데 그 변호사도 결국 돈을 주지 않으니까 끝이에요. 공연히 한 달 정도 기분만 좋다가 끝났어요. 세상에 돈 없이 되는 일이 어디 있겠어요."

같은 변호사로서 그에게 미안한 느낌이 들었다. 그의 속에서 토해져 나오는 오물 같은 분노라도 나는 뒤집어써 줘야 할 것 같았다. 속에 들어 있던 그의 한들이 계속 쏟아져 나왔다.

"여기 근무하는 교도관들에게도 제 억울한 사정을 얘기했었어요. 친하게 지나다가도 그런 소리만 들으면 그때부터 슬슬 피하더라구요. 물론 이해는 하죠. 그 사람들 무슨 힘이 있겠어요? 이 안에서 모포 한 장 더 주는 권한 정도 있겠지만 사회에 나가면 무력한 게 그들 아닙니까?"

그는 험한 세상의 절벽에서 약한 나뭇가지를 잡고 발버둥쳤던 것 같다. 그의 얘기가 이어졌다.

"난 출소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내 억울한 사정을 얘기를 했어요. 15년 징역을 사는 동안 한 1,000명쯤에게 말했을 거예요. 1,000명째 기도하듯이 하니까 오늘 변호사님이 온 거예요. 나 공짜로 변호해 달라고 안 해요. 돈 드릴게요."

그는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나는 막막했다. 그에게 뭘 해줄 수 있을까. 창 밖에는 몰아치는 바람에 함박눈이 휩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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