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에게 “짐승” 막말한 與의원은 '반려견'?

누군가의 충실한 '반려동물'임을 증명하기 위해 스스로 언어의 타락을 선택한 이 희비극

2026-03-30     박주현 객원논설위원

[최보식의언론=박주현 객원논설위원(재담 엔터테인먼트 대표)]

한준호 SNS

타인을 '짐승'이라 부르기 위해서는, 스스로 먼저 이성의 끈을 놓아야 한다.

최근 여의도의 한 모퉁이에서 대단히 흥미로운 언어학적 퇴행이 목격됐다. 거대 여당의 어느 국회의원이, 자당의 절대 권력자를 수사했던 검사를 향해 "두려울 때 짐승이 마구 짖는다"며 일갈을 날린 것이다. 헌법 기관이 국가 공무원을 향해 공개적으로 '탈인간화(Dehumanization)'의 저주를 퍼부은 셈이다.

상대를 '인간'으로 대우하면 논리와 팩트로 싸워야 하지만, 이는 피곤하고 승산도 없는 게임이다. 그러니 가장 손쉬운 길을 택한다. 상대를 이성이 없는 '짐승'으로 깎아내리는 것이다. 타인을 비인간화하는 순간, 그를 향한 모든 논리적 비약과 인신공격은 아무런 죄책감 없는 '정의'로 둔갑한다.

이것은 대단한 이념적 투쟁이 아니다. 그저 보스를 향해 "제가 저 사나운 짐승과 이렇게 앞장서서 거칠게 싸우고 있습니다"라고 보고하는, 아주 투명하고 노골적인 구애 행위일 뿐이다. 보스와 강성 지지층의 환호를 얻어내기 위해, 기꺼이 인간의 언어와 품격을 제단 위에 바친 것이다.

하지만 이 부조리극의 진짜 희극적인 포인트는 따로 있다. 상대에게 '짐승'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그 순간, 정작 발화자 본인의 얼굴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그는 모르는 듯하다.

타인을 짐승이라 부른다고 해서 상대가 짐승이 되는 것은 아니다. 권력자의 쓰다듬을 받기 위해 이성과 논리를 포기하고 거친 소리를 내뱉기 시작할 때, 우리는 비로소 그 존재를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 누군가의 충실한 '반려동물'임을 증명하기 위해 스스로 언어의 타락을 선택한 이 희비극은, 한국 정치의 앙상한 밑바닥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판결문과 증거라는 차가운 현실 앞에서는 아무리 짖어도 소용이 없다. 지금 진짜 두려움에 떨며 짐승의 언어를 빌려 쓰고 있는 자가 누구인지, 관객들은 이미 다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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