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 억 기부' 노인 유언을 배신한 사람들

한 노인이 평생 모은 돈으로 꿈꾸던 세상은 결국 오지 않았다

2026-03-26     엄상익 논설위원

[최보식의언론=엄상익 논설위원]

인공지능이 생성한 삽화

2013년 2월 21일 오후 2시 30분. 허은정 교수가 목발을 짚고 절뚝거리며 동생과 함께 사무실로 들어섰다. 자매가 나란히 내 책상 앞에 앉았다. 언니인 허 교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리 자매가 아버지 묘에 다녀왔어요."

그녀의 눈에 각오가 서려 있었다.

"아버지가 처음 만든 묘는 형편없이 작고 석물도 주먹덩이만 했어요. 제가 그걸 크게 만들자고 우겼죠.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소송으로 재단을 사회문제화 하겠다고 아버지께 말씀드렸어요."

"그랬더니 아버지가 뭐라고 하세요?"

내가 물었다. 나는 영과의 소통을 믿는 편이다. 살인 사건을 맡았을 때는 꼭 그 현장에 가보았다.

"내 딸 장하다 하시겠죠."

투지가 섞인 목소리였다.

"앞으로 합심해서 싸워 나갈 방향을 오늘 의논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내가 말했다. 두 자매가 눈을 반짝이며 내게 귀를 기울였다.

"상대방은 공영방송이고 재단 이사장이 거물입니다. 사회문제화 하려면 소송진행과 그 배경을 언론에서 다뤄줘야 합니다."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

"제가 다각적으로 문제의 본질을 파악 중입니다. 아버님과 마지막에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눈 작가를 만났습니다. 앞으로 재단 직원이나 이사, 농장관리인 등 관계자들을 한 명 한 명 만나도록 하겠습니다."

"그동안 저를 돕던 사람들에게 엄 변호사님을 리더로 하고 우리 모두 그 말을 듣자고 했어요."

나는 그들의 목적과 투지를 다시 한번 확인해 두고 싶어 물었다.

"허 교수님은 이 싸움을 왜 하십니까?"

"그거야 오석민 재단 이사장이 아버지가 준 돈을 잘못해서 날렸으니까 하는 거죠."

"재단의 운영이나 아버지의 돈에 대한 욕심이 있어서 하는 건 분명 아니시죠?"

"우리도 알아요. 이렇게 싸워도 아버지의 돈은 이미 재단법인 소유라는 걸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재단이 바로 가게 하기 위해 싸우는 겁니다. 소송은 자극제 역할입니다. 허 교수에게 돈이나 자리가 확보되는 건 아닙니다. 아시겠습니까?"

싸움의 명분과 목적을 그들에게 분명히 해 두고 싶었다.

"재단이 아버지의 유지대로 가면 되는 거예요."

"저는 앞으로 법정에서 문제점들을 융단 폭격하듯 터뜨릴 겁니다. 이기고 지고가 아니라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기대합니다."

허교수가 활짝 웃었다.

며칠 후 허교수가 재단 사무국의 총괄팀장을 했던 김세형 씨를 사무실로 데리고 왔다. 재단의 실무를 맡고 있는 직원이었다. 얌전해 보이는 청년이었다.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했다고 했다.

"재단에서 일하면서 그곳 사무국장이나 직원들의 윤리의식에 대해 회의를 느꼈습니다."

그는 잠시 창밖을 보다가 말을 이었다.

"사회복지 쪽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윤리의식이죠. 우리가 죽어서 허상철  회장을 떳떳이 만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기부자의 뜻을 진정으로 실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는 다시 한번 말을 멈췄다. 뭔가를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재단은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일 안 해도 월급을 받고 대접받습니다. 허상철 회장이 기부한 돈의 이자로 월급만 받아 챙기는 고민 없는 느슨한 조직입니다."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죠."

"복지전문가가 아닌 TBS 출신의 사무국장을 상관으로 모셨습니다. 복지 전문가들이 좋은 기획을 냈습니다. 저도 재단발전 5개년 계획을 짜서 국장에게 올렸습니다."

