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한 지하철역에 장애인 엘리베이터와 저상버스도 도입돼 있지만...

다만 비장애인이 장애인의 절박한 입장에 공감을 하기 어려운 이유는, 외적으로만 보면 웬만한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는 다 있고, 저상버스도 도입이 되어 다니고 있으니 갖춰질 만큼 갖춰진 것처럼 느끼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2022-03-28     최보식

강호논객 김진우

 

장애인들의 지하철 점거시위는 사실은 작년 가을부터도 있어 왔고, 나도 그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다른 거는 못하고 묵묵히 응원을 보내드리기만 했다. 장애인 지인들과 이동을 해야 할 때는 아무래도 비장애인에 비해 신경쓰이는 게 몇 배로 많은 게 사실이고, 하다못해 다리를 다쳐 목발 짚고 어디 나갈래도 생각만큼 대중교통 이용이 쉽지 않다. 그나마, 가끔씩 다쳐서 일상이 불편해지는 건 참고 감수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저런 삶이 죽을 때까지 계속되는 입장이라면 괴로운 것이 당연하다.

다만 비장애인이 장애인의 절박한 입장에 공감을 하기 어려운 이유는, 외적으로만 보면 웬만한 지하철역에 장애인 엘리베이터는 다 있고, 저상버스도 도입이 되어 다니고 있으니 갖춰질 만큼 갖춰진 것처럼 느끼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주변의 지인이라도 있어서 장애인의 삶을 섬세하게 살필 기회가 있다면 비장애인에 비해 제약이 굉장히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동권’ 요구는 사실 가장 기초적인 사항에 불과하고, 시설에 갇혀 살지 않고 자기만의 공간에서 프라이버시를 누리면서 또 비장애인들과 비슷하게 공부도 하고 취업도 하고 사회생활도 할 수 있는 삶까지 가려면 너무 갈 길이 멀다.

장애인 단체 이동권 보장 시위 모습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배려하는 태도가 습관화가 안 돼 있어서 그런 분위기 자체가 장애인의 일상생활을 더 불편하게 만들기도 하다. 시각장애인 안내견에게 길을 비켜줘야 한다는 것도 아직 모르는 사람 적지 않다.

영국이나 프랑스 같은 곳을 가볼 때마다 장애인을 일상적으로 대하는 태도가 굉장히 다르다는 인상을 받았다. 근데 사실은, 런던이나 파리의 지하철역은 100년 이상씩 된 것들도 많기 때문에 ‘장애인용 엘리베이터’를 제대로 세워줄 만한 건축 구조상 여건이 안되는 곳들도 적잖다. 비장애인용 화장실조차 없는 지하철역이 많은 판인데 뭘.

하지만 영국이나 프랑스의 장애인들도 이런 거는 다 이해를 해줄 수 있는 이유는 비장애인의 평소 태도와 인식에 있고, 또 제도적으로도 어떻게든 대체 교통수단을 제공하려고 노력을 한다는 점에 있다. TGV를 타고 여행을 다니면서 꽤 중증의 지체장애인이 같은 객차에 타고 내리는 것을 보았었는데, 역무원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써가면서 그 사람의 이동권 보장을 위해 정말 애쓴다는 게 눈에 보였다.

중요한 건 저런 사회 분위기가 당연한 일상이 되기까지 정말 쉽지 않은 ‘투쟁’이 있었다는 것이다. 단순히 법 제도를 마련하고 국가 예산을 마련하는 걸 넘어 사람들의 태도까지 바뀌고, 또 장애인의 일상이 존엄해지는 것이 구조적인 변화라고 할 수있겠다.

그런데 지금 당장 전장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 요구하는 입법 사항들과 예산증액은 구조변화의 필요조건일 뿐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일단 뭔가 눈에 보이는 걸 요구해야 하니 입법과 예산을 요구하는 것은 맞다. 다만 요구사항이 좀 많다 보니 비장애인들에게 우선순위와 중요도가 있는 요구가 무엇인지 한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다른 아젠다들을 보면서도 느낀 게 한국은 법 제도가 어찌어찌 마련되어도 주류 시민들의 관습은 철통같이 공고해서 태도와 행동을 바꾸려 하지를 않는 문제가 너무나 많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중대재해법’이 그렇다. 한국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산재사고가 너무나 많은 편이다. 이 상황을 좀 바꾸고자 노동계가 절박하게 중대재해법 제정을 요구했지만, 그나마 법 자체도 원안보다 심하게 후퇴해서 만들어졌고, 심지어는 후퇴해서 시행되고 있는 중대재해법조차 기업들이 어떻게든 피해가려고 갖은 꼼수를 쓰고 있다는 것이다. 경영자 처벌 조항이 들어가니 ‘바지 사장’을 세워 책임을 피해가려는 경우가 이미 많다고 한다.

이렇듯 주류사회가 태도를 바꿀 생각 없이 꿈쩍하지 않는 사안이 적잖은데, 사회운동도 뭔가 국가에 요구해서 입법을 하고 제도화하는 작은 성과를 이룬 뒤론 목표도 불분명해지고 뭘 어찌해야 할지 몰라 헤매다 흐지부지되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된다.

‘사회’를 바꾸어야 할 운동이 뭔가 자꾸 ‘국가(정부)’가 나서 달라는 식으로만 환원되어버리는 사태에 대해서는 성찰이 좀 필요하다. 국가의 강제력만으로 사회의 태도를 바꾸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일단은 남의 입장을 머릿속에 상상하는 것 자체가 웬만한 사람한텐 쉽지가 않다는 것부터 인정하고 뭘 시작해야 될 것같다. 탈시설 생활을 통해 장애인이 비장애인 못지 않은 '독립된 개인'의 삶을 영유하는 이상까지 나아가려면 필요한 크고 작은 인프라가 한둘이 아니고, 이걸 다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이 섬세하게 캐치하고 일상의 크고 작은 개선점을 모색하려면 그만큼 장애인에 대해 사유하는 걸 귀찮아하지 않는 전향적인 태도가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