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흐름'이 권력!... 미국은 왜 이란을 포기 못할까

세계는 석유를 사기 위해 달러를 필요로 했고, 이는 곧 미국 금융 패권을 지속시키는 기반

2026-03-31     최보식

[최보식의언론=김정기 세계스마트시티기구 사무총장]

CNN 캡처

에너지 패권의 시대, 석유는 곧 권력이다.

그러나 이 질서는 에너지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산업에서 출발했다. 18세기 중반, 영국에서 시작된 1차 산업혁명은 생산 방식을 바꾸며 최초의 산업 패권을 만들어냈다. 바로 그 뒤를 프랑스가 따랐다. 프랑스의 산업화는 19세기 초, 나폴레옹 전쟁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영국처럼 급격한 폭발이 아니라, 농업 사회 위에 점진적으로 산업이 축적되는 방식이었다.

이후 19세기 중반부터 전개된 2차 산업혁명은 전혀 다른 구조를 형성한다. 선발주자인 영국과 프랑스를 포함하여 여러 국가가 동시에 산업화에 진입했다.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이들 국가는 모두 전쟁이나 혁명을 거친 뒤 재건 과정에서 산업화의 동력을 확보했다는 점이다.

1865년 남북전쟁을 끝낸 미국, 1867년 독립을 이룬 캐나다, 1867년 독립을 이룬 캐나다, 1868년 메이지 유신을 시작한 일본, 1871년 통일을 이룬 독일과 이탈리아 모두 전쟁 또는 혁명을 거친 이후 재건 과정에서 산업화를 추진했다. 이들은 출발은 다소 늦었지만, 19세기 말에 이르러 산업화를 사실상 완료했고, 이후 오늘날 G7으로 이어지는 세계 경제의 핵심 축을 형성했다. 이 구조는 지금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 가운데 2차 산업혁명 질서를 실질적으로 재편한 국가는 미국이었다. 자동차의 헨리 포드, 석유의 존 D. 록펠러, 철강의 앤드루 카네기, 전기의 토머스 에디슨, 전화의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각 산업의 영웅이 되었다. 자동차, 철강, 석유, 전기, 통신 등 핵심 산업 전 분야에서 미국은 산업의 중심을 장악했다.

이는 단순한 성공 사례가 아니다. 산업 구조 자체가 미국 중심으로 재편되었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1918년 제1차 세계대전 종전 시점에서 미국은 세계 GDP의 30% 이상을 차지하며 기존의 슈퍼파워였던 영국과 프랑스를 이미 넘어섰다. 이는 오늘날 미국에 도전하는 중국의 위상 이상이었다.

여기서 에너지 패권의 문제가 본격화된다. 산업을 지배한 국가는 그 산업을 움직일 연료까지 지배해야 한다. 자동차는 석유로 움직이고, 철강과 화학 역시 막대한 에너지를 요구한다. 산업 패권은 에너지 확보 없이는 유지될 수 없는 구조였다.

이 흐름에서 중동은 필연적인 핵심 공간이 된다. 석유와 가스 자원이 집중된 이 지역은 산업 문명의 연료를 공급하는 중심지였다. 특히 이란의 사례는 에너지 패권이 무엇으로 작동하는지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20세기 초 이란은 중동 질서를 지배했던 오스만 제국의 일부가 아니라 독립 왕조 국가였지만, 영국과 러시아의 세력권 경쟁 속에서 사실상 영국의 영향권에 놓여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오스만 제국이 해체되며 중동 질서는 승전국 중심으로 재편되었고, 이란 역시 공식적인 식민지나 위임통치령은 아니었지만 영국이 석유와 재정을 통해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조로 편입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미국이 이 지역의 주도권을 이어받았다. 팔레비 왕정하에서 이란은 미국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에너지 질서에 편입되었다.

그러나 1979년 호메이니가 주도한 이란의 회교 혁명은 이 구조를 뒤흔든 결정적 사건이었다. 이 혁명은 단순한 정권교체가 아니라, 친서방 군주제 이란을 반서방 성향의 신정일치 국가로 바꾼 대전환이었다. 이후 미국-이란 관계 악화, 미국 대사관 인질사태, 중동 내 시아파 정치세력 확장, 그리고 오늘날 이란 체제의 형성으로 이어졌다.

이로써 중동은 단일한 통제 공간이 아니라 협력과 충돌이 공존하는 복합 구조로 변했다. 이란은 미국 주도의 질서에 도전하는 핵심 축이 되었고, 지역 내 다양한 국가와 비국가 세력 역시 에너지 흐름과 영향력을 둘러싸고 경쟁하는 구도를 형성하게 되었다.

