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탄핵 재판 때 헌법재판소에 도청 방지 장비를 설치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캡처
'디스커버리' 채널에서 캡처

대통령실이 ·감청 의혹은 터무니없는 거짓 의혹이라며 용산대통령실은 철통보안이라고 했다. 미국에 간 김태효 국가안보실 차장도 미국이 우리에게 도·감청을 했다고 확정할만한 단서가 없다"고 거듭 부인했다.

미국 측에서 그렇게 주장할 수는 있어도, 왜 용산 대통령실이 먼저 나서서 이렇게 미국 정보기관을 방어하는지 모르겠다. 대통령실이 도청 안 됐는데 그런 대화 내용(김성한 국가안보실장과 이문희 외교비서관)이 새나갔다면 대통령실 안에 미국 첩자가 있다는 소리밖에 안 되는 것이다.

부인할 것을 부인해야 한다. 유출된 기밀 문건의 조작 여부는 혹 있었을지 모르나, 도청 사실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한국내 미국 정보기관의 활동을 부인하는 것과 같다. 정보기관이 자기 나라 국익을 위해 그런 걸 안 하면 왜 있어야 하겠나.

국내 최고의 도청 방지전문가 안교승씨는 용산 대통령실은 도·감청이 어렵다고 주장하는 것은 최근 도·감청 기술이 얼마나 진화했는지에 대해 전혀 모르는 말씀이라며 레이저 감청 기술로는 350~400m 떨어진 곳도 도청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다음은 우리가 모르는 007 영화에서 나올 법한 도청의 세계이다.  4년 전(2019) 만났던 안교승씨 인터뷰 기사에서 발췌했다.

도청방지 전문가 안교승씨
도청방지 전문가 안교승씨

“2005삼성 X파일사건과 안기부 도청 조직 미림팀의 존재가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지요. 누군가가 다 엿듣고 있기 때문에 서울에는 비밀이 없다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하지만 그 사건 뒤로는 조용해졌습니다. 도청이 더 이상 사회적 이슈가 되지 않았습니다. 디지털 도청 기술은 놀랄 만큼 발전했는데 과연 도청이 없어졌을까요?”

'엿듣는 도청 엿보는 몰카'를 출간한 국내 최고의 도청 방지 전문가 안교승씨는 음지(陰地)의 세계로 나를 안내했다.

"도청을 당하고 있으면서 그런 사실을 인지조차 못 하는 세상이 됐습니다. 프랑스 파리에서 2년마다 '밀리폴(Milipol)'이라는 첨단 스파이 장비 전시회가 열립니다. 가령 외국 정부의 고위급이 호텔에 묵고 있으면 옆방에서 소음이 없는 드릴로 벽을 뚫어 6바늘형 도청기를 심는 게 가능합니다. 호텔룸 키, 객실에 구비된 볼펜, 실내 전등, 자동차 키, 신용카드 등에 도청 칩을 꽂아 넣습니다. 미소(微小) 마이크가 69개 설치된 패널 형태 도청기로는 먼 거리에서 요란한 시위 현장 속 특정 인물의 대화만 증폭해 도청할 수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사는 세상과는 동떨어진, '007 영화'에나 나왔을 이야기군요.

"과거에는 스파이만 사용하던 도청기가 이젠 일반 생활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에 도청 앱을 깔거나 컴퓨터 마우스나 케이블에 칩처럼 심은 뒤 이동통신망으로 접속합니다. 이런 부품이 2~3만원에 인터넷에서 거래됩니다."

도청 탐지를 해달라는 대통령 후보들의 의뢰도 있었다고 했지요?

"2002년 대선 당시 이회창 후보 쪽에서 '집무실, 회의실, 자택, 승용차에 대해 체크해달라'고 했습니다. 당시 정몽준 후보 쪽에서도 주문이 왔지만 도의적으로 양쪽 모두 할 수는 없었습니다. 2007년 대선에서는 이명박 후보 사무실에 대해 도청 탐지를 하고 방지 장비를 설치했습니다. 그리고 검찰 수사를 받던 한 전직 대통령 사저에서 도청 탐지를 해준 적도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재판 때 헌법재판소에 도청 방지 장비를 설치했다고요?

