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초반, '지하'란 이름 사용한 뒤로 내 삶은 황량하기 짝이 없었다

20대 초반, '지하'란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한 뒤 나의 삶은 그야말로 황량하기 짝이 없었다. 초월적인 빛을 잃고 어두운 중력장 속에 매몰되듯이 감옥 아니면 병원, 아니면 뒷골목의 어두운 술집이거나 허름한 싸구려 여관을 전전하는 삶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고, 또 최근에는 십 년 넘게 중병까지 앓았다

2022-05-10     최보식

이병철 시인

 

어제 오후에 뉴스 속보를 이어 몇 분들의 전화를 받았다. 사실상 이태째 형님의 건강상태에 대해 가족을 제외한 모든 이들과 연락이 두절되어 조만간에 이런 비보가 전해질 것이라고 예감하고 있던 중이었다. 놀라진 않았으나 안타깝고 애달팠다.

어제부터 오늘, 언론이나 SNS 등에서 온통 김 시인에 대한 애도와 추모의 글이 넘쳐난다. 그럴만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더욱 씁쓰레하다.

김지하 시인 / TV CHOSUN NEWS

생전에, 특히 이른바 조선일보의 ‘필화사건’? 이후로 그를 지지하고 찬양해왔던 자칭 진보그룹의 언론과 단체 등에서 김 시인을 철저히 비방하거나 배신자로 낙인찍었기 때문이고 세간의 인심도 그 영문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덩달아 휩쓸러 갔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시대를 풍미했던 ‘특별한 존재’가 버림받은 듯이 쓸쓸하게 운명했다.

원주로 가는 대중교통이 코로나로 하루 두 차례로 줄어들어 첫차가 12시 반뿐이라, 그 차로 올라가 원주 빈소에 도착하니 오후 4시가 지났다.

빈소가 쓸쓸하다. 일세를 풍미하던 대시인의 장례식장치곤 격에 맞지 않는 것 같다. 이것이 세태의 인심인가. 장례는 가족들의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간소하게 치루기로 했다. 발인은 11일(수)로 4일장이다.

대신에 여러 가지로 아쉬워하는 지인들과 후배들이 49제 때를 맞이하여 김 시인을 추모하는 문화제를 서울에서 갖기로 했다. 가칭 '생명평화 대동굿'이란 이름의 김 시인 추모 문화제인 셈이다.

밤늦게까지 생전에 김 시인과 미운 정 고운 정을 함께 나누었던 선후배 지인들이 빈소에 다녀갔다. 이런 자리에서야 서로 얼굴을 만나게 된다.

사람들은 모두 김 시인을 ‘김지하’로 부른다. 그와 가까운 친구나 지인들조차 그의 본명인 김영일(金英一)은 물론 그가 ‘노겸(勞謙)’이라는 호를 지어 그렇게 불러달라고 했음에도 여전히 '지하'라고 불렀다.

노겸 형님의 부음을 듣고 난 뒤에 새삼스레 형님과의 인연이 떠올랐다. 그 가운데 하나가 당신이 ‘노겸’이라는 새 이름을 얻은 뒤에 그 이름의 의미과 관련한 첫 글을 내 책의 발문으로 보내주신 것이었다.

세상에 ‘김노겸’이라는 이름에 대해 잘 알려져 있지 않아 그 이야기를 소개한다.

내가 이른바 새천년, 2000년을 맞이하며 새천년을 향한 메시지로 펴낸 책 '살아남기. 근원으로 돌아가기(두레, 2000)'의 발문으로 김 시인은 20쪽이 넘는 장문의 글을 보내주셨다.

소개하면 이렇다.

< 귀농(歸農)은 율려(律呂)의 각비운동(覺非運動)

-이병철 형의 귀농론(歸農論)에 부쳐

노겸(勞謙) 김영일(金英一)(옛 이름 김지하)

우선 내 이름이 김지하에서 김영일(金英一)로 바뀌었음을 알린다. 지난 10월 17일 개명(改名), 벽명(關名)한 뒤로 처음 이 이름을 써서 남의 글에 대해 한마디 적는다.

이름을 또 바꾸니 웃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이름을 바꾼 본인은 심각하다. 20대 초반, '지하' 란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한 뒤 나의 삶은 그야말로 황량하기 짝이 없었다. 초월적인 빛을 잃고 어두운 중력장 속에 매몰되듯이 감옥 아니면 병원, 아니면 뒷골목의 어두운 술집이거나 허름한 싸구려 여관을 전전하는 삶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고, 또 최근에는 십 년 넘게 중병까지 앓았다.

여러 사람이 이름 고치기를 권했으나 이상한 고집으로 그냥 끌고 왔다. 그러다가 지난 시기 두 번인가 이름을 고쳐 신문에도 발표하곤 했지만 묘하게도 사람들은 여전히 '지하', '지하‘ 였다. 아무래도 세상은 내가 지하(地下)에서 중력장을 내내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즐거워하는 듯했다. 그럴 리 없다 했지만 사실이 그러했으니 심지어 어떤 외신기자는 처음 만나자마자 내게, '헬로, 미스터 언더그라운드 킴!' 이라 하며 극도로 유쾌 명랑하게 악수까지 청하던 것이다....

