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시인의 편지] 꽃 이름을 부르니 봄이 된다

꽃 이름으로 채운 아침

2026-04-01     이병철 논설위원

[최보식의언론=이병철 논설위원]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천리향, 수선화, 명자나무, 수선화, 자목련, 수수꽃다리, 동백, 진달래. 사진 이병철 시인

밤새 봄비 내린 뒷날의 비 갠 아침,

청량한 햇살 아래

앞뒤 마당에 피고 지는 꽃들 한결 눈부시다.

모두 촉촉이 내린 봄비로

말끔히 몸단장하였다.

빗방울 머금고 수줍게 고개 숙이는 수선화와 눈 마주하다가,

오늘, 삼월 마지막 날 아침에

내 곁에 피어 있는 꽃들의 이름을 부른다.

이 꽃들 모두 꽃샘추위 속에서도

새봄을 앞서 열어간 꽃들이다.

맨 먼저 피어났던 매화는 이제 다 졌고

능수홍매만 몇 송이 남았다.

매화와 함께 일찍 꽃망울 연 산수유는

아직도 노란빛이 남아 있다.

하얀 자두꽃은 지금이 한창이고

선홍빛의 명자꽃과 자목련은 그 빛이 더욱 선명해졌다.

앞마당 앉은뱅이 수선화는 어느새 지고 있는데,

그 곁의 키 큰 수선화는 이제사 피고 있고,

다른 곳 동백꽃들이 진 뒤에야 피어나는

뒷마당의 게으른 동백꽃은

곁의 수수장다리꽃과 함께 부시시 꽃망울을 열고 있다.

현관 옆 두 그루의 천리향이

온 집안을 달포도 넘게 그윽한 향기로 채우는데,

뒷마당에서 이어지는 임도 들머리의 산복사꽃도 

지금이 한창이다.

울도 담도 없는 집이니,

눈길 닿는 곳까지를 정원이라 한다면

오늘 삼월 마지막 날,

우리 집 정원에 피어 있는 꽃들은

산자락을 온통 연분홍으로 물들이고 있는 진달래와

산 중턱의 하얀 산벚꽃,

개울가의 샛노란 개나리의 이름도

함께 불려야겠다.

그 밖에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

아침에 미처 그 이름을 부르지 못한 꽃들과

민들레와 제비꽃과 숱한 들꽃들도

오늘 아침 우리 집 정원에 피어 있는 봄꽃이다.

이 꽃들 모두 긴 겨울을 견뎌

혼신으로 이 봄을 열었다.

봄이 와서 꽃이 핀 것이 아니라

꽃이 피어 이리 봄을 열어가는 까닭을 알겠다.

 


#봄꽃 #삼월끝자락 #계절의시 #지리산시인 #노시인 #이병철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