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헤픈 '감정 소비'...공감과 감정이입의 차이

[박동원의 침대공상] 난 간이 작다. 소심하기도 하고. 평생 살아오면서 딱 3번 용기내어 보았다. 1998 결혼, 1999 개업, 2008 상경. 그 외엔 단 한번도 뭘 저질러본 적이 없다

2022-11-03     박동원 논설위원

 

MBC 화면 캡처

어제 드라마 작가 후배와 먼 거리를 동행하며 한국인의 헤픈 감정 소비에 대해 얘길 나눴다. 특히 진보좌파 운동권들은 너무 착하다는데 둘 다 동의했다. '착함'이 과한 감정을 만들어내고 매사 감정적으로 행동한다. 유교적 의리를 차용한 사람 중심의 (엉터리)사상이 대학가 운동으로 번진 건 우연이 아니다. 지금까지 북한에 대해 가지는 민족 감정도 그 기저엔 '착한 순진함'이 깔려있다.

순진함과 순수함은 같은 듯 보이지만 전혀 다른 개념이다. 순진함은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착한 백지상태이고, 순수함은 세상의 부조리와 인간의 본성은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착하게 살아가려는 인위적 의지다. 나이 40 넘어서까지 순진한 건 멍청한 것이다. 그러니 늘 감정 조절 못 하고 감정 소비에 일상을 허비한다.

난 간이 작다. 소심하기도 하고. 평생 살아오면서 딱 3번 용기내어 보았다. 1998 결혼, 1999 개업, 2008 상경. 그 외엔 단 한번도 뭘 저질러본 적이 없다. 가난했던 흙수저의 한계다. ‘금수저들은 든든한 배후가 있어 저질러도 다음이 있지만, 흙수저들은 다음이 없다. 실패하면 그냥 그대로 엎어진다. 그래서 소심해지고 매사 돌다리 두드리듯 조심스레 움직인다.

그런 과정에서 냉철함이 길러졌다. 원래는 냉정함도 없어, 없는 놈이 퍼주기 일쑤였다. 소심함과 감정이입이 합쳐지고 더불어 살자는 주제 넘는 오버로 빌려주고 못 받는 돈만 억대다.

그런데 살아오면서 호의가 적의로 바뀌거나 배려를 무시로 되갚는 일들이 생겼다. 부탁하면 거절 않고 잘 들어주니 만만하게 본 것이다. 세상이 날 모질게 바꾸어놨다. 이젠 순진함이 아닌 순수하게 살려 노력하고, 감정이입이 아닌 공감에 집중하려 한다.

한국인들이 유독 죽음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마치 자기 가족이 당한 듯 감정 오버하는 건 감정이입을 잘 하기 때문이다. 그 과잉된 감정이입을 미덕으로 여긴다. 난 그게 우리의 민족적 DNA라 생각한다. 씨부족이 단단한 생존공동체로 오랫동안 살아온 농경민족의 자기 생존 본능이다. 그걸 배려심으로 착각한다. 그러니 관용과 배려는 확장되지 못하고 남들이 볼 때나 자기편에게 국한된다.

억울한 죽음일수록 감정이입의 깊이가 달라진다. 한중일(韓中日)의 신주는 다르다. 중국은 관우나 조자룡 같은 의로운 영웅들을 모신다. 일본인들은 현실에 존재않는 요괴나 거울 같은 반인성적 상징을 모신다. 한국인은 억울하게 죽은 이나 논개처럼 요절한 이를 모신다. 원한이 깊은 신주는 에너지가 크다고 여긴다.

감정이입이 커야 사람을 모으고 지갑을 열게 할 수 있다. 한국인의 감정을 움직이는 건 원한, 억울함 같은 것이다. 한 많은 민족 감정은 지금도 여전하다.

김주열, 이한열, 세월호는 한국인의 감정을 움직여 권력까지 바꿔놨다. 모두 생떼 같은 어린 청년들이다. 한국의 드라마나 음악이 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건 단지 시스템에 있지 않고 감정이입에 능하기 때문이다. 죽음에 마음이 움직이는 걸 공감이라 착각한다. 공감력과 감정이입은 외양은 같으나 내용은 전혀 다르다. 순진함과 순수함이 같은 착함이지만 내용이 전혀 다르듯.

공감은 함께 아파하거나 기뻐해주고 이해하는 것, 상대의 뜻에 동의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주체성과 객관성을 잃지 않는다. 내 중심을 잡고 상대의 입장이 되어봄이다. 반면 감정이입은 나를 버리고 상대에 몰입되는 것이다. 상대와 나의 경계를 허물어 버리는 것이다. 상대를 내 안에, 내가 상대에 들어가버리는 것이다. 일종의 빙의다. 광신도나 정치팬덤은 감정이입으로 생긴다. 내 중심이 무너지기에 감정이입엔 내가 없다.

아무리 아프고 슬프고 기쁘고 분노하지만 내가 상대처럼 될 수 없다. 대신 살아줄 수도 없다. 슬픔과 분노가 극에 달해도 그것은 온전히 나의 슬픔과 분노는 아니다. 다만 공감해서 함께 아파하고 귀기울여주고 함께 싸워줄 뿐이다. 인간이라 감정이입이 일어나지만 금새 제자리로 돌아오면 된다. 감정이입이 큰 사회일수록 극단적이다. 우리 민족은 공감보다 감정이입에 능한 민족이다.

지구상 마지막 남은 전체주의 왕조도, 신도수 세계 1위부터 4위의 교회도, 사이비 종교의 천국인 나라도 이곳이다. ‘들이 만연한 이유도 공감능력보다 감정이입 능력이 더 뛰어나기 때문이다. 박정희, 노무현, 문재인, 윤석열의 삶과 뜻에 공감해야하는데, ‘들은 감정이입하며 빙의해버린다. 생떼 같은 이들이 죽으면 마치 자기 죽음처럼 감정이입을 해버린다.

한국인을 '냄비'라 부르는 건 비하나 노예교육 탓이 아니라 감정이입을 잘 하기 때문이다. 감정과잉땐 세상을 다 바꿔놓을듯 난리치지만 감정이 식으면 이내 잊어버린다. 세월호 참사 8년 이후 이태원 참사가 재현되는 건 감정에만 충실하여 현실 개선은 않고 끝없는 진실규명과 복수에만 매달려 온 탓이다. 과잉된 감정이입은 우리의 폭발적 에너지가 되기도 하지만 우리 발목을 잡는 요인이기도 하다. 장단점과 공과는 사실 한 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