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다발 ‘007 샘소나이트 가방’ 을 기사식당에 두고 온 사건
[검비봉의 시절풍자] 돈 먹고 걸렸다고 냅다 죽는 정신을 이어받으라는 말인가? 인구도 부족한 판에
1987년도, 1만원 권을 꾹꾹 눌러서 가득 담은(일부 10만원권 수표 사용권 포함) 007 샘소나이트 가방을 들고, 현대 스텔라 승용차를 타고 경기도 여주를 통과하고, 이천 현대전자(하이닉스) 앞을 달리고 있었다.
앞자리에는 운전기사와 젊은 직원, 뒷자리에는 나, 이렇게 셋이서.
운전기사는 자칭 베테랑으로서, 택시, 트럭 운전 등등 다양한 경험을 자부하는 친구이다. 지리 사정에도 밝아서, 어느 곳에 가면 맛있는 식당이 뮈가 있는지 훤히 꿴다.
"저 앞에 좀 더 가면, 트럭기사들이 애용하는 가정식 백반 잘 하는 식당이 있으니, 점심 식사는 거기서 드시고 가시지요."
차에서 내리는데, 내가 들고 내리는 가방을 조수석의 젊은 직원이 냉큼 받아 든다. 식당에서 식사를 맛있게 하고 나와서, 모두 승차한 후, 다시 서울을 향해 부지런히 달리는데, 영동고속도로를 막 들어서려는 찰나에,
“악~ 가 방! 두...고...왔... 다...”
이미 7~8Km는 착실히 달려 왔는데, 그 식당 안에는 트럭 기사들이 왁자지껄 많았는데, 그 가방이 그대로 있을까?
운전기사는 차를 급하게 유턴하였고, 되돌아가면서, 세 사람은 만감이 교차한다.
운전기사는 괜히 그 식당을...
직원은 괜히 그 가방을...
나는 나대로 괜히 그 가방을...
이 일을 어찌하나. 직감하기로는 그 가방은 이미 남의 손에 들려서 멀찍하니 가고 없을 것 이라는 느낌이 90%.다.
나도 나지만, 가방을 받아 들었던 그 젊은 친구는 얼굴이 사색이 되어 있었다.
식당 앞에 차를 주차하고, 두근거리는 심정, 낙심한 심정으로, 혹시나 하면서 앉았던 식탁에 가보니, 테이블 밑에 돈가방이 낮잠이라도 자는 모습으로 얌전히 있었다.
식당은 여전히 기사들로 붐비고 시끌시끌했다. 우리는 안도의 표정을 교환하며 조용히 가방을 들고 나왔다. 그 시끌벅적했던 북새통 때문에 가방이 건재하지 않았나 생각하면서. 만약 그 가방이 없어졌다면, 어찌 되었을까?
큰일은 큰일이지만, 우리는 누구도 죽지 않고 밥 잘 먹고, 술 잘 먹고 지내면서 늙어 있을 것이다. 그 돈가방이 우리를 죽일 만한 위력도 없고, 죽을 의사도 없기 때문이다.
돈 몇 억 먹은 사람이 자살을 한다?
양심에 가책을 못 이겨서 죽는다?
그런 사람이 나랏일을 맡아서, 거창하게 정치철학을 논하면서, 자신감에 넘치는 어조로 대중을 이끌었는가?
죽으면 안 되는 것이다.
괜히 그 돈을...
괜히 그 사람을...
괜히 정치를...
후회를 하면서도 죽으면 안 되는 것이다. 돈도 먹으면 안 되는 것이지만, 들켰어도 죽으면 안 되는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죽으면 안 되는 것이다.
또 죽은 사람 가지고 무슨 정신을 이어받네 마네, 이바구질을 절대 할 게 아니다.
돈 먹고 걸렸다고 냅다 죽는 정신을 이어받으라는 말인가?
인구도 부족한 판에 자라나는 후대들이 창피스럽다고 죽어버리는 걸 배워야 쓰겠는가? 그렇지 않아도 쩍하면 번개탄 미팅을 하는 판에, 자살을 정식 종목으로 채턕하려는가?
돈 먹고 죽은 사람은 세상이 부끄러워서, 안 보이는 곳, 비난을 피해서 숨으려고 간 것이니, 건드리지 말고 가만히 놔두는 것이 예의이며 상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