...노겸(勞謙)은 연초 무료한 중에 문득 얻은 나의 호(號)로서 활동하는 ’무(無)'를 뜻하니 겸손한 마음으로 열심히 후천 민중세상을 위해 일하라는 뜻이라, 오만방자하고 경망스러운 내게는 참으로 좋은 호라고 생각해서 그래, 이제 와 호를 정하고 이름을 다시 바꾸는 터이다. 그러므로 앞으로는 노겸(勞謙) 김영일(金英一)로 부르고 써 주길 바란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노겸'이 느낌이 무던해서 좋다고 하니 그저 '김노겸' 이라 불러주면 고맙겠다. 왜냐하면 김노겸의 느낌이 소탈해서 좋고 그 뜻이 근로와 겸손이니 더 아니 좋은가!

(중략)

...마지막으로 생각나는 것이 있다. 무엇이냐 하면 진정한 각비는 두 개의 비(比)에 대한 날카로움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흥비에서부터 출발하여 다시금 현실적인 새로운 영성문화와 생명율려의 과학으로 돌아가는 또 하나의 새로운 비학 (比學)을 찾아내는 데 있을 것이다. 빛과 함께 현실생태중력장과 문화자본주의사회의 과학을 잘 알아야 빛과 중력의 통일에 바탕한 참다운 중력장의 변혁과 치유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중력을 모르면 빛은 실패한다. 반드시! 녹두꽃이 떨어져서 창포장수 울고 가는 일이 다시는 없어야겠기에 마지막으로 한마디 한다.

-단기 4332년 11월 3일 새벽 3시 30분

강원도 깊은 산골짝에 홀로 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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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글을 이리 소개하는 것은 김 시인의 사후에라도 김지하와 더불어 ‘김노겸’이라는 이름도 기억해주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고, 나는 김지하보다 그를 김노겸으로 기억하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형과의 인연이 깊다. 형님과 민청학련의 공범이라는 인연에서부터 그와 인농 형님과는 팥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믿는다는 절친 사이였고 우리 모두 무위당 문도(?)라는 명분의 사형제의 관계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인연으로 노겸 형님이 단학의 일지와의 문제로 해남 등지로 몇 해 피신해 있는 동안 나는 형님의 공식적?인 연락책을 맡기도 했다. 그래서 '옛 가야에서의 겨울 편지(두레,2000)'의 서문에 내 이름과 전화번호를 명시해 놓기도 했다.

노겸 김영일 시인, 그는 내가 알고 만나본 이들 가운데 가장 감성이 뛰어난 시인이었고, 반독재 민주화 전선에서 가장 치열한 투사였으며 가장 예민하고 깊은 통찰력을 지닌 위대한 사상가였다. 그는 시대의 천재였고 광인이었으며 동시에 무당이었고 선지자였다. 그는 애초부터 일반의 잣대로는 계량할 수 없는 그런 존재였다.

어느 해의 봄인가. 노겸 형님과 거제의 파란 바다가 눈부신 길을 걸으며 이야기 나누는 중에 내게 이렇게 말했다. 자신은 저 너머의 세계, 그 '저승'을 보았다고.

고문과 오랜 독방 수형의 후유증이었을까. 천재의 예민함이었을까. 아니면 무당의 신지핌 때문이었을까.

그는 갔다. 그가 이미 보았다던 저 너머의 그 세계로.

누군가 말했듯이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우리 모두는 그에게 큰 신세를 졌다. 특히 문명전환의 새로운 운동으로서 생명운동을 추구하는 이들에겐 김시인이 생전에 제시한 생명운동의 거대 담론들을 꾸준히 연구하고 이를 구현하는 방안을 모색해가야 할것이라 싶다.

문득 '그는 갔지만 나는 그를 보내지 않았다.'라는 누군가의 시 한 구절이 떠오른다. 아니다. 우리가 그를 일찍 보낸 것이다. 모두 외면하고 비난하던 그 참새의 짓거리에 고통 가운데 쓸쓸하게 떠나신 것이다. 그러고보니 노겸형을 감옥에 두고 날마다 제자의 안위를 걱정하며 우셨다는 스승 무위당 조한알 선생의 기일도 이 오월(5/22)이다.

김노겸 시인의 시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시 한 편을 그의 영전에 올린다.

님/

-노겸 김영일

가랑잎 한 잎

마루 끝에 굴러들어도

님 오신다 하소서

개미 한 마리 마루 밑에 기어와도

님 오신다 하소서

낣은 세상 드넓은 우주

사람 짐승 풀 벌레

흙 물 공기 바람 태양과 달과 별이

다함께 지어놓은 밥

아침저녁 밥그릇 앞에.

노겸형님, 저 세상이 있다면 그곳에서는 고통없이 평안히 쉬옵소서.

-노겸(勞謙): 남다른 노력을 기울여 공을 세우고서도 스스로 겸손하여 자신을 낮춘다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