그의 얼굴에 순간 아쉬움이 스쳤다.

"그러나 방송국을 퇴직하고 내려온 사무국장은 귀찮아하고 소극적이었습니다. 부하직원이 아이디어를 내고 사업계획을 제출하는 걸 오히려 막는 입장이었습니다."

"이사들은 뭐했습니까?"

"사무국장이 일을 안 하면 이사들이 질타해야 합니다. 그러나 같은 TBS 출신 이사들은 아무도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따금 나와서 회의록에 도장을 찍고 가는 게 전부였죠."

이미 그 재단은 알맹이가 없어진 껍질뿐이었다.

"TBS 출신인 사무국장은 오히려 복지 전문 직원을 내쫓았습니다. 사업 아이디어도 내지 못하게 했습니다. 사회복지를 전공한 부하직원이 얘기하는 걸 오히려 못 견뎠죠. 사무국장은 사업에 대한 관심이나 애정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재단에 기부를 하겠다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들었는데요."

내가 물었다.

"네. 초기에 거액의 기부를 하겠다는 분이 있었습니다. 언론이나 방송을 보고 기부하겠다는 분도 있었습니다. 연예인들의 팬 카페에서 자기들도 기부하겠다는 의사표시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사무국장은 그런 것 자체도 아주 귀찮아하는 것 같았습니다. 사회복지 쪽에서는 기부자들을 섬겨주고 그들의 뜻을 최대한 반영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TBS에서 온 사무국장이나 이사들은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기부하겠다는 사람들이 그 뜻을 철회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나중에 그들을 만나보니까 사무국장이 너무 거들먹거리고 교만해서 기부하고 싶은 뜻이 없어졌다고 했습니다. 방송사 고위직 출신이라 그런지 뻣뻣하고 거만하더라는 평들이 공통적이었습니다."

나는 메모를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증언은 신빙성이 있었다.

"이한별 사무국장의 임기 3년이 끝날 때였습니다. 본인 자신이 연임운동을 했습니다. 그와 짝짝꿍인 오석민 이사장이 연임을 지지했습니다."

재단의 허점들이 드러나고 있었다.

"다시 연임되어 6년간 사무국장을 했먹었습니다. 그런데 기가 막히는 건 사무국장이 여러 명목으로 돈을 챙기는 겁니다. 그걸 보면서 그분은 도대체 기본이 되어 있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허상철 회장한테서 기부받은 평택농장은 어떻게 됐습니까?"

내가 물었다.

"평택농장 만 오천 평의 개발이 핵심과제였습니다. 총괄팀장인 저는 평택시를 찾아가 관계자를 만났습니다. 복지시설에 대해 시장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그 주변지역 개발의 타이밍도 좋았습니다."

그의 목소리에 아쉬움이 묻어났다.

"그러나 재단을 주도하시던 오석민 이사장이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결국 평택농장의 개발이 불가능하게 된 건 이사장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직원들은 어땠습니까?"

"사회복지를 전문으로 하는 직원들이 제대로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하나 둘씩 그만두게 됐습니다. 이사장을 비롯해서 TBS 측 이사들은 일을 할 의사도 없고 전혀 고민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초기에는 재단이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게 사실입니다. 노인들 문제를 스터디하고 이사들의 인적 네트워크와 TBS라는 공영방송이 일을 하면 어떤 것도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TBS는 허상철 회장의 돈을 받은 후 아무 관심도 없었습니다."

"세금 문제는요?"

"복지재단이 목적사업을 하지 않으면 망하게 되는 겁니다. 결국 그런 나태가 20여 억 원의 세금을 두들겨 맞는 원인이 됐습니다. 저는 이사장이나 사무국장이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필요하시면 제가 진술서를 써 드리거나 증인으로 나가겠습니다."

며칠 후 허교수가 평택농장 관리인인 신경주 씨를 데리고 왔다. 60대 초의 그는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우리의 눈치를 보는 느낌이었다. 그는 허상철 옹이 직접 고용한 사람이었다.

"처음에 허상철 회장님을 어떻게 알게 되셨습니까?"

내가 물었다.

