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다음은 쿠바?…트럼프 발언, 그냥 '공갈'일까
체제는 군사적 압박보다 경제적 압박 앞에서 먼저 흔들렸다
[최보식의언론=김정기 세계스마트시티기구 사무총장]
트럼프가 “이란 다음은 쿠바다”라는 취지의 메시지를 던졌다. 이를 정치적 수사로 흘려들으면 현실을 놓치게 된다.
미국 외교는 감정이 아니라 질서로 움직인다. 전통(Tradition)과 연속성(Continuity) 위에서 작동하며, 쿠바는 그 흐름 속에서 한 번도 '주변부'였던 적이 없다.
나는 1980년대 뉴욕주립대 스토니브룩(Stony Brook) 정치학과에서 미국 외교사와 라틴아메리카 정치학을 공부하며 이 문제를 입체적으로 이해했다.
쿠바는 단순한 혁명 국가가 아니라,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의 턱밑에 놓인 지정학적 변수였다. 미국 정치에서 플로리다, 특히 마이애미의 전략적 중요성은 과거보다 훨씬 커졌고, 쿠바 문제는 더 이상 외곽 이슈가 아니다. 2025년 2월 워싱턴에서 조현동 주미대사와의 회동에서도 이 점이 재확인되었다.
쿠바 문제의 출발점은 1959년 쿠바 혁명이다. 피델 카스트로가 이끈 혁명으로, 미국 영향권에 있던 쿠바는 단숨에 반미 사회주의 국가로 전환됐다. 불과 150km 거리에서 적대 체제가 등장했다는 것은 미국에게 외교 문제가 아니라 안보 문제였다.
이에 대한 미국의 첫 대응이 '피그스만 침공(Bay of Pigs invasion)'이다. CIA가 훈련한 망명자들이 상륙했지만 작전은 실패했고, 이 사건은 미국에 직접 군사 개입의 한계를 각인시켰다.
이어 '쿠바 미사일 위기'는 더 큰 교훈을 남겼다. 케네디는 해상 봉쇄(Naval Blockade)를 통해 흐루쇼프를 압박했고, 결국 핵전쟁 직전에서 후퇴를 이끌어냈다. 이후 미국의 전략은 분명해졌다. 침공이 아니라 고립, 단기 충돌이 아니라 장기 압박이다.
이 흐름은 더 오래된 역사 위에 서 있다. 1898년부터 1900년까지 지속된 미서전쟁(American-Spanish War) 이후 미국은 쿠바를 사실상 보호국(Protectorate)으로 편입시켰고, 설탕 중심의 단일 수출 경제와 미국 자본 의존 구조를 만들었다. 이 불균형이 결국 혁명의 토양이 됐다. 쿠바의 문제는 이념 이전에 형성된 구조였다.
지금 그 판이 다시 움직이고 있다. 현재 쿠바는 과거와 다르다. 경제는 붕괴 수준에 가깝고, 에너지 부족은 체제 유지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최근 미국은 베네수엘라를 경유한 원유 공급망을 강하게 압박하며 사실상 차단에 가까운 조치를 취하고 있다. 쿠바에서 전력난과 산업 마비는 이미 일상화되고 있고, 국민 생활은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압박은 시작 단계가 아니라, 상당한 수준까지 진행된 상태다.
여기에 미국 내부 정치가 맞물린다. 플로리다, 특히 마이애미는 쿠바계 이민자들이 밀집한 지역으로, 강한 '반공 정서'는 선거 결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 지역의 표심은 단순한 이민자 정치가 아니라, 혁명과 냉전의 기억이 현재의 투표 행태로 이어지는 구조다.
미국 외교 정책을 총괄하고 차기 공화당 대권주자로 부상하고 있는 마르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쿠바에서 이주한 가정 출신으로, 쿠바 혁명 이후 형성된 망명 공동체의 기억 속에서 성장했다. 그의 가족사는 곧 혁명과 냉전의 역사와 맞닿아 있었고, 쿠바 문제는 추상적인 외교 현안이 아니라 삶의 출발점에서부터 각인된 현실이었다. 이후 플로리다를 기반으로 한 연방 상원의원으로 활동하면서 그는 이 문제를 정책과 입법의 영역으로 끌어올렸고, 개인적 경험과 정치적 경로가 결합된 핵심 과제로 정립했다.
트럼프 역시 정치적 무게 중심을 뉴욕에서 플로리다로 옮기는 과정에서 전략적 선택을 했다. 플로리다는 쿠바계 유권자가 밀집한 정치적 요충지다. 그는 이 지형을 정확히 읽고 쿠바 문제를 핵심 의제로 전면에 부상시켰다.
결국 쿠바 이슈는 단순한 대외 정책이 아니다. 개인의 기억, 지역의 표심, 그리고 국가 전략이 교차하는 구조적 변수로 다시 떠오른 것이다. 거리, 정치, 인물, 에너지라는 네 가지 축이 동시에 맞물리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은 쿠바를 상대로 대규모 전면전을 펼칠 것인가. 미국은 이미 답을 알고 있다. 피그스만의 실패와 미사일 위기의 교훈은 명확하다. 직접 침공은 비용이 크고 리스크가 통제되지 않는다. 대신 경제 제재, 해상 통제, 금융 고립, 에너지 차단을 통해 체제를 압박하는 방식이 훨씬 효과적이다. 전쟁 없이 붕괴를 유도하는 전략, 이것이 현대 미국의 방식이다.
문제는 그 다음 단계다. 트럼프의 전략은 단순한 압박이 아니다. 압박을 통해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는 것이다. 쿠바 정권은 카스트로 체제가 남긴 역사적 기억 위에 서 있다. 미국의 국익이 극대화되었던 1959년 이전 상태로 되돌아가는 선택을 쉽게 받아들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여기서 근본적인 충돌이 발생한다. 미국은 “협상하라”고 압박하고, 쿠바는 “굴복할 수 없다”고 버틴다. 조건이 맞지 않는다.
이 경우 더 현실적인 시나리오는 ‘베네수엘라식 개입’이다. 후안 과이도를 중심으로 한 정권 교체 시도에서 보듯, 미국은 금융 제재, 자산 동결, 국제 승인, 반정부 세력 지원을 결합해 내부 균열을 확대하는 방식을 사용해 왔다. 필요하다면 제한적 군사 옵션, 즉 특수작전이나 해상 통제 강화 같은 저강도 개입이 병행될 수 있다. 쿠바는 대륙국가가 아니라 해상에 고립된 섬 국가다. 외부 공급망이 차단되는 순간, 버티는 힘은 급격히 약화된다.
결국 변수는 하나로 수렴한다. 경제다. 이념은 버틸 수 있지만, 경제는 버티기 어렵다. 역사적으로도 체제는 군사적 압박보다 경제적 압박 앞에서 먼저 흔들렸다.
트럼프의 발언은 위협이 아니다. 이미 진행 중인 흐름을 공개적으로 확인한 것이다. 쿠바의 문제는 이념이 아니다. 지정학적 현실이다. 그리고 그 현실 속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저항의 강도가 아니라, 변화의 타이밍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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