"헌법재판소 의뢰를 받고 사무실과 회의실에 그렇게 했습니다. 그 전에 노무현 대통령 탄핵 때도 그렇게 했습니다. 김대중 정부 시절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을 때 소공동 롯데호텔 상황실 등에 도청 방지 장비를 설치했고, 2010년 서울 G20 정상회의가 열렸을 때도 우리 회사의 도청 방지 장비를 구입해갔습니다."

과거에는 주로 유선 전화기를 도청하는 수준이었지요. 통화 중에 갑자기 감도가 떨어지면 도청한다고 의심했지요.

"아날로그 도청기는 주파수로 쉽게 찾아낼 수 있어요. 하지만 디지털 도청기는 음성을 암호화해 송출합니다. 이 때문에 의심 전파를 잡아내도 그게 도청 신호인지 아닌지 가려내기가 어렵습니다. 사무실에 도청기를 설치하지 않고도 400m 떨어진 곳에서 레이저를 쏴 도청할 수도 있습니다. 이중 유리로 된 실내나 주차한 자동차 안에서 주고받는 대화를 엿들을 수 있습니다."

그런 도청 기술이 창()이라면 이를 막아내는 방패도 있겠지요?

"레이저 도청을 막으려면 대화의 진동을 교란해 상대가 해독을 못 하게 하면 됩니다. 그런 방지 장비가 개발돼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아날로그 방패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청와대 경호실도 아날로그 장비를 쓰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 가장 첨단 기술 분야를 담당하는 국내 최고 대기업들도 비슷한 형편입니다."

그는 학창 시절 '아마추어 무선 통신' 마니아였다. 군 복무 하는 동안 소형 녹음기를 연결해 자동 응답 전화기를 만들기도 했다. 사회에 나와서는 무전기 제조 회사를 차려 1520채널로 교신할 수 있는 무전기를 개발했다. 하지만 영업 실패로 부도를 맞았다.

"젊은 날 오랜 기간 신용 불량 상태로 지냈습니다. 1992년 대선을 앞두고 '초원 복집 사건'(김기춘 법무부 장관 등이 민자당 김영삼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지역감정을 조장하려는 선거 대책을 국민당 정주영 후보 측에서 도청)이 터졌을 때 도청 방지 사업을 떠올렸습니다. 도청이 통신 기술 원리로 이뤄지듯이 그 원리로 도청을 막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는 해외 사이트를 뒤져 관련 장비 부품을 사들였다. 도청 원리나 탐지 기법과 관련된 서적도 주문했다. 그렇게 해서 1996년 도청 전파를 잡아내고 도청기 위치를 추적하는 수신기를 제작했다. 그는 언론사에 '산업스파이를 잡아줍니다'라는 보도 자료를 돌렸다.

맨 처음 한 증권 회사에서 관심을 표시해왔다. 회장실과 접견실, 비서실 등에 도청기가 숨겨져 있는지를 탐지해달라고 했다. 두 번째 주문은 국내 4대 그룹 중 한 곳에서 왔다. 점차 소문이 나자 대기업과 외국계 기업에서 의뢰가 이어졌다.

"100건 중 6~7건에서 도청 장치가 발견됐습니다. H그룹 회장은 임원과 단둘이 한 비밀 얘기를 다른 데서 듣게 되면서 도청 눈치를 챘다고 합니다. 그 뒤로 집무실에 라디오를 틀어놓고 얘기하거나 필담을 주고받았다고 합니다. 제가 탐지해보니 집무실 천장의 샹들리에 위에 도청기가 얹혀 있었지요. 노사 갈등이 심했던 E 기업에서는 노사 양쪽으로부터 거의 동시에 탐지 의뢰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양쪽 모두에서 도청기와 초소형 카메라가 나왔습니다."

당시 도청기는 어떤 수준이었습니까?

"아날로그 방식으로 대부분 일본 제품이었습니다. 이는 잡아내기 쉽습니다. 도청기가 발견되면 통상 수거합니다만, 간혹 그대로 두고 역정보를 흘립니다. 설치한 쪽에서 배터리 교체 등을 위해 다시 현장으로 올 것에 대비해 별도의 초소형 감지 카메라를 설치합니다. 수사기관에 신고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기업이나 회장 이미지에 손상을 준다는 것이 이유지요."

내 기억으로는 산업스파이의 기업 비밀 유출과 도청의 사생활 침해 사례가 본격 보도되기 시작한 것은 1998년이었지요.

