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자신의 판단이 절대 옳다는 독선와 도그마

[최보식의언론=김선래 편집장]

KBS 화면 캡처
KBS 화면 캡처

한국일보 간부급 기자가 자신의 SNS에 '언론, 선전선동의 도구가 될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계엄과 탄핵정국에서 보수매체의 보도를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필자는 김희원 뉴스스탠다드실장으로 1993년 한국일보에 입사해 사회부장, 논설위원을 거친 고참 여기자다.

김 실장은 "계엄 이후의 상황은 진보-보수의 싸움이 아니다"며 "이것은 민주주의와 반민주의 싸움이며 공화국과 반사회 세력의 갈등이고 우리 사회가 내란에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대한 시험이다"고 말했다.

이어 "군을 동원한 불법 쿠데타 시도, 민주주의와 헌정 파괴 시도마저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용납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란 세력의 궤변을 그대로 받아쓰지 마라. 특히 제목에 따옴표 달아 그대로 인용하지 마라. 여야의 주장을 각각 인용 보도하니까 괜찮다고 자위하지 마라"고 요구했다.

또 "우리는 범죄자에게 마이크를 쥐어주면 안 된다고 배웠다. 살인자가 왜, 어떻게 살해했는지 인터뷰하지 않는다. 범죄자의 서사를 보도하지 않는다"고 했다

김 실장의 주장에 동의할 부분이 많으나, '나쁜 놈'인 윤 대통령 측 입장을 인용보도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저널리즘 관점이나 기자의 태도에서 옳지 않다.

김 실장은 "범죄자에게 마이크를 쥐어주면 안 된다고 배웠다"고 했지만, 범죄자와 악당의 얘기를 듣고 편견없이 보도하는 것이 사실을 추구하는 언론의 자세다. 

한국일보는 몇년 전부터 굳이 성향을 따지면 중도 좌파에 기울어져있다. 그런 신문사 분위기에서 김 실장이 자신의 감정에 너무 치우친 것 같다. 

기자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자신의 판단이 절대 옳다는 독선와 도그마이다. 기자라는 직업은 분명해보이는 것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지고 회의(懷疑)해야 한다. 

김 실장이 '언론, 선전선동의 도구가 될 것인가''라고 비판했지만 본인도 그런 오류에 빠지고 있는 것이다.

아래는 김희원 실장의 페이스북 글 전문이다.

1. 

윤석열 대통령이 불법 계엄을 선포한 후 저는 그를 막지 못한 국무위원, 두둔하는 국민의힘을 세게 비판했습니다만, 견제하고 감시하지 못한 언론에 대해서도 깊이 반성했습니다. 그래도 계엄 직후엔 보수-진보 언론을 가리지 않고 계엄 해제와 대통령 권한 박탈에 일치된 목소리를 내는 것에 안도했습니다. 그러나 내란 세력이 버티기에 돌입하고 수습이 장기화하면서 언론 보도는 숱한 문제를 노출하고 있습니다. 언론의 소명을 망각한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래서는 안 됩니다.

2.

-尹측 "1급 기밀구역서 체포영장 집행 매우 유감…법 준수해야"

-윤 대통령 측 탄핵심판서 "윤 대통령은 고립된 약자…난도질당하고 있어"

-경호처 "공수처, 법적 근거 없이 무단 침입…법적 책임 물을 것"

-윤상현 “윤 대통령, ‘영장 불응이 헌법 지키는 것’이란 입장”

-나경원 "공조본, 법 규정에도 없는 기구…한마디로 무법천지"

-권성동 “헌재, ‘내란죄’ 뺀 졸속 탄핵소추문 각하하라”

-이재명 때린 홍준표 “내란죄로 여태 선동하더니 철회…나라 농단”

최근 기사들 중 몇 사례입니다. 제목도 그렇지만 기사 내용도 내란 우두머리와 그 변호사, 경호처, 국민의힘 인사들의 일방적 주장을 그대로 전달합니다. 법원이 발부한 영장이 불법이라니 이게 무슨 소리입니까? 당장 체포되어야 할 경호처가 되려 공수처에 법적 책임을 묻겠다는데 이걸 아무렇지도 않게 보도하는 게 정상입니까? 기자들이 늘상 여야 주장을 따옴표 쳐서 그대로 인용 보도하는 기사를 써왔다지만 지금이 그럴 때입니까? 지금은 평상시가 아닙니다. 아직도 내란이 진행 중입니다. 언론인 여러분 각성하십시오! 내가 무슨 기사를 쓰고 있는지 성찰하십시오!

