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시인의 편지] 꽃 이름을 부르니 봄이 된다
꽃 이름으로 채운 아침
[최보식의언론=이병철 논설위원]
밤새 봄비 내린 뒷날의 비 갠 아침,
청량한 햇살 아래
앞뒤 마당에 피고 지는 꽃들 한결 눈부시다.
모두 촉촉이 내린 봄비로
말끔히 몸단장하였다.
빗방울 머금고 수줍게 고개 숙이는 수선화와 눈 마주하다가,
오늘, 삼월 마지막 날 아침에
내 곁에 피어 있는 꽃들의 이름을 부른다.
이 꽃들 모두 꽃샘추위 속에서도
새봄을 앞서 열어간 꽃들이다.
맨 먼저 피어났던 매화는 이제 다 졌고
능수홍매만 몇 송이 남았다.
매화와 함께 일찍 꽃망울 연 산수유는
아직도 노란빛이 남아 있다.
하얀 자두꽃은 지금이 한창이고
선홍빛의 명자꽃과 자목련은 그 빛이 더욱 선명해졌다.
앞마당 앉은뱅이 수선화는 어느새 지고 있는데,
그 곁의 키 큰 수선화는 이제사 피고 있고,
다른 곳 동백꽃들이 진 뒤에야 피어나는
뒷마당의 게으른 동백꽃은
곁의 수수장다리꽃과 함께 부시시 꽃망울을 열고 있다.
현관 옆 두 그루의 천리향이
온 집안을 달포도 넘게 그윽한 향기로 채우는데,
뒷마당에서 이어지는 임도 들머리의 산복사꽃도
지금이 한창이다.
울도 담도 없는 집이니,
눈길 닿는 곳까지를 정원이라 한다면
오늘 삼월 마지막 날,
우리 집 정원에 피어 있는 꽃들은
산자락을 온통 연분홍으로 물들이고 있는 진달래와
산 중턱의 하얀 산벚꽃,
개울가의 샛노란 개나리의 이름도
함께 불려야겠다.
그 밖에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
아침에 미처 그 이름을 부르지 못한 꽃들과
민들레와 제비꽃과 숱한 들꽃들도
오늘 아침 우리 집 정원에 피어 있는 봄꽃이다.
이 꽃들 모두 긴 겨울을 견뎌
혼신으로 이 봄을 열었다.
봄이 와서 꽃이 핀 것이 아니라
꽃이 피어 이리 봄을 열어가는 까닭을 알겠다.
#봄꽃 #삼월끝자락 #계절의시 #지리산시인 #노시인 #이병철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