"평택에서 건축일을 하다가 쉬고 있었습니다. 알고 있는 평택 부자의 소개로 알게 됐습니다."

그는 천천히 기억을 더듬는 눈빛이었다.

"1996년경이었습니다. 평택시청 앞 호텔 커피숍으로 허상 철옹이 저를 불렀습니다."

그가 말을 끊고 주저하는 눈빛이었다.

"그때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내가 물었다.

"'농장이 있는데 나이도 먹고 살 만하니 좋은 일 좀 해야겠어.' 그러시더군요. 저는 이미 허상철 옹이 양노원을 하려고 한다는 걸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신경주는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어르신 그게 쉽지 않을 겁니다. 직접하시기는...'이라고 하면서 제가 말렸습니다. 그런데 '아니야 돈 걱정은 하지 말고 계획을 한번 짜봐.' 그러시더군요."

"그래서요?"

"며칠 후 허상철 옹이 호텔에서 저한테 전화를 하셨습니다. '어디 있어? 이리 빨리 나와.' 제가 급히 호텔로 달려갔죠."

그의 눈에 그리움이 어렸다.

"'애들은 어떻게 돼?' 다짜고짜 물으시더군요. 제가 가족 상황을 말씀드렸죠. '내가 먹고살게 해 주면 앞으로 말 잘 들을 수 있어?' 고용하겠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때 기분이 어떠셨습니까?"

"그저 감사드리죠,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더니 '그러면 집사람을 한번 데려와 봐, 내가 직접 봐야겠어.' 그러시더군요. 저는 얼른 아내를 데리고 다시 갔습니다."

신경주의 목소리에 감사함이 묻어났다.

"며칠 후 허 회장이 전화를 걸어 '농장으로 와' 하고 짧게 명령하셨습니다. 농장을 관리하기 위해 지어놓은 집 앞에 그가 열쇠꾸러미를 든 채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요?"

"'이 집은 농가주택인데 앞으로 이 집에서 살아. 살 만할 거야. 그런데 공짜는 안 돼. 내가 전세계약서를 써 줄게 있는 대로 얼마라도 보증금을 내.' 그러시더군요."

나는 허상철 옹의 성격이 보이는 것 같았다.

"'저 200만 원 밖에 없는데요?' 제가 솔직히 말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새벽이었습니다. 허상철 옹이 저한테 다시 전화를 거셨어요. '전세 보증금 돈 준비 됐어?' 날짜도 되지 않는데 독촉이셨습니다."

"어떻게 하셨습니까?"

"'저 돈이 없습니다.' 그랬더니 '아니야 자네는 있어. 빨리 내놓아.' 그러시더군요. 심성 테스트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가진 돈을 전세보증금으로 드리고 농장 안의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신경주는 잠시 말을 멈추고 물을 마셨다.

"며칠 후 허상철 회장이 딸인 허은정 교수를 데리고 와서 농장을 돌아보았습니다. 제가 따라 나섰죠. 농장을 돌면서 심어놓은 배나무들 앞에서 그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내가 앞으로 이 농장을 노인시설로 할 거야. 자네가 실버타운도 알아보고 평택시청에도 가보고 해. 그리고 자네 말인데 노인시설을 하더라도 내가 자네 먹여줄 정도는 충분히 있어. 걱정 말아, 알았지?'"

"그래서 알아보셨습니까?"

"다음 날부터 평택 근처의 노인복지시설들을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미리내 성지에 있는 노인시설도 가보고 안성 쪽에 있는 실버타운도 견학했습니다. 깔끔하게 운영되는 곳이 많았습니다."

"평택시청은요?"

"담당자를 만나 노인복지시설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보살피는 노인이 25명만 되어도 시에서 지원을 합니다. 단번에 무료로 하지 마시고 100명쯤은 유료로 하시고 그 수익으로 50명쯤 무의탁 노인을 무료로 모셔도 될 겁니다.' 그렇게 설명해 주더군요."

"구체적인 계획이 나왔습니까?"