핵심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산유국과의 정치·군사적 관계 설정, 다른 하나는 해상 수송로의 안정적 관리였다.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주요 산유국들과 협력 구조를 구축하고, 동시에 호르무즈 해협과 바브엘만데브 해협 같은 전략적 요충지를 관리해왔다. 이 두 해협은 전 세계 해상 원유 물동량의 약 30% 이상이 통과하는, 말 그대로 에너지 공급의 동맥이다.

또 하나의 축은 달러였다. 석유 거래를 달러로 결제하는 구조, 이른바 ‘페트로달러 체제’는 에너지와 금융을 결합시켰다. 세계는 석유를 사기 위해 달러를 필요로 했고, 이는 곧 미국 금융 패권을 지속시키는 기반이 되었다. 에너지를 지배하는 것이 곧 통화를 지배하는 것이었고, 이는 세계 질서의 핵심 구조로 자리 잡았다.

이 질서에서 중동 전쟁은 단순한 지역 분쟁이 아니다. 그것은 에너지 질서의 균형을 둘러싼 충돌이다. 사우디, 이란, 그리고 다양한 비국가 세력이 얽힌 구도 역시 결국 에너지의 생산과 수송, 그리고 통제권을 둘러싼 경쟁으로 귀결된다.

미국의 전략은 명확했다. 생산지를 직접 지배하기보다, 에너지의 흐름을 통제하는 것이다. 산유국의 정권 안정에 관여하고, 필요할 경우 군사력을 통해 질서를 조정하며, 동시에 글로벌 해군력을 통해 주요 수송로를 관리해왔다. 미국의 힘은 어디에 석유가 있는가가 아니라 그 석유가 어떻게 이동하는가를 통제하는 능력에서 나왔다.

21세기에 들어 이 구조는 한 층 더 강화되었다. 미국은 중동을 통제하는 외부 전략뿐 아니라, 내부적으로도 에너지 구조를 재편했다. 이른바 셰일 혁명은 미국을 다시 세계 최대의 에너지 생산국 중 하나로 만들었다. 이는 단순한 생산 증가가 아니라, 외부 공급망 충격에 대한 전략적 완충 장치를 확보했다는 의미였다.

이제 미국의 에너지 패권은 두 축으로 작동한다. 하나는 중동과 해상 수송로를 통제하는 외부 권력, 다른 하나는 자국 내 생산을 통해 충격을 흡수하는 내부 구조다. 이 결합은 기존 제국과는 다른 형태의 지속 가능한 패권 구조를 만들어냈다.

한편 에너지 질서는 중동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러시아는 유럽에 대한 천연가스 공급을 통해 또 하나의 에너지 권력을 형성해왔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 공급은 군사·외교 수단으로 노골적으로 활용되었고, 가스 공급 축소와 가격 급등을 통해 유럽의 산업과 정치에 직접적인 압력을 행사하는 도구로 기능했다.

이는 에너지 패권이 단일 중심이 아니라 지역별로 분산되면서도, 동시에 전략 자산으로 더욱 노골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질서 속에서 이란은 여전히 가장 중요한 변수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제할 수 있는 지정학적 위치, 그리고 이란 혁명 이후 형성된 반서방 체제는 이란을 에너지 질서의 핵심 리스크로 만들었다. 전 세계 해상 원유 물동량의 약 20%가 이 해협을 통과한다는 점에서, 이란은 단순한 산유국이 아니라 ‘수송을 차단할 수 있는 국가’다.

문제는 이 능력이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그 가능성 자체만으로 시장을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이다.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거나, 친이란 세력이 해협 주변에서 도발적 움직임을 보이는 순간 시장은 실제 공급 감소가 아니라 ‘공급 차질의 확률’을 가격에 반영한다. 유가는 수요·공급이 아니라 지정학적 리스크 프리미엄에 의해 결정된다.

오늘날 중동의 긴장은 이 구조를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 에너지는 더 이상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흐름 자체가 권력인 전략 자산이기 때문이다.

결론은 분명하다. 미국의 산업 패권은 에너지 패권 위에서 유지되었다. 그리고 그 핵심은 중동이라는 공간과 그 에너지 흐름을 통제하는 능력에 있었다. 여기에 자국 내 생산 능력과 글로벌 금융 질서가 결합되면서, 미국은 단순한 산업 강국을 넘어 구조적 패권 국가로 자리 잡았다.

세계는 여전히 석유로 움직인다. 그러나 더 정확히 말하면, 석유가 아니라 그 흐름을 통제하는 권력이 세계를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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