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월의 진달래꽃, 왜 사뿐히 즈려밟고?

근처 야산에서 참꽃을 실컷 따 먹고, 입술이 새파래진 채로 시오리 고갯길을 넘어오면

2026-03-27     이병철 논설위원

[최보식의언론=이병철 논설위원]

사진 이병철 시인

아내 정원 님이 뒷산 산책길에서 진달래 꽃가지 하나를 꺾어 왔다.

목발을 짚고는 뒷산 진달래를 직접 만날 수 없으니, 집 안에서나마 꽃을 보라고 '모셔 온' 것이다.

그렇게 지난번 샛노란 개나리에 이어 연분홍 진달래꽃이 거실에서 피어났다. 우리 집 거실에서 진달래꽃을 보기는 참 오랜만인 듯싶다.

진달래는 봄이면 이 땅의 온 산기슭을 불태우듯 피어나는 꽃이다.

아마도 이 땅에서 피는 꽃 가운데 진달래만큼 남녘에서 북녘까지 온 산자락을 붉게 물들이며 피어나는 꽃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라꽃을 무궁화 대신 진달래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싶다.

어릴 때 우리는 진달래를 '참꽃'이라 불렀다.

참꽃의 이름이 진달래라는 사실은 아마도 학교에 들어가서야 알았을 것이다.

나는 '참꽃'이라는 이름이 좋다. 숱한 꽃 가운데 '참된 꽃'이라니.

'참과 거짓' 중의 그 '참'이다.

'진짜', '품질이 좋은', '먹을 수 있는', '기준이 되는' 등의 의미를 지닌 접두사 '참'에는 사물을 바라보던 옛 조상들의 기준과 애정이 담겨 있다.

진달래를 참꽃이라 부른 것은 이 꽃이 먹을 수 있는 꽃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진달래와 비슷하게 생겼어도 독성이 있어 먹을 수 없는 꽃은 '개꽃'이라 불렀는데 철쭉 종류가 그것이다.

진달래와 철쭉은 모두 진달래과 진달래속에 속하여 같은 '가문'과 '성씨'를 가졌다고 할 수 있지만, 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참꽃과 개꽃으로 갈린 것이다.

음력 삼사월, 눈길 닿는 산자락마다 참꽃이 붉게 피어날 때면 유난히 배가 고팠다.

겨울 양식은 벌써 동이 났고, 여름 양식인 보리는 아직 여물지 않은 그 춘궁기(春窮期), '보릿고개'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때 산자락마다 무더기로 피어나던 꽃. 먹을 수 있었기에 사람들은 그 꽃을 참꽃이라 부르며 허기를 달랬다.

그러나 참꽃인 진달래는 먹을수록 더 허기가 지는 꽃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배가 고파 근처 야산에서 참꽃을 실컷 따 먹고, 입술이 새파래진 채로 시오리 고갯길을 넘어오면 속은 더욱 비어갔다.

그런 추억 때문일까. 거실의 진달래꽃을 보고 있으면 그 허기졌던 아릿한 시절이 새삼 떠오른다.

지금도 화전(花煎)이라 하여 간혹 전으로 부쳐 먹기는 하지만, 이제 배가 고파 꽃을 따 먹는 일은 없을 것이다.

배가 고파 참꽃을 먹던 그 시절과 남겨진 음식이 쓰레기로 버려지는 이 풍요의 시대 사이에서, 우리는 과연 그때보다 더 행복해졌다고 쉽게 말할 수 있을까.

'참'이라는 접두사가 붙은 이름에는 참나무, 참깨, 참새뿐 아니라 '참사랑'과 '참사람'도 있다.

참과 거짓의 구분이 흐려지고, 도적이 정의를 앞세우며 '내로남불'이 능력으로 둔갑한 세태 속에서, 참꽃처럼 소박하고도 뜨거운, 그런 참사람이 그립다.

거실에 핀 진달래를 바라보며 문득 김소월이 노래한 ‘진달래꽃’ 속 '즈려밟고'라는 시어를 되새겨 본다.

목발을 짚고 지내는 요즘, '밟는다'는 의미가 전과는 사뭇 다르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여태껏 떠나는 님의 마음을 담아 '지그시 누르는 것'이라 여겼는데, 지금 내게 그것은 아픈 발로 땅을 디디듯, 꽃이 다치지 않게 살포시 딛고 가라는 뜻으로 다가온다.

밟히는 아픔이 밟는 발에도 전해지는, 그런 절실한 걸음. 어쩌면 소월도 발을 다쳐 그런 아픔을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 아픔까지 함께 나누는 마음, 그것이 참사랑일지도 모른다.

거실에 피어 있는 참꽃 앞에서 잠시 젖은 상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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