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는 사람 팔할은 여전히 마스크가 두 귀에 걸려 있다!

국가가 조그만 공포감을 조성해도, 국가가 조그만 불평등에 기름을 부어도, 국가가 조그만 반일 감정을 부추겨도 덩달아 춤추는 사람은 국민이다. 그러면 제2의 마스크, 제3의 마스크, ‘예속’이 우리를 기다린다

2022-05-06     최보식

강호논객 윤일원

 

진보의 대표적 논리인 ‘1: 99’, 상위 1%가 하위 99%를 어쩌고저쩌고 하는 논리다. 대표적으로 인용되는 논리가 상위 1%의 66명이 가진 부(富)가 하위 55%의 인구 36억 명의 부보다 더 많다고 불평등의 극대화를 이야기한다.

대표적으로 ‘삼성 이재용 보아라’ 하는 유(類)의 글이다. “이재용의 연봉은 얼마이고 재산은 얼마이며, 네 연봉이나 재산으로 최저임금을 받는 근로자 수천 명, 수만 명을 먹여 살릴 수 있다”라고 분노를 자극한다.

마스크한 출근길 시민들 / 희망을 가져요 블로그

인류가 사바나 지역에서 탄생한 이후로 과거 수만 년에서부터 지금까지 1:99의 통계수치는 언제나 있다. 진시황제 시절에도 있었고 앞으로 3,000년 후에도 있을 것이다. 1은 언제나 최상층이고 나머지 99는 언제나 비참하다고 언급한다. 늘 비참했다. 사실이다. 이와 비슷한 논리로 상위 5%대 하위 95%, 상위 10%대 하위 90% 등 수없이 이어진다.

만약에 여러분이 이 논리에 긍정적 반응을 하면 여러분은 거의 ‘100% 마스크’ 예속에서 벗어날 수 없다.

2021년 작년 크리스마스 날, 서울은 영하 15도를 가리키고 있었지만, 우리는 송추 여성봉, 오봉을 오르기 위해 탐방센터를 지나고 있었다. 이 추운 날에 탐방센터 직원이 우리를 배웅하면서 산행 중 마스크 착용과 거리 유지를 당부한다.

오호라, 이렇게 성실한 공무원이 있으니 대한민국이 발전한 것이구나! 하면서도, 매일 매일 마스크 착용을 하지 않으면 접근도 금지되는 전철 안에서 등을 부비부비하고, 내릴 때는 “내립니다”를 외쳐야 겨우 몸을 비집고 그 사이로 난 틈 속으로 길을 내어 내릴 수 있었는데, 이 텅 빈 산속에서 코로나가 감염이 염려되어 마스크 착용에 2m 간격을 유지해야 한다니, 언빌리버블, 어찌하여 대한민국 세계 최고 수준의 ‘지하철 코로나 방역 기술’이 오봉탐방지원센터까지 전수되지 않았는지 참으로 놀랍고 놀랄 따름이라고 통탄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나는 줄기차게 ‘디지털 대변환(DX) 시대’를 맞이하여 ‘국가 제2 혁신’이 필요하며, 그 방법은 개인의 자유와 책임의 확대에 있다고 말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작은 위기만 조장만 해도 금세 ‘국가주의’로 회귀하는 것을 보고 “오호라, 아직 멀었군!” 하는 절망감을 한두 번이 느낀 것이 아니다. 그 상징성이 ‘마스크’다.

저만치 나 홀로 북한산을 오르는 분도 마스크를 쓰고, 낙동강 뚝방길을 홀로 걸어가시는 할아버지 얼굴에도 마스크가 걸려 있고, 인왕시장에서 장사하시는 할머님에게도 마스크가 꼭 걸려 있으며,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가도 매서운 눈초리를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다고 눈총을 받은 경험이 여러 번 있다.

마스크를 착용하라는 이유는 혹여 감염자의 침방울이나 기침, 재채기, 말을 할 때 최대 2미터가량 비말(飛沫)이 퍼지니 꼭 마스크를 써야 하기 때문이다.

이 원리를 안다면, 개인이 현명하게 자율적으로 그렇게 행동을 하면 되는데, 국가가 구태여 야외에서조차 마스크를 쓰라고 강권하는 이유는 대다수 사람이 자율성을 지키지 않아 무너질까 염려해서이다. 좋은 말로 해석하면 국민 전체를 위함이고 나쁜 말로 해석하면 국민의 자율성을 의심하는 것이다.

COVID-19의 상징물 마스크. 아마 100년 지난 우리 후손이 역사의 유물로 COVID-19를 실증하면 1순위가 마스크가 되리라 장담한다. 마스크 대란에 마스크 줄서기, 삼성 마스크 핵심 필터 원자재 공급으로 줄서기 사라짐, 마스크 요일제 판매, 마스크 사재기 금지, 모든 장소에서 마스크 착용 지시, 드디어 야외에서 마스크 착용 해제까지‥.

나는 지나가는 사람을 유심히 관찰한다. 여전히 80%는 마스크가 두 귀에 걸려 있다. 왜, 아니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아도 되는데, 왜 여전히 그 탁한 자기 내뱉은 CO2를 또 자기가 마시려고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지? 그렇게 열심히 운동해봤자 마스크를 쓰면 더 해로운데. 알고도 못 하는 것인가? 알아도 귀찮아서 안 하는 건가? 이미 습관화되어 자유를 주어도 자유를 만끽할 수 없는 현상인가?

강민구 판사는 6개월간 안식월을 포기하면서 COVID-19 외신을 추적한 적이 있었다. 6천 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을 요약하면, 야외에서는 “절대 COVID-19에 감염된 사례가 없다”는 것을 알고, 야외에서만이라도 마스크 착용 금지를 해제해달라고 줄기차게 운동을 벌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정부든 시민단체든 개인이든 이 말에 귀 기울이는 분이 거의 없었다.

이런 현상을 보고, 절망감을 느낀 사람은 강 판사님이 아니라 나였다. 왜 이렇게 단단히 ‘국가주의]에 잘 걸릴까? 한편으로는 국민소득 $35,000에 자유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고 입만 열면 이야기하면서, 진정 ‘자유’라는 함의된 의미는 알고 있는지? 중국이 자유가 없는 공산주의라고 그렇게 욕을 하면서 진정 욕을 먹어야 하는 것은 우리도 그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나야, 우리는 마스크의 예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

우리는 ‘사실기반사고(factfulness thinking)’가 이렇게 어렵다는 것을 잘 안다. 국가가 조그만 공포감을 조성해도, 국가가 조그만 불평등에 기름을 부어도, 국가가 조그만 반일 감정을 부추겨도 덩달아 춤추는 사람은 국민이다. 그러면 제2의 마스크, 제3의 마스크, ‘예속’이 우리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