"허상철 회장은 건축설계사무소에 부탁을 해서 평택농장에 노인복지시설을 하는 가도면을 그리게 했습니다. 2만 평의 농장에 바닥 평수 2천 4백 평, 연건평 3천 6백 평의 4층 노인복지시설이 설계됐습니다."

신경주의 눈빛이 빛났다.

"실버사업을 하기에 충분하다는 타당성 검토가 있었습니다. 그 안의 길을 그대로 살려두고 주차장도 만들고 수영장도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안 했습니까?"

"허상철 옹이 저에게 당부를 하셨습니다. '이 복지시설에 대해서는 아들이 절대 모르게 해. 애들 누구 얘기도 듣지 말아. 자식들은 다 먹고 살 만하게 해 줬으니까.' 허 회장은 아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2002년 봄 어느 날이었습니다. 허 회장이 저한테 전화했습니다. '농장을 TBS에 넘겨 시설을 하기로 결정했으니 아무 소리 하지 마. 자네를 재단 직원으로 만들어 그대로 있게 해 줄게.' 그날 바로 신문에 그에 대한 보도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는요?"

"그해 여름인 2002년 7월 8일경 허상철 회장님이 아산병원에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이후 저는 재단 소속의 봉사원 자격으로 농장을 관리하면서 허회장이 심은 3백 그루의 배나무를 돌보고 있었습니다."

그의 목소리에 서러움이 배어 있었다.

"재단에서는 어떻게 했습니까?"

내가 물었다.

"원칙으로 치면 한 달에 얼마씩 급료를 받아야 하는 게 맞습니다. 농장에 있던 주택을 전세계약을 하자고 하시던 분이 허상철 회장이면 재단에서는 그 보증금을 제게 주어야 하죠. 그런데 회장님이 갑자기 돌아가시는 바람에 모든 게 엉망이 됐습니다."

"배나무는요?"

"배나무 3백 주를 키우는 데도 농약 값부터 시작해서 돈이 듭니다. 그러나 그 돈을 재단에서 대주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재단의 사무국장이 저에게 이상한 부탁을 해 왔습니다."

"무슨 부탁이었습니까?"

"매년 여러 사람의 명단을 주면서 그 사람들한테 배를 부치라는 거였습니다. 또 사무국에서 배를 선물로 달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좋은 거를 그 명단에 따라 부쳐줬지만 저는 농약 값도 받지 못했습니다."

신경주의 얼굴에 억울함이 서렸다.

"2004년 갑자기 포크레인이 와서 농장의 땅을 파기 시작하더군요. TBS 교육센터를 만든다는 겁니다. 허상철 옹이 노인복지시설을 하려고 하던 계획인데 웬 교육센터인가 했죠. 그러더니 공사한다는 간판만 붙여 놓고는 그 후 하는 일이 없더라고요."

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회장님은 아들에게 정이 떨어진 것 같았습니다. 아들이 재단이나 농장 일에 조금도 간섭하지 말게 하라는 게 유언이었습니다. 카지노를 다니면서 다 말아먹고 도망 다니면서 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는 근처에도 못 오던 사람이었죠."

신경주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저도 농장관리를 했으니까 재단이나 가족들에게 지난 14년 동안 농장에서 일한 임금을 받아내야 합니다."

그가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지금도 봄이 되면 배나무에 꽃이 핍니다. 허 회장님이 심으신 나무들이죠."

두 사람이 돌아간 후 나는 책상에 앉아 메모를 정리했다. 직원인 김세형의 증언은 재단 내부의 구조적 부패를 드러냈다. 신경주의 증언은 허상철 옹의 마지막 꿈이 어떻게 배신당했는지를 보여주었다.

떳떳하게 고인을 만날 수 없다는 김세형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아들 얘기는 듣지 말라던 허상철 옹의 유언도 떠올랐다. 한 노인이 평생 모은 돈으로 꿈꾸던 세상은 결국 오지 않았다. 대신 그 자리에는 나태한 이사장과 이사들, 그리고 배를 상납받는 사무국장이 있었다.

나는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법정에서 이 모든 것을 드러낼 것이다.

 


#재단비리 #공익소송 #진실추적 #두사람의증언 #바다에던진돈