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가 속했던 ‘진영’으로부터 배척당한다는 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한 시절 그를 떠받들고 추종한 재야운동권은 등을 돌렸고, 우파 진영은 대선국면에서 그를 활용해 먹을 줄만 알았지 그를 보호해줄 줄은 몰랐다

2022-05-09     최보식 편집인
김지하 시인

장례식의 거창함을 따지는 것은 속물(俗物)의 시각이겠지만, 그럼에도 김지하 시인에 대해서는 뭔가 씁쓸하다.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장례식장에서 ‘가족장’으로 진행될 것 같다.

3년 전 김지하의 부인 김영주 토지문화재단이사장이 돌아가셨을 때도 빈소가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장례식장이었다. 그 상가의 썰렁한 풍경을 잊지 못한다.

지방이라 길이 멀어서 그럴 수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김지하에게 ‘세력’이 없어졌다는 점일 것이다. 시인이 무슨 세력 타령을 하겠느냐마는.

한 시절 지식인과 대학생 그룹은 ‘김지하’에게 많은 빚을 졌다. 그의 ‘이름’ 자체가 어둠 속 등대와 같았다. 판금(販禁)된 그의 시집을 몰래 돌려읽거나 등사기로 밀은 시 몇 편을 나눠읽었다.

그런 김지하가 노태우 정권 시절 학생과 노동자들의 분신자살 등 죽음이 잇따르자, 조선일보에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라는 글을 기고했다. 목적을 수단을 가리지 않는 운동권의 도덕성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그때 만약 그가 그 글을 쓰지 않았다면 우리 사회는 어떻게 했을까. 그 글이 아니었으면 ‘죽음의 굿판’ 풍조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을까. 그때 만약 그가 그 글을 쓰지 않았다면 그는 여전히 재야운동권의 ‘우상’으로 남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뤄 셀 수 없는 추종자들의 떠받듦을 계속 누리고 있었지 않았을까.

‘저항 시인’의 생각은 천천히 조금씩 바뀌어왔다. 그는 제 18대선에서는 “여성성(女性性)이 세상을 구한다. 지도자가 나와 세상을 다스려야 할 시기”라며 박근혜 후보를 공개 지지하기도 했다.

그 뒤로 그는 재야운동권 진영으로부터 ‘배신자’라며 완전히 배척당했다. ‘지하 형’이라며 그를 따르던 후배들이 돌변해 그를 대놓고 “개XX”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한 인간이 자기가 속했던 ‘진영’으로부터 따돌림받는다는 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한 시절 그를 떠받들고 추종한 재야운동권은 등을 돌렸고, 우파 진영은 대선국면에서 그를 활용해 먹을 줄만 알았지 그를 보호해줄 줄은 몰랐다. 이제 어느 쪽도 그의 부음에 별로 반응이 없다. 다만 젊은 날 그와 함께 했던 70대 후반, 80대 초반 인사들만이 안타까워할 뿐이다.

김지하를 이렇게 보내도 되는가. 며칠 전 강수연 별세 소식이 들리자마자 영화인들은 나서서 영화인장(葬)을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김지하의 부음에는 나서는 문인단체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