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자신이 원하는 그림으로 각색하고 싶은 모양

MBN 화면 캡처
MBN 화면 캡처

이종찬 광복회장이 국군의 뿌리를 국방경비사관학교라고 한 국방부에 대해 "광복군의 역사를 뚝 잘라버리고 국군의 원조는 일제의 머슴을 하던 이들이라고 하는 현실이 개탄스럽다"고 비판했다.

이종찬 회장은 "독립운동 선열들이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독립군을 양성했고, 그들이 주력이 돼 1940917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규군인 한국광복군 창설로 이어졌다""의병, 독립군, 광복군이 국군의 뿌리"라고 주장했다. 이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정신승리학설과 일치한다.

육사의 뿌리라고 주장한 신흥무관학교는 중국 길림성에서 19195월 세워졌다가 1년반쯤 지나 1920년 가을에 폐교됐다. 조선조와 중국 군대의 훈련방식을 채택했다. 신흥무관학교는 이종찬 회장의 집안 할아버지인 이회영 등이 설립했다. 이종찬이 '신흥무관학교'를 내세우는 데는 이런 개인적 연고도 작용했을 것으로 본다.

이런 신흥무관학교는 미() 웨스트포인트 커리큘럼 영향을 받은 현대식 육군 장교 양성기관인 육사와는 사실 관계에서 접점이 없다. 특히 6.25 당시 8군 사령관이었던 밴 플리트 장군은 자신의 사재를 털어 욱사 건물을 짓는데 일조했다. 미 웨스트포인트에서 교육 간부로 활동하던 사위들을 통해서 웨스트포인트 교육시스템을 육사에 이식시켰다.

신흥무관학교가 정신적 뿌리라고 혹 주장할 수는 있을지 모르나, 이를 육사의 뿌리라고 하는 것은 객관적 사실의 역사를 왜곡하는 소리다.

창군(創軍) 당시 국군에는 일본군, 중국군, 중공군(팔로군), 만주군, 독립군, 광복군, 미국군 등 다양한 경력자들이 모여들었다.

군 간부의 골간은 군사영어학교(1945.12~1946.4.30)와 조선경비사관학교(1946.5.1~1948.9.15)을 통해 양성했다.

남조선경비사관학교는 정부 수립 직후인 1948915일 육군사관학교로 개칭되었다. 그때까지 총 61,254명의 장교를 배출했다. 1~4기까지는 일본군, 만주군, 광복군 출신 군경력자들이 대다수였고, 그중에도 일본군 출신이 절반 이상이었다. 이게 국군과 관련된 역사적 팩트다.

그런데 이종찬 회장은 창군 멤버였던 이들을 일제의 머슴을 하던 이들이라고 비하하고 지워버리려고 하는 것이다, 아예 역사를 자신이 원하는 그림으로 각색하고 싶은 모양이다.

이종찬이 일제의 머슴이라고 욕하는 이들은  6.25 전쟁에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30% 가량 희생되었다독립운동 집안 자손이라고 이들을 비하할 자격이 주어진 것은 아니다.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은 이런 문재인이나 이종찬을 환부역조(換父易祖)”라고 비판했다. 제 아비와 조상이 못 났다고 남의 집 아비와 조상을 모셔다 섬기는 걸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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