3.

저는 언론(특히 일간지)에 정파성이 없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정파성에 의해 사실 보도가 압살되어선 안 된다고 믿습니다. 계엄 이후의 상황은 진보-보수의 싸움이 아닙니다. 이것은 민주주의와 반민주의 싸움이며 공화국과 반사회 세력의 갈등입니다. 우리 사회가 내란에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대한 시험입니다. 군을 동원한 불법 쿠데타 시도, 민주주의와 헌정 파괴 시도마저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용납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4.

우리는 범죄자에게 마이크를 쥐어주면 안 된다고 배웠습니다. 살인자가 왜, 어떻게 살해했는지 인터뷰하지 않습니다. 범죄자의 서사를 보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반사회적 주장, 음모론, 사회 불안을 야기하는 근거 없는 주장을 무게 있게 다루지 않습니다. 그것이 공동체의 이익에 복무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내란 세력이 자신들이 옳다고 강변하는 것을 따옴표 친 제목을 달아 중계하는 것은 그와 똑같이, 저널리즘 원칙에 전혀 부합하지 않습니다. 내란 세력의 궤변을 그대로 중계하면 마치 내란에 일말의 명분이라도 있다는 착각을 확산시키게 됩니다. 지지자들을 결집시켜 국민들 간 폭력적 갈등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국가 분열을 야기하는 것입니다. 기자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이것은 객관적 보도가 아니라, 공동체에 해악을 미치는 나쁜 보도입니다. 보수 정당의 잘못을 각인시키고 쇄신하도록 돕지 못하니, 진짜 보수를 위한 일도 아닙니다.

5.

기자님들께 호소합니다. 내란 세력의 궤변을 그대로 받아쓰지 마십시오. 특히 제목에 따옴표 달아 그대로 인용하지 마십시오. 여야의 주장을 각각 인용 보도하니까 괜찮다고 자위하지 마십시오. 독자들은 파편화된 기사 중 맘에 드는 것만 선택적으로 읽습니다. 아니, 기사도 안 읽고 제목만 봅니다. 발화자가 대통령, 국회의원이니 무시하기 어렵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기사화한다 해도 단순히 인용 보도하는 것으로 끝이어선 안 됩니다. 그들의 궤변이 정말 말이 되는 주장인지, 근거가 있는지, 순전한 궤변인지를 확인해서 독자가 판단할 수 있게 써야 합니다. 기자 개인의 주장이 아닌 취재한 팩트로써 독자가 고개를 끄덕이게 해야 합니다. 제목도 그에 따라 비판적으로 달아야 합니다.

6.

내가 속한 매체가 보수적일 수 있고 나와 일하는 국장, 부장, 기자가 극우 신념을 갖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란을 옹호하는 뉴스를 쓴 나의 책임을 그들에게 떠넘기지 못합니다. 기사는 거기에 이름을 올린 여러분의 책임으로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계엄 선포를 막지 못한 국무위원들의 책임, 명령에 따라 계엄군으로 출동한 군인들의 책임이, 여러분이 져야 할 책임과 다르지 않습니다. 자기가 하는 일, 가진 권한만큼의 책임을 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써도 괜찮은 걸까?' 끊임 없이 자문하십시오. 국장에게, 부장에게, 동료와 후배들에게 질문을 던지십시오. 확신이 들지 않을 때 함께 논의하십시오. 기자 여러분, 내란 선전의 도구가 되고 싶습니까, 역사를 기록하는 기자가 되고 싶습니까?

 

#김희원실장, #내란선전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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