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기억하는 건 이미지나 말과 글만이 아니다. 냄새도 기억된다
[최보식의언론=박동원 폴리컴(선거컨설팅회사) 대표]

이문세의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을 들으면 제대하는 날 셔틀 버스 안 비닐 시트 냄새가 난다. 사단 셔틀 버스를 타고 정문을 빠져나올 때 나온 노래가 바로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이다.
강애리자의 ‘분홍 립스틱’을 들으면 내무반 모포와 베개 냄새가 난다. 아침 기상 시간에 바지런한 말년 병장이 '분홍 립스틱'을 틀어줬기 때문이다. 그땐 그노래가 끔찍했는데 지금은 아련한 추억이다.
투투의 ‘일과 이분의 일’, 강산에의 ‘넌 할 수 있어’, 황규영의 ‘나는 문제 없어’를 들으면 갓 사회에 나와 한창 새벽까지 술마시고 다녔던 1993~1994년 즈음 퀘퀘한 가라오케 미러등 불빛과 맥주 냄새가 난다.
남진의 ‘님과 함께’를 들으면 어릴 적 납새미(가자미) 말리던 말리던 소쿠리 옆에서 동네 형이 노래값 10원 받고 고고 추며 불렀을 때 맡았던 생선 냄새가, 나훈아의 ‘머나먼 고향’을 들으면 외갓집 가던 시골 간이역, 외삼촌이 타던 자전거의 뒷자리에 탔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르며 농약 냄새가 난다.
조하문의 ‘같은 하늘 아래’는 설거지 끝내고 모두가 잠든 사이, 식당 부식 창고에서 소주 반병 마시고 기타 치면서 이 노래 흥얼거리다가 서럽게 펑펑 울었던 기억이 떠오르니, 쌀푸대에서 풍기던 쿰쿰한 냄새, 짬밥 식기의 비릿한 냄새도 난다.
조미미의 ‘바다가 육지라면’, 백난아의 ‘찔레꽃’을 들으면 이 노래를 즐겨 불렀던 엄마 향내가 난다.
‘임을 위한 행진곡’에서 매캐한 최루탄 냄새가, 김민기의 노래들에선 학생회관 현수막 만들 때 썼던 락카 냄새도 나고 교정 아카시아 향기도 뒤섞인다.
일곱 공주의 ‘Love Song’을 들으면 공주옷 입고 춤추던 큰놈, 동요 ‘아기다람 쥐또미’를 들으면 계란색 내복 입고 아빠 앞에서 노래하던 막둥이를 안을 때 맡았던 향긋한 살 냄새가 난다.
그리워 눈물이 핑 돈다.
인간이 기억하는 건 이미지나 말과 글만이 아니다. 냄새도 기억된다. 냄새는 늘 추억과 연동된다.
누구나 지나간 추억 속의 냄새를 갖고 있다. 그 냄새는 노래를 통해서도 연상되고, 노래는 지난 시절 추억을 이어주는 통로가 된다. 사람마다 자신의 기억이 다르고 각자의 기억 속 냄새도 다르다. 다 다른 경험 때문이다.
무슨 일만 생기면 다른 냄새를 두고, 정치와 이념의 과잉 팽창이 일어난다. 사람마다 각자의 기억 속에 지닌 냄새가 다르다. 매우 이성적인 듯 감정을 경계하고 냉철한 비난 반대 논리를 설파하지만 사실은 자기도 자신의 냄새에 이끌릴 뿐이다.
영화 ‘기생충’의 주요한 상징 중 하나가 '냄새'다. 도저히 맡기 힘든 가난의 냄새. 냄새를 못 견뎌하던 동익에 모멸감을 느껴 칼로 죽여버린 기택. 냄새를 참아내지 못하면 함께 살아갈 수가 없다.
공존은 함께 맡는 게 아니라 참는 것이고, 냄새를 없애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냄새 나는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냄새를 없애야 나도 편하기 때문이다.
자신과 냄새가 다르면 과도한 사회정치적 의미를 담거나, 자신만의 잣대를 들이대며 자기 냄새와 다르다고 코 막고 얼굴 찌푸린다. '이게 무슨 냄새지?' 정돈할 수 있지만 비난까지 할 일인가. 그러는 자기 냄새는 좋아서 맡아주는 줄 아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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