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주한 미군 병사 그렉 보웬(Greg L.Bowen)은 동두천의 한 부대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하늘에 온통 먹구름이 잔뜩 끼어 폭우가 쏟아질 듯하여도 간간이 보이는 파란 한 점만 보여도 어디로 떠나야 하는 천석고황, 어제 하늘은 온통 파란 점으로 뒤덮인 날이라 드디어 행랑을 꾸미고 집을 나선다.
가을이 깊게 물들어가는 날, 연천 전곡리 구석기 유적지에 가면 국화축제를 한다. 반달 모양의 구석기 유적지 앞쪽으로는 한탄강이 흘러 거대한 현무암 절벽을 만드니 경치 또한 매우 뛰어나다.
한때 유럽인 사이에는 '오리엔탈리즘'이 유행했었다. 무엇이든지 자국이 잘살게 되면 잘살게 된 이유를 아무 것에나 갖다 대면서, “서양은 원래부터 동양보다 월등하다”라는 인식으로 1800년도 중반부터 못난 동양의 '꺼리'를 찾기 시작했다. 아직도 흙집에 사네, 아직도 비포장도로네, 아직도 미신을 믿네, 무엇이든지 이런 식으로 갖다 붙이면서 “게으르다, 미개하다, 그러니 원래부터 그래”. 그러니 “내가 너희들을 계몽시켜 줄게”. 그래서 병원도 들어오고 학교도 세우고, 정치 경제를 몽땅 서구식으로 바꾸기를 원했고, 동양도 어쩔 수 없이 자의 반 타의 반 따라 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고? 거봐, 인류는 수렵채집을 지나 구석기, 신석기를 거치면서 농경시대로 진입했잖아. 그런데 구석기시대의 유물 중에 유럽인이 만든 ‘아슐리안 주먹도끼’가 있어? 좌우 대칭으로 정교하고 예술성도 뛰어나. 이는 머리가 좋아야 만들 수 있어. 그런데 그 유물이 발견된 지역은 인도를 포함하여 유럽지역밖에 없잖아. 그러니 너희들은 구석기시대부터 열등했어.”
그 당시 고고학계의 최고의 권위자였던 하버드 대학교의 모비우스 교수(H. Movius)는 인도의 동쪽 즉 동아시아에는 좌우 균형이 잡힌 아슐리안 주먹도끼가 없다고 주장하였고, 전곡리에서 아슐리안 주먹도끼가 발견되기까지 그 가설이 유효했다.
1978년 주한 미군 병사 그렉 보웬(Greg L.Bowen)은 동두천의 한 부대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사귀던 여자 친구와 동두천에서 그리 멀지 않은 한탄강을 어슬렁거리던 중 아주 특이한 돌 3~4개를 발견하고, 그 당시 고고학계 최고 권위자인 서울대학교 김원룡 교수에게 보낸다. 드디어 그가 발견한 주먹도끼는 아슐리안형으로 인정받았고, 동아시아인도 열등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했다.
나는 가끔 정치적 토론을 하면서 세상에는 두 종류 사람밖에 없다. "무식한 사람과 무식하지 않은 사람. 거기에는 갱상도, 빌라도, 대깨문, 일베틀탁 이런 사람은 없다.”라고 말한다. 배우지 않아 무식한 사람, 알려고 하지 않아 무식한 사람, 한평생 자신의 신념만 믿고 사는 무식한 사람밖에 없다.
'오리엔탈리즘'은 만든 사람도 서양인이요, 아슐리안 주먹도끼의 이론을 만든 사람도 서양인이요, 전곡리에서 주먹도끼를 발견한 사람도 서양인이다. 이들은 배웠기에 수많은 자갈 속에도 유별난 주먹도끼를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전국 어디를 가나 지방축제는 요란법석 하다. 한쪽은 현지 출신 초대 가수가 조율되지 않은 앰프 속에서도 꿋꿋하게 노래하고, 또 다른 한쪽은 지역 면민들이 모여 농수산물과 먹거리를 팔고, 또 다른 한쪽에는 도회지 온 대한민국의 아줌마가 도토리를 줍기에 여념이 없고, 또 다른 한쪽에는 죈체하는 젊은 사람이 온갖 폼을 잡으면서 인증샷을 날리기에 여념이 없다.
나는 타는 듯한 목마름으로 애절하게 빛나는 붉은 국화와 저물어가는 화려함속에 아찔하게 노란빛을 발하는 국화와 장인의 손길을 거쳐 고목 나무에서 꽃을 피우는 국화와 제 무게를 못 이길 만큼 큼지막한 꽃송이가 철삿줄 위에서 간신히 버티고 있는 상앗빛 국화를 바라본다.
이제 나는 사람보다 꽃이 더 좋다. 왜냐고? 사람은 기다려야 하지만, 꽃은 기다리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연천 구석기 유적지에서 온 수많은 사람들, 35만 년 전에 바로 이 땅 아래에서 벌어진 수많은 이야기를 다 알지 못해도, 초청 가수의 노랫가락에 장단을 맞추었다면 한나절의 가을 햇살이 주는 보상에는 답 한 것이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