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견디기 힘든 게 고독이더구나. 아들 너도 고독할 거야”
‘백세 시대’라는 말이 떠돌고 있지만 스스로 자신을 마취시키려는 공허한 자기최면 같다. 건강 연령은 거의 끝에 다가왔다. 늙음과 병이 정해진 때와 코스를 따라 나 같은 세대로 오고 있었다
말년의 어머니는 하루 종일 아파트의 창가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며 정물같이 있었다. 저녁 어둠이 밀려 들어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질 때 어머니의 실루엣 같은 모습은 환시 같기도 했다. 어느 날부터 어머니는 입을 닫았다. 귀가 어두워진 어머니는 스스로 듣지 않았다. 그리고 깊은 침묵 속에 들어갔다. 그런 어머니가 돌아가실 무렵이었다. 죽음을 직감한 어머니는 죽음 이후 아들인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숙제를 내주는 선생님같이 또박또박 공책에 적게 했다. 어머니는 마지막으로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일생을 살아 보니까 제일 견디기 힘든 게 고독이더구나. 아들 너도 고독할 거야. 그렇지만 어떻게 하겠니? 운명인걸. 그 고독을 잘 참고 지내다가 오거라.”
북에서 혼자 남으로 내려와 낳은 유일한 외아들을 두고 세상을 떠나는 게 못내 안심이 안되는지 어머니는 이렇게 덧붙였다.
“내가 죽 지켜보니까 너한테 진국인 친구가 두 명이 있더라. 그 친구들하고는 형제같이 지내거라.”
어머니는 눈 여겨본 친구 두 명의 이름을 얘기했다. 관찰력이 뛰어난 세심한 성격의 어머니였다. 그리고 어머니는 잠을 자듯 조용히 저세상으로 건너가셨다.
어머니가 가신 후에 세월이 잔잔한 강물같이 흐르고 있다. 어제 출판사에서 보낸 내가 쓴 책을 봤다. 표지에 늙은 나의 모습을 직은 사진이 보였다. 머리와 눈썹에 하얗게 눈이 내렸다. 남들이 소의 눈 같다고 하던 커다란 눈이 늘어진 눈꺼풀에 덮혀 가느다란 눈이 됐다. 요즈음은 구부러지는 어깨를 하고 지하철 계단을 오르내릴 때면 숨이 차다. 길가에서 만나는 꼬마들이 “할아버지”하며 나의 인생의 위치를 정확히 알려준다.
‘백세 시대’라는 말이 떠돌고 있지만 스스로 자신을 마취시키려는 공허한 자기최면 같다. 건강 연령은 거의 끝에 다가왔다. 늙음과 병이 정해진 때와 코스를 따라 나 같은 세대로 오고 있었다. 갑자기 중풍으로 쓰러져 병원으로 가는 친구가 있다. 요양원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친구도 있다. 노년의 고독이 저녁노을같이 내리고 있다. 어머니가 유언으로 잘 견디고 오라고 하던 고독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평생을 산속 오두막에서 혼자 살던 법정 스님은 고독은 보랏빛 노을이 아니라 ‘당당한 있음’이라고 했다. 나는 지금 당당하게 존재하는 걸까? 어두워 오는 하늘을 보며 속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아닐까.
다석 류영모선생은 찬바람이 부는 겨울 나뭇가지에 쭉정이 잎 몇 개가 붙어서 떨고 있는 게 얼마나 보기 싫으냐고 했다. 쭉정이 이파리는 처절한 고독 속에서 무가치한 삶을 이어가는 노인의 모습 같았다. 류영모선생은 그렇게 살지 말라고 했다. 마지막 행진을 하다가 죽으라고 했다. 늙으면 힘이 없으니까 빨리 죽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고독도 병도 죽음도 평소 미리미리 결재해 두어야 진정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생각이다. 나는 고독이라는 화두를 가지고 백년 전을 살았던 현자인 노인에게 묻는다. 나의 영혼의 스승이기도 하다.
‘어떠셨습니까? 노인장께서도 고독하셨습니까?’
‘나는 혼자였소. 아주 쓸쓸한 사람이었지. 벗도 없었소. 따지고 보면 우리들은 모두 혼자 이 세상에 왔다가 혼자 이 세상을 떠나는 거요. 고독은 우리들의 본성이오.’
‘그래도 친구가 있다면 덜 고독할 것 같습니다만’
‘친구라고 것도 생존하는 동안 잠시 같이 배를 탄 이웃 승객이라고 할까? 고독을 없애려고 수시로 만나는 사람을 친구로 만들려고 생각하면 아직 친구가 뭔지 모르는 거요. 이 허위의 세상에서 마음을 터놓을 친구가 과연 얼마나 있을까? 참 친구와 거짓 친구는 밀밭에 가라지가 섞여 있듯 같이 있기 때문이오. 급하게 참 친구를 얻으려고 하다가 거짓 친구를 만나 낭패를 보기도 하지. 진짜 친구는 영혼에 울림을 주는 사람이오. 그런 친구를 만나기 쉽지 않지.’
‘인생의 노년을 어떻게 사셨습니까?’
‘나라고 별 수 있겠소? 홀로 고독을 견디며 이 세상의 쓸쓸한 여로를 더듬어 갔소. 그러나 나는 혼자는 아니었소. 그분이 나와 함께 계셨소. 때때로 성령으로 나를 문안하시고 깊은 뜻을 내게 보이시기도 했지. 솔잎을 스치는 바람을 통해 내게 말씀하시고 나비가 춤추는 신비를 통해 나와 이야기하셨지. 나는 홀로 그분의 계시를 대하면서 모든 것이 나와 발걸음을 같이 하고 있는 것을 느끼고 눈물이 흘렀던 적이 있었소.’
‘당당한 있음’은 그 분과 함께 있기 때문일까.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