"IMF 시절 부도 기업이 쏟아지면서 인수·합병을 위한 정보 수집과 무관치 않았을 겁니다. 그동안 음지에 감춰져 있던 도청 사건들이 표면에 노출된 것이지요. 언론에서는 사회적 문제로 연일 대서특필했지요. 정부 명의로 신문에 '국민 여러분 안심하십시오!'라는 대문짝만 한 광고를 내기에 이르렀습니다."

당시 도청 공포를 너무 부풀려 일상에서 서로 믿지 못하는 불신을 확산시킨 측면도 있었지요.

"그런 면이 있었다고 봅니다. 가령 형제 간 경영권 싸움으로 A그룹이 계열 분리되자, 동생 쪽에서 도청 방지 장비를 다 철거해달라는 주문을 제게 해왔습니다. 회장이었던 형이 도청 방지 장비를 설치해놓았으니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었지요."

믿지 못한다는 뜻은?

"그게 도청 방지 장비가 아니라 도리어 자신을 감시하는 도청 장치일지 모른다는 의심이 있었던 겁니다. 그 시절 정보기관에서는 주요 부처 장관에 대해 도청 탐지 등 보안 점검을 수시로 해줬습니다. 그렇게 하고 나면 해당 인사들은 반드시 제게 재점검을 의뢰했습니다. 정보기관에서 점검해준다면서 오히려 도청기를 새로 설치했을지 모른다는 불신 때문이었지요."

무엇보다 자신이 사용하는 휴대폰 도청에 대한 불안이 컸습니다. 김대중 정부 시절 한 야당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특정 기업의 인수와 관련해 정권 실세에게 로비를 벌인 정황 증거'라며 국정원 간부에게서 건네받았다는 재벌 회장의 국제 통화 내용 등 도청 자료를 공개한 게 발단이었습니다. 그때부터 '휴대폰은 도청되느냐 안 되느냐'로 시끄러웠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표준으로 채택해 사용하는 휴대폰 기술은 음성을 디지털 코드로 분할해 신호를 보내고 받는 CDMA(부호 분할 다중 접속) 방식이라 도청은 사실상 어렵다는 게 당시 정부의 발표였지요?

"4조분의 1에 해당하는 암호 코드에 맞춰야 하니 거의 불가능하다고 했지요. 당시 저는 '음성 신호를 바꾸는 암호화 패턴을 알면 간단히 도청할 수 있다'고 말했지요. 이 때문에 검찰에 참고인으로 소환돼 조사받기도 했습니다. 사실은 그때 이미 해외에서는 휴대폰 도청 장비가 유통되고 있었지요."

그 사건을 계기로 세상 사람들은 자신이 쓰는 휴대폰이 도청될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됐지요.

"당시 정부로서는 휴대폰 도청을 막을 대책이 사실상 없었던 셈입니다. 이게 자꾸 시끄러워지면 안 되니까, 노무현 대통령 취임 일주일 전쯤 정보기관 관계자가 제게 '휴대폰 도청과 관련해 가급적 말을 조심하라'고 했어요. 그 뒤 청와대의 모 수석실을 방문하니 이들은 자신이 사용하는 '비화폰'을 보여줬습니다. 대외적으로는 휴대폰 도청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면서 자신들은 통화 음성을 암호화하는 비화폰을 쓰는 걸 보니 기분이 묘했습니다."

15년 전의 논쟁이 우스워질 정도로 이제 개별 스마트폰 도청은 너무 손쉬워졌지요?

"스마트폰은 도청 앱만 심으면 위치, 통화 내용, 주변 대화, 문자, 카카오톡, 사진 등을 모두 털 수 있습니다. 휴대폰은 남에게 잠시라도 건네주면 안 됩니다. 낯선 메일이나 문자는 클릭을 안 하는 게 좋습니다. 휴대폰을 안 만졌는데도 한 번이라도 화면이 켜졌다 꺼진 적 있으면 '도청 앱' 설치를 의심해볼 만합니다. 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서 무료로 배포하는 '폴 안티스파이 앱'으로 자가 진단해볼 수 있습니다."

이런 대화가 해답은 주지 못한 채 도청 염려증만 부추기는 게 아닐까요. 정부나 대기업은 방지 장비를 설치해 막을 수 있겠지만, 일반 개인으로서는 누군가 도청하겠다고 마음먹으면 막을 도리가 없지 않습니까?

우리가 무방비인 채로 도청당할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알아봐야 소용없다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문제의식이 있어야 나중에라도 답을 찾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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